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천일영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병옥 Nov 06. 2023

영화<바그다드 카페>-그녀에게 온 선물 같은 존재

인생에는 마법이 필요해

     

인생에 의무만 가득하고 출구가 안 보이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브렌다는 주유소와 모텔이 딸린 카페를 운영하는 억척 여성이다. 남편은 무능하고, 아들은 사고 치고 피아노만 두드리고, 딸은 천방지축이다. 가족들 중 아무도 어떻게 먹고 살 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절망적인 순간에 다가오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이 궁금하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지만 날리는 모하비 사막 고속도로 옆 공터에 독일의 로젠하임에서 온 여행객 부부가 멈춰서 볼일을 보고 다음 행선지를 지도에서 찾고 있는데, 남편은 빈 깡통을 발로 차고 아내는 도로 그 깡통을 주워서 다음 휴게소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차 안에 넣고 있다. 그는 떠나면서 낡은 금속 컨테이너를 차로 후진하여 부수고, 이에 화가 난 아내는 남편의 비행기표를 꺼내서 그에게 던지고 트렁크에서 러기지를 꺼낸 후 무작정 사막길을 걸어간다. 남편은 아내가 가져온 노란 커피포트를 밖으로 내던지고 떠나버린다. 잠시 뒤 남편이 아내를 찾으러 오지만 그녀는 가림막 뒤에 숨어서 그를 피한다.


사막의 태양 아래서 땀을 흘리며 걸어서 그녀가 도착한 곳은 주유소와 모텔을 함께 하는 ‘바그다드 카페’이다. 여주인 브렌다는 고장 나서 맡긴 커피 머신을 남편에게 이웃 도시에 가서 찾아오라고 시켰으나 그가 잊어버리고, 길거리에 굴러다니던 노란 커피포트만 주워서  오자 분노가 폭발하여 그를 내쫓는다. 그리고 가게 앞에 나와서 울고 있었을 때 어떤 여자가 사막을 걸어서 찾아온 것이다. 그 여자의 이름은 야스민이었고 그녀는 당분간 모텔에 머물기로 한다. 야스민이 객실에 들어와서 짐을 풀어보니 가방이 자신의 것이 아닌 남편의 이었다. 그 안에는 남자 옷과 마술 도구 상자가 들어 있었다.

카페에 와서 보니 벌써 아기까지 있는 십 대 아들 살은 계속 구박을 받아가며 바흐의 피아노 곡만 무한반복 연습하고 있고, 딸 필리스는 화물차를 얻어 타고 도시에 가서 노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원주민 카후엔가가 커피와 음식을 만들고 있고, 근처 컨테이너에서 머물고 있는 단골 예술가 콕스와 트럭 기사들의 타투를 해주는 데비, 지나가다 공터에 텐트를 치고 지내는 청년도 있다. 엄마 브렌다는 혼자 모든 일을 하느라 바쁘고 늘 화가 나서 소리 지르며 누가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상태에 놓여 있다.


남편을 내쫓았으니 음식 재료를 장 볼 사람도 없어서 할 수 없이 브렌다가 장 보러 밖에 나간 사이, 야스민은 청소 도구를 꺼내서 카페와 사무실의 쓰레기를 치우고 말끔하게 청소한다. 돌아온 브렌다가 칭찬은커녕 오히려 화를 내지만, 속으로는 정돈된 환경이 너무 좋다. 깨끗한 사무실 창으로 분홍빛 노을이 밀려 들어온다.

밖으로만 나도는 필리스와도 놀아주고, 아기도 다정하게 안아주며, 아무도 듣지 않던 살의 피아노를 옆에 앉아 감상해 주자 살은 감정을 실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소음이 음악이 되는 순간이다. 이 모습을 본 화가는 그녀가 너무 아름답다고 느끼며 그의 모델이 되어 주기를 부탁한다. 화가는 과일을 든 인물을 그리는 사람이었는데 야스민은 처음에는 딱딱한 정장 차림으로 모델을 하다가, 점점 친밀해지며 옷을 하나씩 벗고 편안한 복장으로, 나중에는 누드로 모델을 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 가방 안에 있던 마술 상자를 열어 매일 밤 설명서를 보고 연습해서 능숙하게 연기하게 되고, 카페에 온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며 마술을 보여준다. 입소문을 타며 카페는 명소가 되고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여행 비자가 만료가 되었다는 경고를 받고 그녀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다시 카페는 적막해지고 사람들은 우울해지고 브렌다는 의욕을 잃는다. 마법은 끝난 것이다. 카후엔가는 커피머신을 놔두고 여전히 야스민의 노란 커피포트로 커피를 만들고, 브렌다는 예전처럼 카페 앞에 널브러져서 우울하게 앉아있다.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야스민이 돌아온 것이다. 두 사람은 반갑게 포옹한다. 카페는 다시 생기가 돌고, 살의 재즈 피아노에 맞추어 야스민과 브렌다가 함께 마술을 공연하고 가족들 뿐 아니라 이를 보는 관객들까지 모두 행복하다. 브렌다의 남편도 돌아온다.

콕스는 야스민에게 청혼한다. 비자 걱정 없이 영원히 이곳에서 같이 살자고 한다. 야스민이 대답한다. “브렌다에게 물어볼게요.”

    



브렌다가 원래부터 사납고 건드리면 폭발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아무도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때 혼자 가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다. 결국 브렌다에게는 사나움과 의무만 남는다. 이때 마법처럼 홀연히 나타나는 인물이 야스민이다. 그녀에게는 브렌다가 갖고 싶었던 다정함과 따뜻함과 공감의 능력이 있다.

브렌다는 가족을 너무 사랑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늘 고함을 친다. 아들 살이 주변과 상관없이 피아노를 두드릴 때 싫은 소리를 하지만, 만일 정말 싫었다면 피아노를 없앴을 것이다. 단지 연주를 들을 여유가 없을 뿐이다. 야스민이 살 옆에 앉아 연주를 부탁하고 경청하자 귀를 괴롭히던 기계적인 연습 소리가 음악으로 바뀌는 마법이 일어난다.

아무도 손자의 식사를 챙기지 않을 때 우유를 주는 사람은 브렌다지만 아기에게 웃으며 다정한 말을 건네 사람은 야스민이다. 그녀는 아기에게 미소와 사랑을 준다.

    

사막 한가운데에 허름한 주유소에 딸린 현실 화가의 그림같은 카페를 보면서, 그곳이 브렌다의 마음의 풍경을 묘사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브렌다도 먹고살 걱정이 없었다면 가족들과 화목하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장의 무게를 혼자 짊어진 그녀는 늘 고함을 지른다. 그녀가 한계에 이르렀을 때 마법처럼 야스민이 나타난다. 그녀가 억누른 다정함이 충만한 존재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방어하지만 야스민은 사실 브렌다가 내면에 억압했던 특성들이다. 둘이 손을 잡자 일사천리 카페의 분위기는 바뀐다. 어수선한 장소가 정리되고 가족들은 소통하고 행복해지고 손님들도 둘의 마술 공연을 보며 함께 기뻐한다.

    

할 일을 꼭 해야 하는 책임감은 페르소나가 강한 사람의 특징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반대 특성을 억압해서 그림자로 가두어놓게 된다. 그런데 본연의 자기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다. 브렌다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심리학적으로 브렌다와 야스민은 같은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무의식의 그림자를 의식화해서 의식의 자아와 손잡고 통합을 이루여야 진정한 자기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야스민이 매력적이어도 현실을 끌고 가는 것은 자아인 브렌다이다. 화가가 프러포즈했을 때 야스민이 브렌다에게 물어보고 허락받겠다고 대답하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영화 속 남편이 무능력해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브렌다의 강한 페르소나 때문에  아니무스의 힘도 약해져서 현실의 남편도 점점 자기 역할을 소홀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결말에서 남편과 화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부드러워진 브렌다에 더해 앞으로는 강해진 남편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OST 'Calling You'는 마치 누군가를 찾는 브렌다의 절규 같은데,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바그다드 카페에 비치는 석양이 너무 아름답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런어웨이 브라이드>-결혼의 조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