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나 호박 상추가 원래 비닐에 들어있고, 외양간 소와 포장된 소고기가 다른 줄 아는 아이들과 수준이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조그만 텃밭이라도 가꾸며 수확하여 식탁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고, 지금 한창인 채소가 무엇인지 체감하는 곳은 안타깝게도 대형 슈퍼이다.
6월이 되어 슈퍼에 가보니 오이가 한창이다.
나는 오이를 좋아한다. 여름 오이는 식감도 좋고 수분도 많아서 차게 보관했다가 여러 음식을 해 먹으면 좋다. 샐러드나 김치, 무침 등 쓰임새도 많고 향도 시원하다. 그래서 여름 내내 여러 가지 오이 요리를 해 먹는다.
슈퍼에서 싱싱한 오이 50개를 사 왔다. 예전에 레시피를 쓰기도 했던 장마 전에 담가야 하는 오이지를 비롯해서 다양한 오이 요리를 해 먹기 위해서이다. 온실에서 가꾸는 오이가 사시사철 나오지만 제철에 나오는 오이는 껍질도 단단하고 본연의 맛이 느껴진다. 겨울 온실 오이가 빨리 무르는 것에 비해 보관기간도 길다.
물론 오이 향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의 며느리는 오이 향을 좋아하지 않아서 아들 내외가 집에 올 때는 오이 요리를 하지 않는다. 오이가 들어가는 요리에는 대신 셀러리를 넣는다. 오이는 딴 지 오래돼서 시들었을 때 거북한 향이 나는데, 예민한 사람들은 싱싱할 때도 그 냄새를 느끼는 것 같다. 아무튼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 향을 싫어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정 음식을 싫어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거나 알레르기 반응이니 존중해 주어야 한다.
오이지를 좋아하셨던 부모님이 돌아가시니 담그는 오이지의 양도 많이 줄었다. 가족들은 가끔씩 먹는 정도이고 나만 좋아하니 3~40개 정도면 충분하다. 6개는 오이깍두기를 담그고 나머지는 샐러드를 해 먹었다.
오이소박이는 모양도 예쁘고 가운데 소가 들어있어 오이에 간도 잘 배어 맛이 좋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은 그것을 찢어주지 않으면 먹지 않아서 먹을 때마다 손에 묻히며 찢어주다가 나중에는 처음부터 잘라서 담그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길쭉한 소박이 모양으로 잘라서 하다가 점점 한입 깍두기 모양으로 변형되었다. 전통 한식의 단아한 오이소박이 모양을 한참 벗어나기는 했지만 맛도 좋고 먹기는 편하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오이 샐러드는 딱 오이와 토마토 두 재료만 넣는 초간단 샐러드인데, 레몬즙을 많이 넣은 드레싱에 버무려 여름에 먹으면 시원하고 정말 맛있다. 겉절이처럼 그 자리에서 무쳐먹는 김치 같기도 하고 한식 반찬이나 고기와도 아주 잘 어울린다.
<오이깍두기>
-오이 6개를 깨끗이 씻고 세로로 2 등분하여 가운데 씨 부분을 숟가락으로 파서 제거한다.(그래야 무르지 않고 아삭한 식감을 유지한다.)
-한입 크기로 자른 뒤 소금 2큰술, 설탕 1큰술, 물엿 1큰술을 넣고 1시간 정도 절인뒤 체에 밭친다.
-절인물을 다 버리지 말고 놔두었다가 반컵 정도에 마늘 2큰술, 다진 생강 아주 조금(새끼손톱만큼), 고춧가루 4큰술, 액젓 2큰술, 새우젓 1큰술, 매실액 2큰술을 넣고 잘 섞어서 양념을 만들어 잠시 숙성시킨다.
-부추 적당량, 쪽파 6줄기를 잘 씻어 3cm 정도로 자르고, 양파 반 개를 깍둑썰기 한다.
-보울에 절인 오이와 부추, 쪽파, 양파를 넣고 양념을 부어 살살 버무린다.
-처음에는 겉절이로 먹고, 하루 상온에 놔두고 발효시킨 뒤 냉장고에 넣고 먹는다.
<초간단 오이 샐러드>
-오이를 깨끗이 씻고 겉 부분의 돌기를 제거한 뒤 세로로 2 등분해서 티스푼으로 속을 긁어내고 한입 크기로 자른다.
-방울토마토는 반으로 가른다.
-올리브오일 5큰술, 레몬즙 5큰술, 다진 양파 1/4개, 다진 셀러리 1대(없으면 생략 가능), 홀그레인 머스터드 2 작은술, 꿀 또는 메이플 시럽 2큰술, 소금 반 작은 술, 다진 마늘 1작은술, 후추 조금, 파슬리 가루를 조금 넣고 잘 저어 드레싱을 만든다.
-먹기 직전 드레싱을 넣고 잘 버무려서 맛있게 먹는다.
<오이지>
-오이를 깨끗이 씻는다.
-큰 들통에 물 1L당 천일염 1컵을 넣어 끓인다.(물 4 L면 천일염 4컵)
-뜨거운 소금물에 오이를 넣고 떠오르지 않게 접시와 무거운 물체를 이용해 누른다.
-1~2주쯤 후에 오이가 노랗게 변하며 새콤해지고 물이 뿌옇게 되면 김치통에 넣고 김치 냉장고에 보관하며 여름 내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