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진화론이나 분류학이나 분기학 같은 과학에 관한 저술이면서, 저자의 솔직한 고백이 들어있는 인생 회고록이기도 하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란 과학자의 전기이기도 하고, 누가 제인 스탠퍼드를 죽였는지 밝히는 미스터리 소설 같기도 하고 우생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도덕이나 철학을 다루기도 한다. 여러 분야를 통섭할 수 있는 종횡무진 작가의 재능에 감탄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읽은 후 감동까지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룰루 밀러는 과학 전문 기자로, 자신의 실수로 연인이 떠나가자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기다리는 긴 시간을 버티기 위해, 고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롤모델을 찾기 시작한다. 그래서 찾은 인물이 바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란 분류학자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대단한 집중력으로 모든 것을 범주화하려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릴 때는 수년간 별을 보며 별자리를 탐구해서 모든 별자리를 섭렵했고, 자신이 살던 동네의 자세한 지도를 만들었고, 그다음은 주위의 모든 꽃을 따서 책상에 늘어놓고 규칙에 따라 분류했었다. 학자가 된 뒤에는 북미의 담수 물고기를 잡아서 명명하는 작업을 수행해 왔다. 이 모든 일을 지치지도 않고, 별별 사고와 가정의 비극이 생겨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곧바로 회복하고 다시 뛰어드는 놀라운 끈기와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푹 빠진 저자는 학문적 업적 이외의 인간적인 자료까지 모조리 찾아 인물에 대해 알아본다. 그는 자신의 스승인 루이 아가시의 영향으로 모든 학문이란 신의 생각을 번역하는 작업이고, 분류 결과 생물의 꼭대기는 인간이 위치하는 ‘완벽함의 사다리’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생물에는 등급이 있다고 생각했고, 인간끼리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서 결국 나중에는 열등한 인간은 자손을 퍼트리면 안 된다는 우생학을 지지하고 선전하는 사람이 된다.
또한 초대 스탠퍼드 대학의 학장이 되었을 때 창립자인 제인 스탠퍼드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그녀가 그를 쫓아내려고 하던 시점에 그녀가 독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주위의 의사들은 그녀가 독살되었다고 했지만 데이비드는 그녀는 과식으로 자연사했다고 계속 주장하였다. 그 시기에는 그의 학문적 권위로 죽음의 원인이 묵살되었지만, 저자는 데이비드가 그의 책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독극물인 스크리크닌을 자주 사용했다고 쓴 내용을 찾아내었고, 이 약품이 그녀에게서 검출되었던 성분과 같다는 것을 알아낸다. 결국 그가 그녀를 독살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게다가, 현대의 분기학자들은 ‘어류’라는 범주가 ‘포유류’같이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같은 범주가 되려면 같은 조상에서 비롯되어야 하지만 어류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데이비드는 있지도 않은 어류의 이름을 밝히는 데 평생을 쓴 것이 되었다.
저자인 룰루 밀러는 자신의 구세주를 찾으려고 시작한 긴 여정에서 데이비드라는 과학자의 자기기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어떤 비극에도 비관하지 않는 특유의 낙천성으로 많은 일을 했지만, 우생학이란 잘못된 틀로 인간의 ‘적합도’를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고, 자신의 걸림돌이 되는 사람을 해쳤으며, 연구 과정에서 수많은 물고기를 해부하면서 아마도 어류라는 범주의 오류를 알았을 텐데도 그저 네이밍만을 계속해서 유명해졌던 것이다.
이때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역시 과학자였던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는 세상의 확실한 법칙은 엔트로피 법칙밖에 없다며, 이 세상에는 진리도 신도 없고 혼돈만이 우리의 지배자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는 어린 딸에게 그녀가 특별히 중요한 존재는 아니라며, 그러니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대범하게 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위대한 과학자 다윈도 진화에 방향이나 법칙은 없고, 종들 사이에 경계선은 없다고 했었다. 즉 분류학자들이 만든 분류단계는 인간의 자의적 발명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에게 자연에 간섭하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했었다.
긴 여정 끝에, 저자는 날림으로 만든 범주를 고수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전 남자친구가 반드시 돌아온다는 믿음은 자신의 희망일 뿐, 꼭 일어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 자의적인 범주 너머의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랑의 대상은 반드시 이성이어야 한다는 선은 사람들이 그어놓은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양성애적 정체성을 인정하고 여성을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하고 행복해진다.
세상의 모든 학문은 틀을 만들어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을 설명하는 행위이다.
과학자들은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론을 만든다. 그러나 과학사가 증명하듯, 이론이 완벽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상을 더 잘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이 나오면 새 틀로 다른 해석을 한다. 이런 과정을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토머스 쿤이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으로 잘 보여주었었다. 우리가 해 온 공부라는 것이 다 이런 틀을 학습하는 과정이어서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어떤 것이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나 이론이 뒤집힐 때마다 드는 생각은, 역시 이론이나 틀은 사람이 설명하기 편하자고 만든 것일 뿐,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동물의 분류 중 '어류'라는 범주는 지금까지 우리가 그저 외양만 보고 나눈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겉모습과 상관없이 근본적인 유사점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분기학자인 캐럴 계숙 윤이 지적한다. 결국 그녀는 이론이나 기준은 인간이 자연 위에 그린 자의적인 디자인일 뿐이어서 그 너머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솔직히 저자가 비판하는 분류학자 데이비드 조던에게 나와 비슷한 점이 보여서 뜨끔했다. 체계를 정하고 그 틀대로 관심 있는 것들을 정리하는 게 나의 취미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혼란 그 자체이지만 거기서 질서를 발견하고 의미를 해석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그가 자신이 물고기를 찾아서 이름을 정해주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는데, 자신을 신처럼 생각하는 그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다 어느 정도 그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의 틀이 잘 못 되었거나 틀이 너무 딱딱할 경우 개인적인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에 위험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좋은 과학자란 이론이나 틀이 없어도 세상은 여전히 존재하고, 틀은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정한 도구라는 한계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생화학자인 저자의 아버지가 우리는 곧 사라질 존재라며 그녀가 개미보다 더 중요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뜻도 그러니 대충 살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특정 원칙을 따라갈 필요가 없으니 대범하게 세상을 보고 즐겁게 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