대부분 첫 만남에서 느낀 첫인상이 많은 것을 결정한다. 정치인을 선택할 때도 그렇지만 이성과의 만남에서는 더욱 그렇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빈약한데도 첫인상에서 상대방에게 내린 판단은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자신의 태도가 상대방의 접근을 막기도 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넷가에는 부모와 다섯 딸이 있다.
아버지는 기울어가는 가세 때문에 우울하고, 외모만 보고 성급히 결혼했으나 속물이 된 아내에 실망하여 서재에 틀어박혀 책만 보는 베넷씨이다.
엄마는 한때는 아름다웠으나 이제는 남편이 죽는다면 살고 있는 집마저 아들이 없어서 조카에게 상속해야 하는 형편이어서 딸들이 부유한 남편감과 결혼하는 것이 유일한 현실적인 대안임을 알고 절박하게 매달리는 여성이다.
큰딸 제인은 매우 아름답고 착한 성품으로 남에게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둘째 딸 엘리자벳은 그리 예쁘지는 않으나 책을 좋아하고 활동적이며 당당한 성격이다.
메리는 진지하지만 사회성이 부족하며 이성에 관심도 없고,
키티와 리디아는 이성에 호기심이 많고 파티에 가고 치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들이 살고 있는 시골 동네에 두 명의 부잣집 젊은 남자, 빙리와 다아시가 등장한다.
화려한 파티가 열리고 유쾌한 성격의 빙리가 제인에게 호감을 보이고 제인도 좋아하는 눈치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는다. 다아시는 엘리자벳이 그다지 미인이 아니라고 친구에게 말하는데 그 말을 듣고 그녀는 기분이 상한다.
다아시는 엘리자벳의 엄마와 동생들의 태도를 보고 그 집안이 가난하고 경박하고 품위 없는 집안이라고 단정한다. 결국 친구 빙리와 제인의 관계가 발전하지 못하도록 친구에게 충고까지 한다.
베넷가의 상속자인 콜린스가 방문하여 선심 쓰듯 엘리자벳에게 청혼하지만 사랑 없는 결혼은 할 수 없는 그녀는 그것을 거절한다. 콜린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절친한 친구 샬럿에게 청혼하고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샬럿에게 결혼은 부모의 부담을 덜고 안정된 자신의 공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기 때문이다. 둘은 결혼하여 함께 떠난다.
한편 파티에 초대되었던 잘생긴 군인 위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엘리자벳은 그로부터 다아시가 그를 질투하며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엘리자벳을 좋아하게 된 다아시는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그녀는 다아시가 가문은 좋지만 언니의 결혼을 방해했고 위컴에게 함부로 대하는 오만한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거절한다.
나중에 다아시가 보낸 편지를 읽고 위컴의 본색을 알게 되고 막내 리디아가 그와 야반도주를 해서 집안의 위신이 추락되었을 때 다아시가 그들을 찾아내서 지참금까지 주며 결혼을 시켜주었다는 것을 알고 다아시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뀐다. 이제 그녀는 다아시를 좋아하게 되지만 예전에 했던 자신의 행동이 미안하여 표현을 못한다.
다아시의 고모인 부잣집 영부인 캐더린 여사가 둘 사이의 분위기를 감지해서 베넷가를 찾아오고, 엘리자벳의 가문을 무시하며 다아시는 수준이 맞는 자신의 딸과 결혼해야 한다며 그녀에게 모욕을 주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아무도 그녀의 생각을 강제할 수 없다고 맞받아친다.
빙리도 제인을 잊지 못해 돌아오고 다아시의 사랑에 감동한 엘리자벳도 그의 청혼을 받아들여 두 쌍은 결혼하게 된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에 자기를 투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베넷가의 형편이나 둘째 딸 엘리자벳의 성격은 작가 제인 오스틴의 집안이나 성격과 상당히 비슷한 듯 보인다.
그 당시 시대 상황이 여성에게는 아무 권리도 없고 결혼만이 유일한 출구였으니, 가문 좋은 남성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고 결혼에서 조건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그녀가 시대를 앞서 나가는 여성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아시의 청혼을 거절하고 캐더린 부인의 모욕을 맞받아치는 장면에서의 당당함은 영화에서 가장 멋진 부분이다.
그러나 실제 제인 오스틴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절이었고 여성은 작가 이름을 쓸 수도 없어서 다른 필명을 쓰기까지 했다. 죽을 때까지 글을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조차 없었다. 생계를 위해 삯바느질까지 해가며 거실 한구석에서 짬을 내어 글을 썼다고 한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이유가 어려운 형편 때문에 일을 많이 하여 건강이 나빠진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지난 배경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엘리자벳 같이 똑똑한 여성이 결혼에 목매는 것에 대해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좋아하는 예술가와 시대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동시대에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하나 보다. 이 작품도 상상력을 발휘해서 시대를 감안하고 작품을 감상해야만 캐릭터들의 매력을 한층 더 느낄 수 있다.
작가 제인 오스틴은 엘리자벳의 지성과, 리디아의 충동과, 샬럿의 현실성을 종합한 인물일 것이다. 작품에서는 엘리자벳이 막내 동생 리디아의 무분별함을 비판하지만, 작가의 본능적 충동은 리디아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다. 둘 다 잘 생긴 위컴에게 빠져들었고, 작가의 실제 삶에서 좋아했던 남자의 외모나 성격이 위컴과 매우 비슷한 것을 보면 리지의 지적인 ‘자아’가 억압한 충동적 ‘그림자’가 리디아로 표현되어있다. 한편 현실 감각의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는 친구 샬럿은 작가가 자신의 사회적 개인적 처지를 깨닫고 적당한 결혼을 하려고 저울질할 때마다 나타나는 작가의 ‘페르소나’이다.
어릴 적 공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작가가 아버지의 서재에서 마음껏 책을 읽으며 지성을 키우며 글을 쓰고, 동네 파티에 참석하여 춤을 추며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지만, 여성이 독립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며 안정적인 결혼에 타협할까 말까 고민했던 흔적이 보인다. 결국 영화나 소설과는 달리 작가 제인은 부자면서 열정도 가진 다아시 같은 사람을 만나지는 못해서 평생을 독신으로 산다. 씁쓸하게도 현실에서 다 가진 남자는 드물다.
엘리자벳과 다아시의 오만과 편견은 뭘까?
다아시의 오만은 자기 가문에 대한 자긍심이다. 실제로 명예도 있고 돈도 많으니 그 시절 사람이 당연히 가질만한 생각이다. 그가 가진 편견도 같은 맥락이다. 형편없는 가문의 사람들은 다 무례하고 어리석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엘리자벳의 오만은 자기가 똑똑하다는 자각이다.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지적이고 나의 판단은 항상 옳다는 생각이다. 그녀의 편견은 좋은 가문의 남자에게는 사랑이 없고 필요에 의해 비슷한 배경의 아내를 구할 뿐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