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병옥 Jun 10. 2024

문학과 팬심이 어우러진 북토크

책 <아버지의 광시곡> by 조성기

미국에 살고 있는 오빠가 오랜만에 한국에 왔다.

바로 위의 오빠라 제일 친하기도 하고 문학을 좋아하는 오빠라 말도 가장 잘 통한다.

가족모임에서 이미 만났지만 이야기를 많이 못 해서 아쉬웠는데, 북토크에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왔다. 평소에 오빠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인 소설가 조성기 님이 신작 <아버지의 광시곡>을 출간하고 북토크를 한다고 한다. 가족 모임에서 오빠로부터 미리 책을 선물 받은 터라 부지런히 책을 읽고 오빠와 함께 북토크에 참석했는데 소강당의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문학팬들이 많이 모여서 놀랐다.

    

저자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이승만 정권의 선전도구로 이용되는 교사의 현실에 자괴감을 느끼며 노조를 결성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용공분자로 몰려 고문과 탄압을 받고 직장까지 잃어 경제적으로도 힘들게 되고 수년간 미행까지 당하며 불안한 삶을 사느라 매일 술에 절어 주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일본에서 공부한 인텔리로서 사법고시에 50이 다 되도록 도전을 했지만 계속 실패했었다.

이렇듯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저자인 맏아들이 공부를 아주 잘하여 경기고등학교와 서울 법대에 진학을 하자 그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모두 투사한다. 당연히 아들이 판검사가 되어 그의 한을 풀어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경상도 사람이라 무뚝뚝하고 아들이 1등을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여 칭찬을 한 적도 없고 자신에게 무거운 짐만 올려놓는 아버지에게서 독립하려고 아들은 평생 발버둥 친다.

고등학교시절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발휘하며 문예상을 타고 대학에 와서도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등 문학에 두각을 나타낼 때 아버지는 아들이 혹시 법관이 아닌 글이나 쓰는 문인이 될까 봐 걱정하지만, 아들은 한술 더 떠서 종교에 심취하며 선교단체에 몸담아서 아버지를 실망시킨다.

젊은 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실패를 거듭하고 매일 술 취해서 사는 사람으로 그의 소설에도 자주 등장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자도 나이가 들자 기억은 다시 편집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올려놓던 짐이 사랑이라는 것도 깨닫고 자신도 그토록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것도 알게되며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다른 소설 속의 아버지가 실제와 허구가 혼합되었다면 이 책은 양념을 제거한 100프로 실제를 묘사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그에게는 아버지가 이다.

자신을 세상에 낳아주신 아버지와, 종교단체에서 자신을 이끌던 지도자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있다. 현실의 남루한 아버지와, 로고스로 무장한 이상적인 아버지와, 모든 것을 다스리는 하늘의 아버지가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아버지의 세 단계를 거쳐가는 과정을 차분히 따라갈 수 있었다.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는 영원하니 그 뜻을 헤아리기 위해 아직도 공부 중이고, 젊은 날에 빠졌던 이상적인 아버지에게는 환멸을 맛보았고, 마지막 그의 애증의 상대이던 친아버지는 돌아가신 후 용서하고 사랑을 받아들인다.

인생의 노년을 맞아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을 받아들이고 자신도 사랑을 고백하는 일이 어쩌면 모든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북토크장의 참석자들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발표하는 시간에 울컥하는 모습을 보인다.

저자의 글을 읽은 독자들은 자신들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정리한 글을 여러 편 써서 짧은 브런치북으로 묶은 적이 있었다.

    

북토크에서 저자에게 사인을 부탁하니 써주신 글이 “疎而不漏”(소이불루)이다.

이것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天網恢恢疎而不漏’

(천망회회소이불루)에 나오는 구절이다.

뜻은 하늘의 그물은 아주 넓어서 눈은 성기지만 빠뜨리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우선, 작가가 아버지의 기억이 아주 많은데 잊지 않고 자신의 그물 위에 다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다음은 법조계에서 많이 쓰는 말인데 사법 시스템이 성긴 것 같지만 범죄를 다 찾아낼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세 번째로 신이 많은 사람을 다스리니 나쁜 사람을 지나칠 것 같지만 다 걸러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지막은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북토크장에서 작가가 설명할 때 알아들은 것으로, 신은 착한 사람은 누구도 빠뜨리지 않고 구원한다는 의미도 되겠다.     

나의 그물 상태는 어떠한가? 너무 촘촘하여 늘 긴장하며 살면 안 되겠지만, 살아있는 동안 중요한 것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빨리 해진 곳을 보수해야겠다.


조성기 작가님과 오빠


이전 12화 세상을 틀에 완벽하게 넣고 싶은 유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