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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Jan 18. 2024

영화<인사이드 아웃>-감정의 메커니즘

마음의 모형

    

감정은 일관되지 않다. 어떤 때는 기쁘고 어떤 때는 슬프거나 화가 난다. 왜 그런지 설명하는 이론들이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과학에서도 화학반응 같은 미시적인 부분에 들어가면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들이 있지만 어렵다. 그래서 이해를 돕기 위해 모델이나 모형을 사용하게 된다. 과학 시간에 많이 보았던 분자 모형이 그것이다. 각각의 원자를 색색의 구로 표현하고 연결하는 막대를 꽂거나 빼재배치하며 화학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음도 보이지 않으니 일종의 모형을 써서 마음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이 영화는 시작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일리라는 예쁜 소녀가 있다. 외동딸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명랑한 소녀이다. 미네소타에서 겨울에 동네 연못에서 온 가족이 스케이트를 타고, 학교에서는 하키를 잘한다. 보통 유년기에는 큰 실패도 없고 부모님의 지지도 받으니 밝은 측면만 보인다.

그러나 성장을 하면 여러 가지 어려운 도전도 생기고 발달과정에서 다른 단계에 진입하기도 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등 환경의 변화도 생기게 된다. 그녀도 사춘기와 전학이라는 인생의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영화는 이때의 감정과 성격의 변화를 라일리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감정을 관장하는 5개의 에이전트가 있다. 주감정으로 기쁨이(Joy)와 슬픔이(Sadness), 부감정으로 소심이(Fear)와 까칠이(Disgust)와 버럭이(Anger)가 있다.

그녀가 하는 경험은 비슷한 것끼리 덩어리로 뭉쳐 일종의 기억의 섬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들이 그녀의 성격(personality)을 만든다. 그녀가 주로 성취감을 느꼈던 하키에 관한 기억들이 모여서 하키섬을 구성하고, 어릴 때 했던 장난들에 대한 기억이 뭉친 엉뚱 섬, 친구들과의 좋은 추억이 모인 우정섬, 부모로부터 배워온 가치들이 모인 정직섬, 가족의 사랑을 받은 기억들이 모인 가족섬이 있다.

이것들은 불변이 아니라 성장과 환경의 변화가 생기면 해체되기도 하고 다른 섬이 생기기도 한다. 라일리도 아빠의 사업에 문제가 생겨서 가족에 대한 신경을 쓰는 시간도 줄고, 전학을 오면서 과거의 활동이나 친구 관계가 중단되는 변화를 맞으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기쁨이가 아무리 분위기를 띄우려 해도 슬픔이의 역할이 커지게 된 것이다. 둘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감정을 모니터 하는 역할로 소심이와 까칠이와 버럭이가 전면에 등장한다. 새 학교의 자기소개시간에 눈물을 흘리게 되고 가족과의 저녁식사에서 아빠에게 빈정대며 말대꾸를 하고 화해하러 온 아빠의 장난을 받아주지 않아서 결국 장난섬까지 파괴시켜 버린다. 엄마의 설득으로 새 학교의 하키 오디션에 가지만 전면에 나선 버럭이의 활약으로 화를 내며 나가버린다. 이때 자부심의 원천인 하키섬도 파괴된다.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상실한 기쁨이와 슬픔이가 마음의 바닥까지 내려가 보니 장기 기억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는데 오랫동안 기억을 살리지 않으면 폐기 처분한다고 한다. 거기서 우연히 만난 라일리의 상상 친구 빙봉과 협력하여 무의식을 탐색하는데 기쁨이가 라일리가 이렇게 된 건 슬픔이의 책임이라며 따돌리려다가 사고로 기쁨이만 기억의 폐기장으로 떨어지게 된다. 점점 형태가 사라져 가는 자신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기쁨이는 과거 라일리가 하키경기에 져서 실망했을 때 부모와 친구들이 위로해 주러 와서 그녀를 일으킨 것은 다 슬픔이의 덕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빙봉의 도움으로 간신히 폐기장에서 탈출한 기쁨이는 슬픔이를 만나 함께 관리실로 돌아온다.

그들이 없는 동안 까칠이와 버럭이의 부추김으로 라일리는 자신이 불행해진 원인이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가출을 감행하여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이때 돌아온 슬픔이가 다정하던 부모님과의 한때를 보여주는 핵심 기억을 떠올려 보내고 그녀는 마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울면서 행복했던 미네소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고백하고 부모님도 그녀와 공감하며 포옹한다.

이때 무너졌던 가족섬이 다시 떠오르고 새로운 로맨스 섬, 패션 섬, 아이돌 섬도 생긴다. 관리실 제어판에는 사춘기 버튼이 생기고 다양한 종류의 욕 버튼도 활성화한다.

새로 가입한 하키팀 경기에 부모님이 응원하러 오고, 라일리는 얼음판에서 지나가다가 부딪친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둘은 당황하는데 이때 각자 마음속의 다섯 에이전트들이 바쁘게 회의를 시작한다.

     



심리학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다루는 학문이니 다양한 가설이 있다. 프로이트가 ‘자아, 이드, 초자아’의 모델을 제시했고 융은 ‘페르소나, 자아,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자기’의 모델로 마음을 설명했다.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이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으니 어려운 학문 용어보다는 친근하게 인격화한 모델이 훨씬 효과적다. 영화를 본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감정이 이랬다 저랬다 변화하는 이유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밝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문화에서 억지로 즐거울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융의 콤플렉스 개념을 쉽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섬이라고 표현한 기억 덩어리가 콤플렉스에 해당한다. 콤플렉스는 흔히 열등감이라고 오도되지만 원래 가치중립적인 언어이다. 중력이 큰 핵심 기억이 가운데 있고 그것과 유사한 기억  거기에 달라붙으면서 점차 덩어리가 커진다. 영화에서처럼 하키를 잘하는 라일리가 구축한 성취 콤플렉스는 비슷한 일을 할 때 자신감을 준다. 또한 부모에게 어릴 때 무조건적으로 받은 사랑 컴플렉스는 일생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 이처럼 긍정적인 콤플렉스도 있지만 부정적인 콤플렉스도 있다. 어떤 사람이 이별의 상처가 있다면 그 당시와 비슷한 상황과 분위기만 되어이별 플렉스가 작동하여 우울해지는 것이다. 융은 책에서 어떤 여자가 과거 기차역에서 애인과 아픈 이별을 했는데 그녀는 나중에 멀리서 기적소리만 나도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렸다고 썼다.

영화에서 섬이 허물어지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하는 것처럼 콤플렉스는 나이와 환경에 따라, 또는 그것을 의식화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새로 생기기도 없어지기도 한다.

     

사람의 감정과 성격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 경험과 마음속 요소들의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과, 언제나 기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어린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준 것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거기에 가시화한 캐릭터들도 예쁘고 설득력이 있었다.


아이가 어릴때 친밀감을 느끼고 사랑 받는 경험을 많이 하게  해서 긍정적인 플렉스를 만들게 해야겠다.

상대방이 화를 낼 때 그사람은 늘 화만 내는 사람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저 사람 마음속에서 지금 버럭이가 키를 쥐고 있구나”, 또는 “이 말이 저 사람의 플렉스를 건드렸구나”생각할 수 있어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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