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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Dec 21. 2023

영화<잠>-결혼은 공포 영화다

결혼의 문제와 해답

     

남자와 여자가 사랑해서 결혼을 한다. 연애를 오래 했거나 동거해 보고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경우든 다들 이구동성으로 상대가 결혼 전과는 다르다고 한다. 그만큼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서로 책임지고 2세까지 만들어 가정을 만드는 결혼은 연애와는 차원이 다르다.

3부로 나뉘는 영화는 호러와 미스터리 스릴러를 오가며 놀라움과 재미와 깨달음을 준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부-

수진은 직장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유능한 여성이다. 그녀는 무명 배우 현수와 사랑해서 결혼하고 임신해서 출산을 앞두고 있다. 둘은 서로를 배려하고 무슨 일이든 함께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 현수가 자다가 벌떡 일어나 “누가 들어왔어.”라고 말하더니 다시 쓰러져서 잔다. 잠꼬대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증세가 심해져서 자다 말고 부엌으로 나가서 냉장고를 열고 생고기나 날생선 같은 이상한 것을 먹고, 피가 날 정도로 피부를 긁어서 베개가 붉게 물들어 있기도 한다. 급기야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 하는 걸 간신히 붙잡고 병원에 가게 되는데 그의 병명은 ‘램수면 장애’라고 한다. 약을 먹고 좀 나은 듯했지만, 냉동만두 대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냉동실에 넣는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이쯤 되니 수진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2부-

수진이 예정대로 예쁜 딸을 출산한다. 현수도 딸을 예뻐하지만 수진은 강아지가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없다. 신경이 예민해져서 혹시라도 남편이 잠결에 아기를 해칠까 봐 아기를 데리고 화장실 문을 잠그고 욕조에서 자기도 하고, 남편을 방에서 재우고 그 방문을 자물쇠로 잠그기도 한다. 현수가 당분간 오피스텔에서 혼자 자겠다고 해도 그건 또  안된다고 한다. 친정엄마는 집에 용하다는 무속인을 데리고 오는데 그녀는 수진을 좋아하는 귀신이 현수에게 붙었다며 귀신은 “개소리도 아기 울음도 안 들리는 곳에서 둘이만 있고 싶다”라고 했다고 한다. 귀신을 쫓으려면 그 사람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고 하니 후보자를 떠올리는데 아랫집 할아버지가 수진에게 자주 추파를 보내며 그들에게 층간소음을 항의했었는데 얼마 전 돌아가시고 딸이 그 집에 이사 왔다는 것을 알아낸다. 귀신이 할아버지라고 확신한 수진은 며칠간 잠을 못 자서 충혈된 눈으로 현수를 할아버지 귀신이라고 생각해서 끈으로 묶고 칼로 찌르려고 하고 결국 가족들은 그녀를 정신 병원에 입원시킨다.

-3부-

아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현수는 열심히 수면 클리닉에서 적극적인 치료를 받고 완치 판정을 받는다. 수진도 치료가 되어서 퇴원하고 현수가 집에 돌아갔을 때 집의 벽은 온통 무당의 부적으로 도배가 되어있었고 커튼을 쳐서 컴컴한 실내에 촛불이 켜져 있었다.

현수가 아무리 완치되었다고 말해도 아내는 듣지 않고 몽유병 증상이 없어진 것은 굿을 하고 현수의 등에 부적 글씨를 새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귀신의 특성을 공부하고 할아버지 귀신이 현수에게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는 증거를 수집해서 PPT까지  작성해서 보여준다. 냉동고에는 아랫집 강아지의 시신이 들어있고 화장실에는 아랫집 여자가 묶여서 갇혀 있다. 수진은 귀신이 자기의 강아지와 아기를 해친다면 자신도 그 집의 강아지와 그의 딸을 해치겠다고 소리친다. 그날이 할아버지가 죽은 지 100일이 되는 날이라 떠나지 않으면 영원히 남편에 붙어살 것이라고 믿고 귀신에게 떠나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떠나지 않으면 할아버지의 딸도 죽여버리겠다며 그녀에게 칼을 들이대자, 현수의 눈빛이 달라진다. 딸도 울면서 아버지에게 가시라고 하고, 현수도 할아버지 말투로 자기는 떠날 테니 딸과 손자와 잘 살라고 말하며 베란다 창으로 가서 무언가를 내보내는 시늉을 하며 끝이 난다. “갔어”라고 말하며 쓰러진 현수 옆에 팔을 베고 누운 수진은 오랜만에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든다.

     



연애할 때는 서로 배려하고 예쁜 말만 하던 커플이 결혼을 해서 신혼을 거쳐 임신을 하는 동안 실로 많은 변화가 있다. 성이 서로 달라서 보이는 차이는 물론이고, 예상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해서 서로를 놀라게 한다. 자신이 의식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은 한동안 가장하겠지만 무의식적인 생각과 행동이 나오면 서로 놀라게 마련이다. 그것을 이 영화에서는 몽유병과 감정적인 집착으로 보여준다.


현수는 처음에는 자신이 무명 배우이고 돈을 잘 못 벌어와도 격려해 주는 아내가 고마웠겠지만 누가 봐도 변변치 못한 배역의 장면에서도 멋지다고 칭찬하고, 그만둔다고 하는 그를 최고라고 추켜 세우는 수진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거기에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한다는 것은 여자에게도 열 달 아기를 품고 앞으로 엄마로서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남자에게도 자신이 가장이 되어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쁘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전환점이 된다. 그런데 자신의 실제 상황은 너무 초라한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그에게 수면 장애를 일으킨다. 이때 보이는 증상이 너무 심해서 마치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 든다.

둘이만 좋을 때는 몰랐던 수진의 불안이 엄습한다. 남편이 자신과 아기를 보호해 줄 수 없을 것 같은 것이다. 수진은 남편을 의심한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하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 밖에서 원인을 찾는다. 마침 친정 엄마가 데려온 용한 무당이 던진 모호한 말을 붙잡는다. 남편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붙은 귀신이 이상한 것이다. 그녀는 귀신을 칼로 찌르려 한다.(물론 이는 남편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스릴러가 된다.


수진도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현수도 수면 장애 치료를 받아서 낫지만, 여전히 수진은 불안을 떨칠 수 없다. 할아버지 귀신이 붙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결론을 정해놓고 증거를 찾기 때문이다.) 현수가 아무리 과학적으로 자신이 나았다고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비정상인 아내가 무서워진 현수는 가족을 떠나려고 한다. 그때 수진이 무슨 일이든 같이 해결하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냐고 한다. 정신을 차린 '배우' 현수는 아내라는 '관객' 앞에서 갑자기 할아버지 역할을 맡아 충실히 '연기'한다.(심리치료에서의 사이코 드라마를 연상하게 한다.)

사랑하는 아내가 불안하다는데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드디어 안심한 아내는 그의 품에서 편안히 잠든다.

    

서로 다른 존재가 가정을 꾸미고 가족이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든 부부가 크고 작은 고비를 넘는다. 그래도 서로를 다 알지는 못한다.

잠은 결혼의 은유이다. 수면 장애는 결혼생활이 삐꺽댄다는 신호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결혼은 일종의 공포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서로 속아주기도 하고 하얀 거짓말도 해가면서 결혼을 유지하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지만 힘든 결혼에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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