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언터처블>-마음속의 어린아이 불러내기

귀한 우정으로 찾은 행복

by 윤병옥

영화의 부제는 ‘1%의 우정’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 필립이 과거에 자서전을 썼고, 그 책의 제목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1%에 대한 해석으로, 상위 계층 1%와 하위 계층 1%를 의미한다고 소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두 사람이 만날 확률은 1% 미만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필립이 극상위 계층인 것은 맞지만 그중에도 몸을 전혀 쓸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였고, 하위 계층이라고 모두가 드리스처럼 순수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이 만남은 정말 드물고 특별한 경우였음을 보여주는 제목인 것이다.

이 특별한 만남으로 두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겠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리스는 얼마 전 출소하여 집으로 갔지만 싱글맘 혼자 책임지는 집에는 동생이 6명이나 있어 씻을 곳도 잘 곳도 마땅치 않고, 엄마는 동생들의 본보기가 되지 못하는 드리스를 비난하며 집을 나가라고 한다. 전과 때문에 취직도 쉽지 않지만 3번 구직이 거절되면 생활 보조금이 나오기 때문에 여러 군데 구직 신청을 하고 면접을 받고 거절 편지를 모으는 중이다.

그가 전신마비 부자 환자의 간병인 면접에 온다. 부유한 저택에는 후보들이 줄 서서 대기하고 있고 그들은 각자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며 어필한다. 드리스의 차례가 오자 그는 방에 틀어놓은 클래식 음악이 허세라고 비웃고, 베를리오즈가 동네 이름이냐고 하자 작곡가 이름이라고 정정하는 필립에게, 유머 감각마저 없다고 받아치며 빨리 서류에 거절한다는 사인이나 해달라고 한다. 자신에게 전혀 비굴하지 않은 드리스에게 흥미가 생긴 필립은 내일 아침 서류를 받으러 오라고 그를 한번 더 부르면서 이들의 인연은 시작된다.


예전의 간병사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드리스는 필립을 도우면서도 친구처럼 솔직하게 소통한다.

예술작품을 좋아하는 필립을 데리고 미술관에 갔을 때 드리스는 추상화를 보고 마치 흰 종이에 빨간 물감 튄 것 같다고 비웃으며 그 작품을 사려는 필립을 진심으로 만류한다. 그리고 새알 초콜릿을 먹으며 자기도 달라는 필립에게 주었다 빼앗았다 하며 장난을 친다.

한밤중에 사고 후유증으로 생긴 환상통 때문에 호흡곤란이 왔을 때도 옆에서 진정시키다가, 뜻밖에도 그를 휠체어에 태우고 밖으로 나가서 찬 바람을 쐬며 담배를 권한다.

둘이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디저트를 먹는데 티라미슈가 나오자, 이렇게 잘못 만든 흐물거리는 빵 대신 바삭한 애플파이를 달라고 항의한다. 거기서 필립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한다. 사랑하는 아내 앨리스가 여러 번의 유산 후에 딸을 입양하고 나중에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절망한 그가 악천후임에도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사고가 나서 전신마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드리스도 지금의 엄마가 사실은 자신을 구출하여 입양한 숙모임을 고백한다.

드리스는 오페라를 감상하러 갔을 때도 나무 분장을 한 바리톤 가수가 나와 노래를 하자 폭소를 터뜨려 주변의 눈총을 맞는다. 나와서 전동 휠체어로 산책할 때 옆에서 쌩쌩 지나가는 킥보드를 보고 필립이 타는 휠체어의 느린 속도를 답답해하다가 드리스는 휠체어의 엔진을 교체하여 엄청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게 만든다.

필립의 생일이 되어 부자 친척들이 모여 생일 파티를 하고 실내악단이 와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자 주제 멜로디가 광고와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좋아한다. 그러나 드리스는 춤을 추게 만들어야 진정한 음악이라며 비트가 강한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처음엔 어리둥절하던 사람들도 몸을 들썩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한편 필립은 엘리노어라는 여성과 펜팔을 하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는데 그가 문학 속의 시적인 문장을 인용하며 구술하면 비서가 편지를 대필하는 방식이다. 이를 본 드리스는 답답해하며 그녀에게 당장 전화를 걸어주고 둘은 드디어 만나기로 약속한다. 약속 장소에서 긴장하며 기다리던 필립은 약속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 자리를 떠나 버린다. 그리고는 드리스와 함께 전용 비행기를 타고 자신을 장애인으로 만들어 트라우마가 된 스포츠인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가서 둘은 하늘을 나른다.

이런 행복도 드리스의 동생이 사고를 치고 찾아오면서 깨지게 된다. 그가 엄마와 동생을 돌보기 위해 떠나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필립은 드리스를 보내주고 다른 간병인을 들이지만 힘들어하고 위급한 순간에 다시 드리스를 찾는다. 방문한 드리스는 필립을 위로하고, 필립이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에 망쳤던 펜팔 여자 친구와의 만남을 다시 주선한다.

그녀와의 관계가 잘 발전되어서 필립은 결혼하게 되고, 독립한 드리스도 결혼하고 사업도 경영하면서 그들은 그 뒤로도 여전히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사고로 몸의 기능이 마비되고 남은 거라고는 돈밖에 없는 부자 필립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범죄를 저지르며 가진 거라고는 몸밖에 없는 드리스가 만나며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실화에 기반해 있다고 하니 픽션보다도 감동이 몇 배 더한 것 같다.

상위층이나 극 하위층에 속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온몸이 마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필립이 더 약자로 보이고 그의 변화 과정에 더 주목하게 된다. 물론 두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둘 다 변화하고 발전했고, 서로가 자신들의 내면에 상대방의 특성들을 가진 잘 맞는 존재들인 것은 틀림없다.

영화에서 보면 필립은 돈도 많지만 성품도 온화하고 수준 높은 예술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 대중 예술이 저급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미술 작품이나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는 데는 경제력과 오랜 기간의 교육과 연습이 필요하다. 필립은 그 결과 상류 계급의 장식으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여서, 필립은 혼자 있을 때도 클래식 음악을 듣고 불편한 몸으로 오페라를 보러 가기도 한다.

여기에 드리스가 등장하여 추상화를 비웃고, 오페라에 웃음을 터뜨린다.

주변 사람들은 당황하지만 만일 어린아이를 오페라 극장에 데리고 가더라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음악회장에는 어린아이를 동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가끔은 어른들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을 감상할 때 꾹 참고 이해하는 척할 때도 많다.

미술은 흔적을 남기는 작업이라는 말을 듣고 드리스가 그린 그림은, 기교는 모르지만 솔직한 표현 때문에 작가 이름을 떼고 보여주었을 때 좋은 반응을 얻는다.

한마디로 드리스는 문명의 교육을 받기 전의 어린아이를 연상케 한다. 누구나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자기의 특별한 사회적 개인적 환경에서 성장한 후 마음속 저편에 잊어버리고 놓아둔 그 어린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나이가 들어도 근엄한 태도만 지닌 사람이 아니라 아이와 같은 눈높이에서 장난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매력적인 인간이다. 그것을 끄집어내어 준 존재가 바로 드리스였다.

필립은 그와 함께여서 웃고 장난하고 킥보드만큼 빠른 휠체어로 달리고, 마침내 패러글라이딩까지 할 수 있었다. 고용한 간병인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그들은 함께 즐겁게 지낸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어른, 기업가, 예술 애호가 등등의 타이틀은 페르소나이다. 그 가면을 너무 오래 쓰고 있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장난기, 천진함, 모험심 같은 어린아이의 특성은 마음 어딘가에 숨어 있다. 스스로 그런 특성들이 튀어나오기는 어렵고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친구일 때 슬슬 나올 준비를 하기 마련이다.

필립도 그전에도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아내를 잃고 전신마비 장애를 가지게 된 후에는 더욱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고용주로 대하거나 장애인으로 동정하거나의 경우밖에 없어서 인간관계를 포기한 상태에서, 드리스를 만나면서 순수성을 회복한 필립은 편지로 이어오던 여성과의 관계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물론 드리스 역시 필립을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세련된 예술과 표현의 세계를 맛보고 변화한다. 범죄에서 손을 떼고, 미술에 감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클래식 음악도 지루하지만 그 안에 시대를 초월하는 주제가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드리스도 배울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던 자신의 취향을 세련되게 다듬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한 것은 과거 필립이 고용한 많은 낮은 계층의 사람들 중 드리스와 같이 순수하며 그를 친구처럼 대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과, 필립도 좋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만약 다치지 않았다면 일부러 자신과 다른 계층의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둘이 만날 확률은 거의 없었다.

유독 드리스만이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필립을 무장 해제시키고 진정한 우정으로 필립 내부의 어린아이를 불러내어 그를 변화시켰다.

누구나 마음 안에 어린아이가 들어있다. 그 아이는 자기를 불러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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