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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Jan 11. 2024

영화<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자기를 찾는 여정

상상을 의식화하는 작업

가족을 사랑하고 사랑을 찾는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인 월터 미티가 있다.

잡지사의 어두운 작업실에서 필름을 인화해서 화보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그는 컴퓨터 앞에서 식사하며 자신의 월급으로 어머니를 어떻게 부양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착한 사람이다.

사랑도 하고 싶지만 내성적이고 활동적이지도 않은 그가 이상형을 만날 확률은 아주 낮다.

상상만 하고 사는 그가 세상으로 나아가고 사랑도 찾을 수 있을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월터 미티는 ‘라이프’라는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무실이 아닌 필름을 보관하고 인화하는 어두운 작업실에서 일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다. 내성적인 그는 주로 상상을 많이 하고 상상의 세계에서만 주인공으로 맹활약한다.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과도 상상을 하느라 대화의 맥락을 놓쳐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혼내주는 상상을 하며 부정적 에너지를 해소한다.

어머니의 실버타운 아파트의 월세를 알아보던 월터는 온라인 데이트 프로그램에 접속해서 자신이 점찍었던 이상형 여성의 프로필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쉐릴인데 얼마 전 그가 근무하는 회사의 신입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모험적이고 용기 있고 창조적인 남성을 좋아한다고 한다. 또, 다리가 셋인 장애견과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라고 한다. 그녀에게 호감을 클릭하려 하지만 버튼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그는 담당자에게 전화를 한다. 담당자는 그의 활동 이력에 아무것도 지 않아서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직 그의 가입이 완료되지  않은것으로 인식한 것 같다고 말한다. 직원이 그가 한 액티비티를 물어보지만 월터는 가본 곳도 해본 일도 없다.

출근하려고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나자, “그는 공중을 날아서 불이 난 옆 건물로 들어간 후 위험을 무릅쓰고 장애견을 구하고 쉐릴의 감사 인사를 들으며 개 의족까지 선물한다.” 물론 이것은 그의 상상이다. 딴생각을 하느라 정작 기차를 놓쳐서 그는 회사에 지각한다.

회사는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고 시대에 맞추어 종이 잡지가 아니라 온라인 잡지로 바꾸겠다고 하여 분위기가 흉흉하다. 작업실에 가보니 그와 호흡을 맞추어 16년간 작업했던 유명한 탐험 사진가 숀 오코넬이 보낸 편지와 필름과 선물이 와 있다. 회사가 망한다는 소식을 듣고 월터가 그동안 고생해 준 감사의 인사로 그의 삶의 정수가 담긴 역작 사진 필름을 보냈다며 그 사진을 잡지의 마지막 호 표지로 실으라고 한다. 그가 선물로 보낸 직접 만든 가죽 지갑에는 Life 잡지의 모토인 “세상을 보고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다.”라는 문장까지 각인했다.

문제는 아무리 그가 보낸 필름을 인화해 보아도 그의 역작 사진이 없는 것이었다. 앞뒤 필름을 인화해 보니 나무 테이블 다리같이 보이는 사진과, 엄지 손가락이 크게 찍힌 사진과, 물속에서 ‘어크스넉’이라는 단어가 보이는 사진뿐이다.

회사에서 마주치는 쉐릴과 친분을 쌓은 월터는 그녀의 아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공원에 같이 간다. 어릴 때 보드 챔피언까지 한 그는 그녀의 아들에게 멋진 시범을 보이고 그녀와 숀의 행방에 대해 의논하면서 “그녀와 키스하며 백년해로 한다."의 상상을 한다.


결국 그는 사진을 구하기 위해 숀을 찾으러 가기로 결심한다. 그린란드 공항에 내린 그가 차를 렌트할 때 직원은 빨간 차와 파란 차 중에 선택하라고 하고 그는 기꺼이 빨간 차를 선택한다. 그곳의 바에 들렀을 때 직원으로부터 ‘어크스넉’이 배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옆에 있는 술 먹고 말썽 피우는 사람과 싸움에 휘말리는데 그가 내민 손이 사진 속의 엄지 손가락과 같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사람이 헬기 조종사이며 숀을 태웠던 사람이었다. 술 취한 조종사의 헬기에 타고 싶지 않아서 포기하려는 순간, 상상 속에서 갑자기 “쉐릴이 기타를 맨 컨트리 가수가 되어 나타나 노래하며 그가 모험을 할 것을 격려한다". 월터는 마음을 바꾸어 그 헬기를 타고 가서 선박 어크스넉호에 탑승하게 되는데 거기서 숀이 4시간 전에 화산의 사진을 찍으러 아이슬란드로 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도 아이슬란드까지 따라가고 휴게소에서 만난 어린이들에게 스케이트 보드를 얻는다. 그곳의 운전기사는 숀을 조금 전 공항에 데려다주었다고 하고 15분 후에는 비행기가 출발할 거라고 하니 월터는 그를 따라잡기 위해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산악도로의 내리막길을 시원하게 질주한다. 도착하니 화산이 폭발하고 숀은 벌써 경비행기 날개에 서서 화산 폭발 장면을 찍고 있었다. 결국 그를 만나는 데는 실패하고 월터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진 찾기를 포기한 그는 실망해서 숀의 선물인 지갑도 집 휴지통에 버린다.


사진을 찾지 못한 그는 해고되고 회사원의 대부분이 잘린다. 쉐릴도 마찬가지로 해고된다. 그는 보드를 그녀의 아들에게 선물할 겸 그녀의 집에 찾아가지만, 전 남편이 그녀의 집에 있는 것을 보고 보드만 마당에 두고 쓸쓸히 돌아선다.

실망하여 집에 돌아가서 아빠의 유물인 그랜드 피아노를 바라보니 사진 속 탁자 다리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자기 집 피아노의 다리였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숀이 고맙다고 집에 찾아왔었다며 지금까지 월터가 자신의 사진의 의도를 살리려 가장 노력한 사람이었다며 그가 히말라야 중턱 아프가니스탄 민병대 장악지로 사진 찍으러 가기 전 들렀다고 한다. 월터는 다시 마음을 바꾸어 히말라야 산맥으로 숀을 찾으러 간다. 처음에는 셰르파의 도움을 받지만 그들도 떠나고 나중에는 혼자서 산을 오르다가 드디어 눈표범 사진을 찍고 있는 숀과 조우한다. 작업은 십수 년 같이 했지만 처음으로 직접 만난 둘은 서로 반갑게 이야기하다가 숀이 그 사진을 지갑의 깊숙한 안쪽에 넣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지갑을 버린 월터는 그와 작별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실직한 월터의 사정상 피아노를 놓을 수 있는 큰집에서 살기는 힘들어서 피아노를 팔기로 하는데, 이때 엄마가 쓰레기통에서 주워 놓은 지갑을 내민다. 월터는 그 안의 사진 필름을 꺼내서 보지도 않고 회사에 전달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고 이력서를 쓰는데, 숀을 찾으려고 그동안 다닌 여정만 적어도 이력서의 칸이 모자를 정도로 활동 내역이 많아졌다. 이때 쉐릴의 아들이 보드선물에 대한 감사 동영상을 보내고 월터도 퇴직금을 받으러 회사에 가다가 쉐릴을 만난다. 그녀에게 여정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상상 속 그녀의 응원 덕분이었다고 말하며 연락을 하지 않은 건 찾아갔을 때 남편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녀는 전남편이 아들을 보러 와서 냉장고를 고쳐주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그들은 드디어 데이트 약속을 한다.

둘이 걷던 길의 가판대에 라이프지의 마지막 폐간호가 나와 있었고, 표지에는 그동안 잡지가 직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었다는 감사 문구와 월터가 길가 벤치에 앉아서 홀린 듯 정신없이 필름을 점검하고 있는 사진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시간이 정지한 듯 상상에 빠져서 정신이 나간 월터를 보면 짠하기도 하고 순수해 보이기도 한다. 현실의 의무와 사람들의 불친절함은 그를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로 보내기 일쑤이다. 이것이 현실적인 사람들에게는 그를 이상하고 나사 빠진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의무를 게을리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서 오랜 기간 고객의 사진의 의도를 가장 적절하게 살리려 노력한 사람이었다. 또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서 따뜻한 품성을 가졌고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인생은 비밀스럽게 혼자 상상하며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것이 실제 삶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을 도와주는 인물은 그의 가족 이외에도 그와 오래 작업한 사진작가인 숀, 사랑하는 여인 쉐릴, 온라인 데이트 회사 직원 토드가 있다.

숀은 일부러 중요한 사진을 쉽게 보내지 않고 그가 세상으로 나와서 보물을 찾아 헤매게 만든다. 그가 갇혀있는 세계를 열고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멘토, 혹은 심리학적인 자기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고생끝에 월터가 찾은 귀중한 보물의 정체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쉐릴은 그의 마음속 아니마의 이미지로, 월터가 망설이며 세계로 한 걸음씩 떼기를 두려워할  때마다 나타나서 그를 부드럽게 격려하는 존재이다. 마음속에서 치어리더의 역할을 하고, 어디를 가서 무엇을 봐도 떠오르는 이미지로 존재한다.

영화에서는 전면에 부각되지 않지만, 온라인 데이트 회사 직원 토드도 그의 결점 때문에(활동란이 공란) 프로그램이 작동되지 않으니 활동 이력을 만들라고 조언하며 그가 세상에 나가도록 옆구리를 찌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간중간 월터가 모험을 할 때마다 통화하며 그의 이력을 인정해주고 점검해서 계속 행동할 수 있게 추진력을 준다.

이렇게 현실 세계로 나오려는, 또는 상상을 의식화하려는 의지는 월터의 마음에 원래부터 내장되어 있는 에너지이지만 그것을 주위의 좋은 사람들에게 투사하면서 그들로 부터 억압을 뚫고 나올 실제 힘을 받을수 있었다.

그가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를 영화는 그가 빨간 차를 선택하는 장면으로 보여준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선택한  빨간 알약처럼 그도 더 이상 뇌 속가짜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 사진을 찾기 위해 세상을 돌며 자신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성장하면서 월터는 나중에는 예전처럼 상상을 많이 하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아이슬란드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롱샷으로 찍은 장면은 그가 드디어 자신의 경계를 깨고 세상속으로 달려나오 비유를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이 이야기를 일반적으로 확장하면 예술가나 작가의 이야기로 보인다. 그들의 모든 아이디어는 머릿속에 상상의 형태로 들어있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상상의 세계를 여러 수단을 통해 그림이나 조각이나 영화나 글로 표현하고 구체화시켜서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 예술이다. 머릿속에만 들어있는 비밀은 밖으로 나와야지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해서 예술가들은 내면의 압력을 해방시킬수 있다. 월터가 자신을 비웃는 사람을 혼내주는 상상은 고작 부정적 에너지의 해소일 뿐이지만, 실제로 한 모험은 현실에서 그를 성장시키고 자존감을 주었다. 작가들도 자신의 상상의 세계를 글로 표현하면 다른 사람에게 자기 세계도 보여줄수 있고 그 과정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또 한 가지, 월터를 볼 때 떠오르는 것은 요즘 시대의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자격증 따느라, 먹고 사느라, 집 마련하느라 결혼도 늦추고 아이도 안 낳고 사는 힘든 세대이다. 그들에게 비밀스러운 꿈이나 상상의 세계를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요즘 시대는 인생도 길고 직업도 한 가지가 아닌데 이런 은밀한 이중생활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꿈을 좇는 일은 좋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지어 힘들지도 않다.

누가 아는가? 처음에는 힘든 현실의 도피로 시작한 상상의 에너지가 쌓여서 언젠가는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고, 자기를 발견하고, 사랑도 찾고, 그 과정에서 월터처럼 자신의 커리어도 키울 수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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