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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Nov 16. 2023

영화<솔라리스>-슬픔의 중력

돌아가고 싶지 않다

과거의 괴로운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자는 사는 것이 그저 괜찮은 척하는 연극일 뿐이다.

직장에서 할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서 요리를 해 먹고... 그러나 아침에 꿈에서 깨어나면 그는 너무나 괴롭다.

어느 날, 새로운 행성의 우주 기지에서 일하던 친한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온다. 그곳에 와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리학자인 크리스는 친구의 파티에서 인생의 이상형 여자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레아였는데 구애에 성공하고 오랫동안 사귄 후 망설이는 그녀를 설득해서 결혼한다. 레아는 외동으로 태어나 상상 속 친구를 만들어 놀며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크리스의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둘은 감성적으로나 지적으로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지만, 크리스가 사회적인 사람인 반면에 레아는 폐쇄적이고 불안하다. 레아가 임신했을 때 그녀는 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고 결국 혼자서 낙태를 결정한다. 나중에 이것을 알게 된 크리스는 분노하며 레아를 떠난다. 그 없이는 못 산다는 레아를 뿌리치고 알 바 아니라며 뛰쳐나온다. 크리스를 잃게 된 레아는 절망해서 자살한다. 레아의 불안을 아는 크리스는 걱정이 되어 그날 저녁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만, 침대에서 이미 세상을 뜬 아내를 발견한다. 그녀는 손에 부부가 즐겨 읽던 시집의 한쪽을 유서처럼 쥐고 떠났다. “연인은 잃어도 사랑은 잃지 않네. 죽음은 우릴 지배 못하네.”


그 후 크리스의 삶도 피폐해져서 그는 밖에서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상담을 진행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의 사진이 붙어있는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서 멍하니 칼로 썰다가 손을 다친다. 그러던 중 그와 절친이며 솔라리스 행성에 파견된 지바리언으로부터 영상 메시지를 받게 된다. 그를 대장으로 하는 수십 명의 대원들이 행성의 유용성을 연구하기 위해 행성 근처에 설치된 우주 기지에 파견되었는데 그들이 죽거나 없어지기도 하고 남은 대원들도 복귀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크리스가 와서 그들을 상담하고 설득해서 지구로 귀환하게 도와달라는 것이다.


그 임무를 위해 크리스는 우주선을 타고 와서 기지로 들어간다. 그곳에 도착해서 처음에 어떤 어린 남자아이를 발견했지만 도망가고, 이어서 두 구의 시체를 발견하는데 그중 하나는 친구인 지바리언이었다. 다음으로 만난 대원 스노우는 지바리언이 자살했다고 말하고 어린애는 의 아들이라고 한다.

도착 첫날밤 크리스는 죽은 아내와의 지난날을 꿈에서 회상한다. 그러다가 눈을 뜬 순간 옆에 레아가 누워있다. 놀라서 진짜 그녀인지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해보지만 그녀가 맞다. 자신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한 크리스는 구명 우주선에 그녀를 태워 우주 공간으로 날려 보낸다.

알고 보니 이 우주 기지에서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마음에 걸리는 인물들이 실제로 찾아온다. 그것이 지바리언에게는 지구에 두고 온 어린 아들이었고 크리스에게는 죽은 아내였고 스노우에게는 형제였다. 행성에서 뿜는 아름다운 색의 파동들이(‘바다’라고 불린다) 마음속의 인물들을 실재로 만들어서 보내는 것이다. 책임자인 고든 박사에게도 누군가가 찾아왔지만, 그녀는 그것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대원들을 데리고 지구로 돌아가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행성에서 뿜는 에너지를 반대로 작용하게 하는 힉스 장비를 써서 그 손님을 솔라리스로 돌려보냈다. 꿈에서 친구 지바리언이 나타나 레아와 아이는 인간이 아니라 솔라리스의 일부라고 한다. 그러면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면 죽으니 그냥 지구로 돌아가라고 한다.

다음날 아침 또 레아가 그의 옆에서 깨어난다. 그것은 처음에는 과거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지만 대화를 통해 점점 존재감이 커진다. 크리스가 같이 지구로 돌아가자고 해도 자신이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지구에서 같이 살 수는 없다며 절망하여 또 자살을 기도하지만, 이곳에서는 죽을 수도 없어서 다시 살아난다. 그녀는 고든 박사에게 찾아가 자신을 힉스 기계를 써서 없애달라고 간청한다. 결국 그녀는 떠나고 힉스를 쓸수록 질량이 커져서 중력이 세진 솔라리스에 모든 것이 끌려갈 위험에 처한다.

고든과 크리스는 탐사정을 타고 솔라리스를 벗어나서 지구로 돌아온다. 다시 똑같은 생활이 시작되고 크리스는 또다시 가면을 쓰고 일상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요리를 하다가 또 손을 벤다. 그 순간 크리스는 다시 돌아가 탐사정 앞에 서서 결정을 내리 헬멧을 벗고 기지에 머물며 솔라리스의 중력에 빨려 들어간다. 깨어나니 처음에 보았던 꼬마 남자애가 손을 내밀어 크리스의 손을 잡는다.

다시 집이다. 레아가 옆에서 웃고 있고 크리스가 자신이 죽은 거냐고 물어보지만, 레아는 그들이 같이 있고 다 용서받았으니 죽음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한다.

      



첫째로 이 작품은 SF영화로 감상해도 재미있다. 실제로 원작이 스타니스와프 렘이라는 폴란드 작가의 유명한 SF소설이라고 한다. 미래에 어떤 행성이 에너지 자원으로 가치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임무를 가진 대원들이 머무는 우주 기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미래의 지구는 어두침침하고 끊임없이 비가 내리는 디스토피아 같은 분위기이다. 우주 속의 한 행성 솔라리스와 그것을 둘러싼 바다라고 일컫는 이상한 젤  상태가 인간의 기억과 무의식속에 있는 것을 형상화한다. 손님의 존재는 인공지능과 비슷하기도 하다. 학습 기능이 있어서 점점  의식이 발전하기도 한다. 대원들이 그 방문자들을 돌려보내면 솔라리스의 무게가 커져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데 마치 행성자체가  생물체 같기도 하고 거대한 인공지능 같기도 하다.

      

둘째로 이영화는 로맨스 영화이다. 작품에 인용되는 딜런 토마스의 시는 연인이 죽어서 백골이 되어도 사랑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죽음이 그들을 지배하지 못한다고,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고 한다. 크리스 없이는 못 산다고 했던 레아는 크리스가 떠나자 진짜 죽었다. 그것을 후회하는 크리스는 그것이 환상이자 파멸이자 죽음일지라도 레아와 함께 남겠다고 선택한다. 마치 오르페우스 신화에서처럼 죽은 아내를 찾아 들어간다. 신화의 결말과는 달리 그는 거기에 아내와 함께 남는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형상화한 심리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솔라리스’라는 신비의 행성은 무의식을 훌륭하게 시각화하였다. 지구는 인간의 의식 부분의 은유이다. 남편을 친구들에게서 떼어놓고 자살 충동을 가진 아내는 팜므파탈형 아니마이다.

아내를 잃고 슬픔에 시달리는 크리스는 그녀에 대한 사랑, 죄책감, 그리움을 억압하여 무의식에 저장해 놓았다. 지구에서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듯 살아가던 크리스는 무의식에 침잠하여 레아를 만난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인간이 아니니 속지 말고 마음도 주지 말고 장치를 고쳐서 손님들을 지구에 따라오지 못하도록 솔라리스로 다 돌려보내고 그런 다음 반드시 지구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고든 박사의 목소리는, 사실 자아에게 현실로 돌아가라고 명령하는 자기의 목소리이다. 그러나 크리스는 선택의 순간에, 손을 베는 통증을 떠올리며 자신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현실에 간다 해도 예전과 똑같은 공허한 삶을 살 거라는 자각을 하고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다. 어쩌면 그는 수없이 무의식에 빠졌다가 현실로 돌아갔을 것이다. 칼로 손을 베는 순간이 무한루프의 시점이다. 방문한 존재를 솔라리스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떠오르는 슬픔을 억압한다는 것인데 그럴수록 행성의 중력이 세진다는 것은 무의식에 더 사로잡히게 된다는 의미이다.  

영원히 무의식에 머문다는 것은 결국 죽음이다. 부정적 아니마는 결국 자아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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