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병옥 Oct 26. 2023

음식 대신 먹는 알약이 있다면?

책 <행복한 밥상> by 마이클 폴란

     

코비드에 두 번 걸렸었다.

호흡기 질환답게 여러 증상이 있었지만 심하지는 않았는데, 제일 힘들었던 것은 냄새를 맡지 못하고 맛을 못 느끼게 된 것이었다.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그때 식사가 정말 고역이었다. 그저 기운 떨어지지 않게 먹었을 뿐이고, 맛은 없고 배만 불러서 기분이 나빴었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식탐도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간혹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식사는 조금 하고 영양제와 보조제로 해결하는 사람들을 볼 때 솔직히 이해가 안간다. 어린 왕자에 나왔던 목이 마를 때 갈증을 없애주는 알약으로 대신  해결하겠다는 사람이 연상된다. 물을 먹는 시간을 아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어린 왕자는 자기라면 그 시간에 천천히 우물가로 걸어가서 도르래의 노래를 들으며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려서 물을 마실 거라고 했었다. 그 아이라면 음식의 경우도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천천히 건강한 재료로 요리를 해 먹겠다고 말했을 것 같다. 바빠서 대충 식사를 때우고 일만 해야 하는 삶은 참으로 비인간적이다.

요즘은 영양가를 따져서 음식을 먹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과연 음식을 단지 화학 성분으로 환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의문이 든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행위는 생물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무엇을 섭취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폴란이란 작가를 좋아한다. 자연과 음식과 정원에 대해 아름다운 문체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출중한 재주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글감에 대해 수년간 발품을 팔아 조사하고 실제로 경험해서 진실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어서 더 존경한다. 나는 영화를 보기 위해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유명 작가의 책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해서 보여주는 콘텐츠도 많아졌고 그중 마이클 폴란의 책 ‘Cooked(요리를 욕망하다)’도 4부작으로 나와 있어서 반가워하며 시청했다.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좋은 내용이었다. 자연과학쪽을 전공한 나로서는 물, 불, 바람, 흙이라는 고대 4원소설이 낯설지 않다. 그는 이 4가지 방법으로 요리를 들여다본다. 물을 이용한 찜 요리가 얼마나 멋진 요리인지, 불로 식재료를 구워 먹는 행위가 인간이 진화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글루텐 분자 안에 효모가 내뿜는 공기인 이산화탄소를 가두어서 부풀게 하여 빵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문화적인 작업인지, 흙 속의 미생물의 조화로 탄생한 발효식품이 얼마나 신비로운지를 여러 민족의 요리로 보여준다. 발효식품 부분에서는 치즈도 나오지만 우리의 김치도 등장한다.

      

이 프로그램을 본 김에 과거에 읽었던 마이클 폴란의 책 ‘행복한 밥상(In Dfense of Food)을 소환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유행했던 온갖 다이어트 방법을 떠올려 봤는데 반짝하는 유행이 아니라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몇 가지는 지중해식 다이어트, 구석기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등등이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보는 각도에 따라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비율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탄수화물을 많이 먹는 편이니까 비율을 좀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보면 이런 식이 요법들의 공통점은 모두 '신선식품'을 먹는다는 것이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경우는 대부분 가공식품을 많이 먹어서이다. 시간은 없고 에너지는 보충해야 할 때 사람들은 흔히 가공식품과 초가공 식품을 먹게 된다. 그 대가는 대부분 비만과 대사성 질병과 피부질환으로 돌아온다.

과거 원주민들이 건강하게 지내다가 문명사회에 편입된 후에 온갖 건강 문제에 시달린 것만 보아도 가공식품이 좋은 음식이 아닌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요즘 밀가루를 먹으면 탈이 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것도 과거에는 근처에서 나는 밀을 신선할 동네 물레방앗간에서 적당히 깎아서 껍질을 포함해서 먹었지만 요즘은 다른 나라에서 밀을 수입해야 해서 보관상 유리하게 완전히 도정한 밀을 썩지 않게 처리해서 들여온 것을 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보면 하얀 빵도 가공식품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단백질을 무조건 많이 먹는 것도 문제가 있다. 과거에는 자연 상태의 동물을 사냥해서 신선한 상태로 먹었지만 현대에는 기업이 동물을 대량으로 사육해서 고기를 얻는다. 대량 사육의 경우 사육환경의 비윤리성은 물론이고, 사료의 성분이나 항생제 주입등을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들을 결국 마지막에 포식자의 꼭대기인 인간이 섭취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작가는 증조할머니가 보아서 모르는 이름의 재료가 들어간 식품은 좋지 않다고 조언한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식품의 포장 뒷면에 적혀있는 알 수 없는 수많은 성분들은 다 대량생산에서 투입한 화학 물질들이다.

     

마지막으로 제품의 회사들은 자기들의 물건을 팔기 위해 ’요리는 불평등하고 힘든 노동’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우리에게 오랫동안 주입했고 우리도 그런 생각에 물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에게 요리는 중노동이고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여성이라는 생각을 세뇌시켜서 음식을 사 먹도록 만들었다. 고급 식당에서 좋은 재료로 제대로 요리한 음식만 먹을 수 있는 계층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결국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은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에 요리하는 음식을 주로 먹게 되었고 기업에서는 싸면서도 맛은 좋게 유지하기 위해 각종 화학물질을 넣고 있다.

물론 유교사회에서 처럼 요리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을 완전히 분리해서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여전히 나쁘지만, 가족이나 공동체의 사람들이 요리에 같이 참여하고 나눈다면, '진짜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서 먹는 것처럼 행복하고 인간적인 행위는 없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만들어서 가족이나 공동체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따뜻한 행위이다.

생각해 보면, 과거의 행복한 기억은 다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었던 밥상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인간만이 재료를 변형시켜서 소화가 잘되게 하거나 맛있게 만들어서 소중한 사람들과 나눈다. 즉, 이것은 가장 인간적인 행위이다.    

이전 10화 이 많은 쓰레기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