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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Dec 11. 2023

영화<스토커>-꽃이 자기 색을 고를 수는 없다

인디아의 성장 이야기

박찬욱 감독의 첫번째 할리우드 제작 영화로, 그의 색채가 물씬 느껴지는 인상적인 작품을 소개한다.

인디아는 아름다운 엄마를 닮아 예쁘고 아빠를 닮아 머리가 매우 좋은 소녀이다. 또한 그녀의 감각은 남달라서 남이 못 듣는 것을 듣고 남이 못 보는 작고 먼 것까지 볼 수 있다. 공부를 아주 잘 하지만 학교에서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외톨이로 지내며, 접촉하는 것도 싫어해서 남자아이들과도 사귀지 않는다.

그녀의 18번째 생일에, 아빠가 죽고 대신에 삼촌 찰리가 갑자기 나타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여덟 살이 되며 인디아가 성인이 되는 생일에, 아빠가 볼일을 보러 갔다가 원인 모를 자동차 화재 사고로 죽게 된다. 아빠를 묻은 뒤 장례식에 많은 친척들이 모이는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삼촌 찰리가 오고 엄마가 인디아에게 소개를 해준다. 그는 오랫동안 유럽에 있었다고 하고 조카의 매년 생일에 사이즈만 다른 똑같은 디자인의 구두를 보내왔었다.

가정부 할머니는 찰리를 보고 놀라고 그와 말다툼을 하는 듯했는데 얼마 뒤 집을 나가서 보이지 않게 된다. 찰리는 한동안 집에 머물겠다고 하며 엄마와 외출을 하고 인디아는 몰래 삼촌의 가방을 뒤져본다. 낯익은 선글라스가 보이고, 슈박스가 들어있는데 아마도 그녀의 생일 선물인 것 같다. 엄마와 아이스크림을 들고 귀가한 삼촌은 인디아에게 지하 냉동고에 그것을 넣어달라고 하고 거기서 그녀는 가정부의 시체를 발견한다.

며칠 후 고모할머니가 방문해서 인디아와 엄마에게 찰리에 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엄마가 불쾌해하며 할머니를 보낸다. 이번에도 찰리가 그녀를 쫓아가서 살해한다.

인디아가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오는데 불량한 남학생들이 그녀를 따라와서 괴롭히자 그녀가 연필로 찌른다. 평소 인디아를 좋아하던 남학생 윕이 말려서 그들은 돌아간다. 멀리서 찰리가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집으로 와서 인디아가 피아노를 연주하자 어느새 찰리가 옆에 앉아서 이중주를 한다. 즉흥으로 합을 맞추어 격정적인 연주를 하고 그는 사라진다.

그날 밤 인디아가 외출하여 남자애들이 어울리는 술집으로 가서 윕을 부른다. 둘은 달빛 아래서 숲 속 놀이터로 함께 걸어가고 모범생이 왜 왔냐는 질문에 인디아는 그녀도 모르는 자신의 부분을 알고 싶다고 대답하고 둘은 키스한다. 갑자기 그녀가 혀를 물어 피가 나자 윕은 화를 내며, 그녀가 문을 열었으니 들어가야 한다며 폭력을 쓴다. 이때 찰리가 나타나서 그를 묶은 후 그녀에게 때리라고 한다. 결국 찰리는 그를 죽이고 땅에 묻는데 인디아는 묘한 쾌감을 느낀다.


돌아온 인디아는 실크 잠옷을 입고 엄마 방에 가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머리를 빗겨달라고 한다.

아빠 서재에 들어온 그녀는 아빠가 생일 선물로 준 열쇠가 책상 서랍의 열쇠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여는데, 거기에는 권총 한 자루와 사진과 편지 묶음이 있었다. 사진에는 아빠가 어릴 때 찍은 삼 형제가 웃고 있었고, 편지는 찰리 삼촌이 조카 인디아에게 18년 동안 보낸 것이었다. 그 내용은 인디아만이 그의 파트너이고 그도 그녀처럼 터치를 싫어하고 감각이 놀랍도록 발달해서 둘은 같은 피가 흐르고 있고 가문을 이끌 사람은 인디아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발신 주소는 크로포드 정신병원이었다.

알고 보니 삼촌은 어릴 때 아빠가 사랑하던 막내 동생을 모래에 구덩이를 파고 빠트려서 죽이는 바람에 정신 병원에 오랫동안 수용되어 있었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여 그를 퇴원시키기 위해 아빠가 그곳으로 간 것이었고 동생을 집에 들이지 않고 돈을 주어 멀리 보내려고 했으나 가 자기를 버린다며 흥분하여 형을 죽이고 차에 불을 지른 것이었다.

찰리는 성인이 된 인디아에게 낮은 구두 대신 하이힐을 선물하고 함께 떠나자고 한다. 둘을 바라보며 불길한 생각이 든 엄마는 절망하여 딸에게 왜 엄마를 사랑하지 않냐고 절규하고, 찰리에게 인디아에게서 떨어지라고 한다. 찰리가 엄마의 목을 조르는 순간, 인디아가 사냥 엽총을 들고 나타나자 찰리는 그녀가 엄마를 쏘는 줄 알지만, 그녀는 차분하게 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그녀는 엄마 블라우스를 입고, 삼촌에게 선물 받은 하이힐을 신고, 아빠의 벨트와 선글라스를 끼고 찰리의 차를 타고 질주하다가 과속으로 경찰관에게 걸린다. 경찰관을 정원 가위로 찌르자 경관이 피를 흘리며 놀라서 옥수수밭으로 도망가는데 인디아는 엽총을 들고 침착하게 그를 향해 발사한다.

그 순간 주위의 하얀 꽃들이 핏빛으로 물든다.

     


화의 제목인 스토커(Stoker)는 발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스토킹 하는 사람(Stalker)과 같지만, 여기서는 패밀리 네임으로 스토커 가문이라는 뜻이다. 인디아는 스토커 가문의 유일한 후손으로 그 가문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 스토커 가족들은 머리가 매우 좋고 감각이 유난히 발달했는데, 아빠가 걱정하는 부분은 바로 동생 찰리의 특성인 독점욕과 자기 중심성과 살인을 즐기는 기질이다.


그의 형제가 세 명이었는데 맏이인 그가 막내 동생을 더 좋아하고 아끼자, 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막내를 죽였다. 찰리가 정신 병원에 들어가 있는 동안 그는 사랑하는 딸에게서 동생의 모습을 발견한다. 혹시라도 인디아에게 그런 측면이 발현될까 봐 그는 다른 자식을 낳지도 않고 엄마를 제쳐놓고 딸만을 챙긴다. 또한 본능을 없앨 수는 없기 때문에, 큰 죄를 막기 위해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작은 죄를 차분히 수행하도록 훈련시킨다. 즉, 새를 사냥하는 여행에 데리고 다니며 사냥감을 아무 때나 죽이지 않고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방아쇠를 당기도록 끝없이 훈련시켰던 것이다. 이런 훈련이 충동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절제를 할수 있게 해준다. 늘 이것을 상기할수 있도록 아빠는 잡은 새들을 박제해서 인디아가 보기 쉬운 장소에 전시해 놓는다.

    

동생이 퇴원하게 되자 형은 그가 살 수 있도록 돈과 차와 집을 먼 곳에 준비해 놓고 보내려 한다. 찰리가 자신의 집에 와서 딸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찰리는 형을 죽여버린다. 그는 인디아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며 동일시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집착한다. 사고로 위장한 형의 죽음 후 장례식에 와서 그 집에 머물게 된 찰리는 아빠가 간신히 잠재운 인디아의 본능을 일깨운다. 소녀에서 성인이 되는 전환점에서 그녀는 관능을 느끼지만, 놀랍게도 누구를 죽였을 때의 즐거움이 그것을 앞지른다.

     

엄마는 인디아가 태어난 후 아빠에게서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찰리를 보자 젊을 때 자신에게 잘해주던 남편이 기억나며 그에게 감정을 느끼지만, 찰리는 자신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진실한 마음이 없다. 자신이 동일시하는 인디아를 데리고 멀리 떠나기 위해 엄마까지 죽이려 할 때, 인디아가 엽총을 들고 온다. 찰리가 착각한 것은 인디아는 아빠의 교육으로 그와는 달리 참으며 때를 기다릴 줄 알았고,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지는 않았으나 그녀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인디아는 엄마가 아닌 찰리를 쏘아서 죽인다.

그리고 그녀는 어른이 되어 자기의 삶을 살기 위해 떠난다. 엄마처럼 여성으로, 아빠처럼 머리 좋고 침착하게, 찰리처럼 차갑고 잔인하게 태어났지만, 그 누구와도 다르게 그녀는 자신의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의 상징을 마지막 경관이 총을 맞고 흘린 피가 흰 꽃을 붉게 물들이는 것으로 보여준다.

꽃이 자신의 색을 고를 수는 없듯 그녀가 그렇게 태어난 것은 자신의 책임은 아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녀는 마침내 자유를 얻고 자기만의 삶을 시작한다.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막장 드라마의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다. 살인에, 친척간의 로맨스에, 형제간의 질투까지 들어있다. 그러나 신화처럼 영화 속 이야기를 심리학적 은유와 상징으로 받아들이면 해석을 편안하게 할 수있게  된다. 살인을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비유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집안 대대로 유전으로 이어오는 특질은 아무리 억압해도 없어지지 않고 그사람 안에 들어있다. 사회적으로 인정되거나 좋게 평가받는 면은 자아나 페르소나로 표현되지만, 어둡고 충동적인 측면은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다가 압력이 세지면 어느 순간 튀어나온다. 인디아의 아빠는 딸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다스리도록 교육시키는 초자아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사춘기는 억압된 본능의 힘이 커져서 제어가 잘 되지 않는 시기이다. 결국 이때 찰리로 상징되는 이드 부분이 초자아를 압도한다. 그것의 은유가 찰리가 아빠를 죽이는 행위이다. 또한 인디아가 엄마를 무시하고 싫어하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 엄마를 선택하고 살리는 것도 어릴 때는 이성적인 것에만 가치를 두다가 성장하면서 여성적인 정체성도 받아들이는 것의 비유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초자아와 이드의 치열한 내면의 구조적 싸움을 거쳐 인디아라는 자아가 형성 되는, 한 편의 성장 영화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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