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다른 화려한 애니메이션에 비해, 선으로만 이루어진 그림과 표정으로만 감정을 전달하는 단순한 이 영화가 이토록 마음을 움직일 줄 몰랐다.
뉴욕에서 외롭게 사는 도그가 주문한 반려 로봇과 함께 살며, 사랑하고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헤어지고 기억하는 과정을 보면서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슬픈 감정을 느끼게 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혼자 사는 도그는 냉동식품을 데워 먹고 소파에 앉아 멍하니 티브이를 보고 혼자 비디오 게임을 하며 외롭게 살고 있다. 옆 아파트 연인의 다정한 모습을 보다가 광고에 반려 로봇이 나오자 당장 주문하고 조립해서 로봇을 깨운다. 로봇은 도그가 하는 대로 모든 것을 보고 배운다. 그들은 함께 데이트하며 롤러 블레이드를 타며 회전하기도 하고, 보트도 타고, 빌딩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쌍둥이 빌딩을 보기도 한다. 도그는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을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고 흐뭇하게 들여다본다.
그들은 함께 처음으로 바닷가로 놀러 가서 물장난도 치고, 수영도 한 뒤 모래사장으로 나와 누워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저녁때였고 주위의 동물들도 다 돌아간 뒤였다. 도그가 로봇을 깨워 나오려고 하는데 로봇이 움직이지를 못한다. 금속에 바닷물이 닿아서 녹이 슬어버린 것이다. 끌어보려 하지만 무거운 로봇이 꼼짝하지 않는다. 도그는 하는 수 없이 다음날을 기약하고 돌아와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날 로봇 수리서를 들고 해수욕장으로 달려가지만 이미 해수욕장은 폐쇄되었고 다음 해 6월에 개장한다고 한다. 그는 닫힌 철문을 두드리다가 경비원에 의해 쫓겨나간다. 다음날 몰래 자물쇠를 자르는 절단기를 사가지고 와서 문을 열지만 역시 경비원에게 들키고 경찰서에 불려 간다. 공원 관리국에 가서 개장 허가서를 접수해 보지만 기각되고 결국 다음 해 여름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해변에 홀로 누워있는 로봇은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꿈을 꾼다.
요트 연습을 하던 토끼들이 구멍 난 요트 때문에 해변에 착륙했을 때 자신을 구해주기를 기원하지만, 사실 그들은 로봇의 다리를 잘라서 구멍을 메우고 나머지 다리는 버리고 간다.
눈 오는 겨울날, 로봇은 얼음을 헤치고 일어나 도그의 집을 찾아갔는데 도그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다른 로봇과 손잡고 걷는 모습을 보고 실망해서 다시 해변으로 돌아오고 여전히 다리가 잘린 채로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이 영화 스크린 아래로 빠져나와 스크린을 돌리니 화려한 정원이 나오는데 꽃들이 군무를 추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꽃들이 도그의 얼굴을 만든다. 로봇이 도그의 집으로 달려가니 집들은 스크린으로 변하며 무너진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 누군가가 나타나서 금속 탐지기로 고철을 뒤지다가 로봇을 발견해서 가져간다. 고물상에 무게를 재서 로봇을 넘기자 주인은 로봇을 해체해서 던져버린다.
도그도 다시 혼자의 삶을 살며 눈사람과 볼링장에 가는데 눈사람이 도그의 손을 잡을 때 갑자기 그 얼굴이 로봇의 얼굴로 바뀌는 꿈을 꾼다. 연을 날리고 싶어서 해변에 갔다가 오리를 만나고 둘이 정답게 데이트를 하지만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이사 갔다는 엽서 한 장을 남기고 그를 떠난다.
다음 해 해수욕장이 개장하자마자 달려간 도그는 모래를 뒤졌으나 로봇을 찾지 못하고 잘라진 다리 하나만 발견해서 가져온다.
건물 관리일을 하는 라스칼은 부품을 찾기 위해 고물상에 오고 주인이 그것을 찾고 있을 때 그의 아들에게 막대사탕을 하나 주는데 아이는 고맙다며 로봇의 머리와 팔다리를 선물로 준다.
라스칼은 없어진 몸통 대신에 쓸 대용품을 찾다가 더블 데크 카세트 플레이어를 쓰기로 한다. 없는 다리는 청소기 흡입 부분을 연결한다. 드디어 로봇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깨어난다. 라스칼은 옥탑방에 살지만 로봇과 즐거운 경험을 하며 행복하게 지낸다. 얼마 후 뻣뻣한 다리도 관절이 구부러질 수있는 다른 부품을 찾아 교체한다.
로봇을 완전히 잃었다고 생각하는 도그는 찾아온 다리를 로봇샵에 가져가서 보여주며 똑같은 로봇을 찾지만 실패하고 비슷한 다른 로봇을 사 온다. 이들도 새로운 경험들을 쌓으며 즐겁게 지낸다. 다시 해변을 찾은 도그는 이번에는 새 로봇이 물에 절대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습기에 녹이 슬지 못하게 하려고 오일 스프레이를 구석구석 뿌려준다.
로봇은 옥탑방 옥상에서 라스칼과 바비큐를 하던중 케첩을 찾으러 안에 들어와서 창밖을 보다가 새 로봇과 걸어가는 도그를 발견한다. 로봇은 당장 뛰쳐나가 도그를 부르고 도그와 포옹하는데 옆에 있던 새 로봇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쫓아온 라스칼도 그들을 바라보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라스칼과 함께 찍은 사진액자를 보고 정신을 차린 로봇은 몸을 숨기며 대신 과거에 도그와 함께 듣던 음악을 크게 틀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음악을 느낀 도그도 길에서 혼자 춤을 춘다. 둘은 멀리 떨어져서 같은 춤을 춘다.
얼마 후 로봇은 음악을 끄고 도그도 새 로봇과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한다. 둘은 현재 각자의 파트너와 다른 춤을 추기 시작한다.
대사도 없는 영화에 이렇게 공감을 할 줄 몰랐다. 그만큼 애니메이션이 표정이나 상황을 잘 묘사했기 때문에 아픈 첫사랑의 기억을 잘 불러왔다.
첫사랑을 할 때 서로는 모든 것이 처음이다. 그것은 처음 본 존재를 엄마로 인식하는 새끼새의 인프린팅 과정과 비슷하다. 그것은 마음에 각인되어 절대 잊을 수 없게 된다. 두 번째 세 번째는 그저 반복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모든 것이 미숙하다. 잘해주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말했듯이 좋은 감정만으로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없다. 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물 주는 것을 잊어버린다고나 할까. 이 영화에서 도그는 로봇을 너무 사랑하지만 쇠로 만들어진 로봇은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냥 로봇이 즐거워하고 그도 즐거우니까 같이 수영한 것이다.
이렇게 무지 때문에 사랑을 잃은 도그도 영원히 첫사랑 로봇을 잊지 못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로봇 드림은 로봇이 홀로 남겨졌을 때 도그를 그리워하며 하는 상상을 보여준다.
로봇은 자신이 윤활유를 먹고 녹슨 곳이 부드러워지며 예전처럼 아름답고 팔팔해지기를,
도그가 다른 이를 만나지 않고 언제까지나 자신을 기다리기를,
자신의 사랑이 상상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실재이기를 꿈꾼다.
마지막에도 다시 만나면 도그가 지금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선택할 수 있기를 꿈꾼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로봇은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존재를 떠올린다. 라스칼은 산산조각 난 자신을 다시 조립해서 세웠고, 가슴에 카세트 플레이어를 달아 노래를 들려주었고, 새 다리로 다시 달릴 수 있게 만들어준 존재이다.
도그가 마음과 기억뿐이었다면 라스칼은 자신의 모든 약점을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실제로 돌보아준 존재이다. 도그와 함께 한 기억 속 망원경 안에는 쌍둥이 빌딩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실에는 이제 그것이 없다.
현재의 로봇에게는 두 개의 심장이 있다. 하나는 도그를 기억하는 심장, 다른 하나는 라스칼을 위한 심장이다. 도그와의 사랑을 잊을 수는 없겠지만 남은 날은 라스칼과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