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쉘 위 댄스>-중년의 바람

그를 살리는 댄스

by 윤병옥

성실한 가장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좋은 회사원이자 남편이자 아빠인 중년 남자가 무력감에 빠졌다.

결혼하고 아이를 얻고 마침내 교외에 집까지 장만한 남자는 대출 이자를 갚으려 회사를 다니며 지루한 하루하루를 반복하며 답답하게 살고 있다가, 마침내 숨을 쉴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한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기야마는 교외에 있는 집과 도심의 회사 사이를 전철로 긴 시간 동안 매일 통근한다. 러시아워에는 사람들에게 밀려서 정신이 없지만, 술자리 후 퇴근할 때는 전철 안에 공간적인 여유가 있다. 비틀거리며 서서 전철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우연히 댄스 교습소가 보이고, 어떤 아름다운 여성이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공허하게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숨이 멎을 것 같던 그 순간 이후 그는 퇴근할 때마다 그곳을 바라보다가 결국 어느 날, 그 역에서 충동적으로 내려서 교습소를 찾아간다.

그 선생님의 개인 강습은 너무 비싸서 포기하려 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다른 중년의 여자 선생님의 그룹 레슨을 받기로 한다. 아름다운 마이 선생님을 훔쳐보며 수요일마다 춤을 배우게 된 스기야마의 일상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회사의 책상 아래서도 스텝 연습을 하고 전철역 플랫폼에서도 연습을 하다가 창밖을 보는 마이 선생님의 눈에 띄기도 한다. 맑으나 비가 오나 상관없이 퇴근하는 길 중간에 공원에 내려 춤의 동선을 연습한다. 같이 강습받는 사람들의 권유로 주말 댄스 동호회에도 참석하기 시작하고 댄스 클럽도 가본다. 수요일마다 늦고 주말에도 외출하는 남편을 보고 평소 그의 답답한 생활을 걱정하던 아내도 남편이 달라진 것을 눈치챈다. 어느 날 그는 마이에게 저녁 식사를 하자고 제의하지만, 그녀는 교습소 밖에서 사적으로는 만나지 않는다며 춤 이외의 목적이라면 더 이상 나오지 말라고 차갑게 말한다. 그러나 스기야마는 그만두지 않고 계속 춤을 배운다.

마이는 사실 유명한 댄서로, 승승장구하다가 파트너가 그녀를 떠나는 바람에 실의에 빠지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동안 아버지의 교습소에서 레슨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스기야마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아오키도 동료들에게 기인 취급을 받으며 따돌림을 받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댄스마니아였고, 교습소에서 가발을 쓰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면서 춤을 추다가 그것이 벗겨지는 바람에 스기야마도 그를 알아보게 되고 둘은 친해지게 된다. 그의 목표는 아마추어 댄스대회에 출전하는 것이다.

교습소에 항상 나오는 토요코라는 중년 여성도 남편을 여의고 생계를 위해 궂은일을 하면서도 댄스를 좋아하고 교습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들 셋은 중년 선생님의 권유로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기로 하고 3개월 특수훈련을 받게 되는데 초보인 스기야마는 토요코와 왈츠를, 흥이 많은 아오키는 토요코와 룸바를 추기로 한다. 덕분에 스기야마는 마이 선생에게 왈츠 개인지도를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마이가 어린 시절 댄서인 부모를 따라서 영국의 블랙풀에서 개최된 국제 댄스대회를 관람하던 중 퀵스텝을 너무도 잘 추던 커플을 보고 평생 춤을 추겠다고 결심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커플은 준결승에서 옆 사람들과 부딪쳐 떨어졌지만 남자 댄서는 넘어질 때 자신이 아래에 깔리며 여자 파트너를 보호했었다.

드디어 대회 날이 되고, 긴장하여 왈츠를 추던 스기야마는 대회를 구경하러 온 딸이 아빠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당황하여 옆의 커플과 충돌하게 되고 파트너인 토요코를 보호하려다 그녀의 치마를 밟게 되어 치마가 벗겨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댄스는 중단되고,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댄스를 그만두게 된다. 또다시 우울하고 무기력한 생활이 시작된다.

마이 선생이 다시 춤을 추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송별 댄스파티를 열게 되고 스기야마를 초대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녀는 그동안 파트너가 댄스 중 자신을 보호하지 못했고 결국 떠났다고 원망했으나, 사실은 자신이 파트너를 배려하지 않고 자아도취적으로 춤을 추었다고 고백한다. 춤은 혼자 추는 것이 아니라 둘이 서로를 배려하며 추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보인 스기야마를 만나서 가르치며 그의 춤에 대한 열정과 파트너에 대한 배려를 배우고 자신도 춤에 대한 초심을 찾았다고, 꼭 송별 파티에 와달라고 한다.

망설이며 파티에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전철 안에서 교습소를 바라보니 창문에 “쉘 위 댄스, 스기야마 씨?”라고 쓰여있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그는 마음을 바꾸고 급히 파티 장소로 돌아간다.

파티는 끝나가고 이제 마이가 마지막 댄스파트너를 선택하는 순간이 되었을 때, 스기야마가 급히 들어온다. 마이는 웃으며 스기야마에게 마지막 춤을 청하고 둘은 왈츠를 춘다.



세상의 누구도 해야 할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가족을 위해 겨우 장만한 집의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퇴근 후 술자리에도 잘 가지 않았던 스기야마의 생기가 점점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주변에서 성실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의 눈빛은 좀비와 비슷하다. 그를 살리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문제는 해야 할 일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슬픈 일이다.

다음은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으로 춤을 좋게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춤을 순수한 예술로 보는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춤 하면 바람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었다. 그래서 스기야마도 아오키도 처음에 회사나 가족에게 자신이 댄스 교습소에 다닌다는 것을 비밀로 한다.

사실 스기야마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처음에는 아름다운 마이 선생을 보고 끌려서 교습소에 갔다. 그녀와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라기보다는 마음속의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그녀로 인해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마이는 스기야마의 마음속 여성성을 의미하는 아니마를 깨운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마이 선생에게 거절을 당하고도 스기야마는 교습소를 그만두지 않는다. 마이와 사귀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춤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춤이 좋은것인지 마이 선생이 좋은것인지 분리되지 않고 욕구가 분명하지 않으니 아내에게 일종의 죄책감을 갖게 되고 자신이 댄스를 배운다는 것을 밝히지 못한다. 물론 아름다운 이성에 대한 호감과 예술적 표현 욕구를 혼동하여 중년에 실제로 바람이 나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또 이 영화는 춤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초자아에서 강제하는 의무에서 해방되어 하고 싶은 일도 하며 균형이 맞는 인생을 만드는 데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중년 이후에 악기를 배우는 사람도 많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발견하는 사람들도 있다.

먹고사는 게 바빠서, 혹은 가장의 역할 때문에 내면의 욕구를 억압하고 버티다가 중년이 오면 마음의 위기가 온다. 중년 이후는 마음의 균형을 찾는 시기이다. 의무와 욕구, 심리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초자아와 이드, 페르소나와 아니마 사이의 균형이 깨지면 사람은 좀비가 되거나 대형 사고를 치게 되어있다.

스기야마처럼 한 번에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찾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러 분야를 시도해 보아야 고를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하면 엉뚱하게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거나, 비밀로 저급한 취미생활을 하며 죄책감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욕구를 의식화하고 드러내면 떳떳하게 친구나 가족과 함께 즐기며 균형 잡힌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마이 선생으로 나오는 배우는 실제 발레리나였다고 하는데, 외모도 아름답고 춤동작도 너무 멋있어서 누구라도 그녀에게 반해서 춤을 배우고 싶게 만드는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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