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수용소에서 간신히 살아돌아온 여자는 남편의 사랑을 믿지만 꺼림칙한 감정을 걷어내야 한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연기하면서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려 한다.
옛날처럼 남편의 피아노에 맞추어 다시 한번 노래하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은 이루어질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넬리는 독일에서 사는 유대인으로, 2차 대전말에 수용소로 끌려가서 종전이 될 때 머리에 총을 맞았지만총알이 얼굴로 관통하여 간신히 살아남는다. 그러나 그녀는 코가 없어지고 광대뼈가 함몰되어 얼굴을 거의 새로 만드는 성형수술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른다.
성형외과 의사가 예쁜 영화 배우를 거론하며 어떤 얼굴을 원하는지 물어보는데 그녀는 예전 자신의 얼굴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친구가 예전에 친구들과 찍은 단체 사진과 넬리 부부의 사진을 가져다 주지만 과거의 모습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어서 결국 새로운 얼굴이 만들어진다.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유대인 친구 레네는 넬리에게 그녀의 모든 친척이 살해당해서 많은 유산을 받을 거라고 하며, 그 돈은 희생자들의 돈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위해 써야 하니 회복하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자고 권유한다. 레네는 기관에서 죽은 유대인의 통계를 담당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그곳에서 넬리의 남편이었던 조니가 자기 자신의 색인카드를 훔치려고 하다가 쫒겨나는 장면을 목격한다. 카드를 확인해보니 그와 넬리는 이혼한 상태였다.
그러나 참담한 수용소 생활을 남편 조니를 다시 만날 생각 하나로 버틴 넬리는 친구의 말을 듣지않고 조니를 찾아나선다. 그들 부부가 살던 집은 폭격으로 폐허가 되어 있었고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하니, 승전국인 미국 사람들이 모이는 클럽인 ‘피닉스’에 가보라고 한다. 그곳에서 피아노 연주자가 아닌 웨이터 일을 하는 조니와 재회하지만 그는 얼굴이 완전히 바뀐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는 무언가 전처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낯선 여인에게 아내의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죽은 아내는 가난했었는데 부자 친척들이 다 죽는 바람에, 그녀가 살아있다면 많은 유산을 받게 되므로 그녀인 척해서 유산을 받은 뒤 자신과 나누자는 제의였다.
그를 아직도 사랑하는 넬리는 그 제의를 받아들이고, 그가 시키는대로 예전 머리색으로 염색도 하고 본인의 사인 필체를 연습하기도 한다. 넬리가 과거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행동을 해도 그는 그녀가 아내의 사진을 보고 흉내 낸다고 생각하고 화를 낸다.
조니는 그들의 보금자리가 폭격을 맞고 폐허가 되었지만 유일하게 남은 빨간 드레스와 파리에서 산 구두가 남았다며 넬리에게 주고 그것을 입고, 신고 돌아와서 친구들과 재회하라고 말한다. 그녀가 수용소에서 이런 복장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지만, 그는 누구도 다치고 초라한 옛친구를 보고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고집을 부린다.
그녀를 지인들이 알아보는지 시험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체포된 호숫가 친구집으로 찾아 갔을 때 친구는 놀라면서 자리를 피하고, 그의 부인은 울면서 미안하다며 어쩔 수 없었다고 사과하면서 그녀가 체포된 직후 남편인 조니도 바로 왔었다고 말한다.
친구 레네는 권총을 두 개 사서 한 개는 자신이, 다른 하나는 넬리를 주었는데 넬리가 조니를 죽여서 복수하기는커녕 그에게 집착하는 것을 보며 절망한다. 레네는 자신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미래로 나아갈 수도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권총으로 자살한다. 그러면서 기관에 있던 조니의 이혼 허가서를 같이 남긴다. 거기에는 넬리가 잡힌 날짜 1944년 10월 4일과 동일한 날에 이혼을 허가한 서류가 있었다. 넬리는 이틀 뒤 체포되었고 조니는 같은 날 석방 되었다. 이혼했으니 법적으로는 아내가 아닌 남을 밀고한 셈이 된다.
넬리가 기차를 타고 와 역에서 내려서 조니와 함께 기다리던 친구들과 재회하고 그들은 함께 식당에서 축배를 드는데, 넬리가 조니의 피아노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한다.
노래가 진행되며 조니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지고 빨간 드레스의 소매자락이 움직이며 팔에 새긴 넬리의 수용자 번호가 드러나자 그가 결국 피아노 연주를 멈춘다. 반주 없이 노래를 끝낸 넬리는 친구들을 바라보다가 등을 돌려 조용히 그곳을 떠난다.
영화에서 조니가 직접 인정하지는 않지만 정황으로 볼 때 그는 나치에게 끌려가서 위협을 받자 넬리와 이혼하고 그녀가 숨은 장소를 알려주어 체포되고 수용소로 끌려가게 만들었다는것을 알수있다.
물론 예전에 둘은 사랑했으며 함께 피아노와 노래를 하는 예술가였고 조니는 초기에 유대인이 핍박 받을 때 이웃의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그녀를 보호하고 피신시키는 온갖 노력을 하였다. 나중에는 넬리를방공호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이웃들 때문에 조니는 친구집 근처 호수에 있는 배로 아내를 숨긴다.
그러나 체포되어 자신의 안위와 그녀의 생명을 놓고 선택해야 했을 때 그는 그녀를 버렸다.
넬리가 체포된 직후에 조니가 호수가로 왔던 것으로 볼 때 그가 경찰에게 숨은 장소를 먼저 알려주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전부였다면 누구라도 "나라면 고문받아 죽더라도 아내의 은신처를 밝히지 않았을 거다"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상대를 사랑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용서받을 수 없는 건 그 뒤의 행적이다. 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반성과 속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스스로를 용서하고 아내의 희생을 댓가로 새출발하려고 한다.
그 당시는 유대인이 나치에게 잡혀가면 죽는게 확실한 시대이니 그는 아내가 죽었다고 확신한다. 친구들은 그녀의 얼굴이 달라졌어도 넬리라고 생각하는데 조니는 목소리며 글씨체까지 똑같은데도 그녀는 비슷할 뿐 절대 아내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아내가 진짜 살아남았다면 자신의 배신행위와 아내가 수용소에서 겪은 그 고통과 상처를 사는 내내 대면해야 해서 너무도 괴로울테니 차라리 아내는 죽었다고 믿어야만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넬리는 남편이 초기에 자신을 위해서 하던 노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남편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마도 남편은 잡혀가서 고문 받았지만자백하지않다가 결국 석방되었는데 그가 자기를 찾아올 때 나치가 몰래 미행해서 그녀를 찾아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자신을 연기하며 다시 조니와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친구 레네가 자살하며 남긴 유서와 서류는 그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는 결정적으로 대답을 회피할 뿐만 아니라 끌려간 유대인들이 얼마나 공포속에서 참담한 생활을 했는지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평생 독일의 일원이었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져본 적도 없다. 어쩌다 일어난 비극이 끝났으니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베를린에서 남편과 옛친구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했다. 그의 사랑은 끝났고 그녀의 얼굴까지도 변했다. 결코 과거로 똑같이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의 소원처럼 조니는 피아노를 치고 넬리는 노래를 부른다. 친구 레네가 좋아했던 ‘Speak Low’라는 미국의 재즈곡이다.
“우리 여름날은 너무 빨리 시들어
내일은 늘 너무 빨리 와 있어
시간은 이렇게 긴데, 사랑은 이렇게 짧아
사랑은 순수한 금, 시간은 도둑
내사랑, 이미 늦었어. 이미 늦었어
커튼이 드리워지고 모든게 끝나, 너무나 빨리”
조니의 얼굴은 창백해지며 더 이상 연주를 이어가지 못하고, 넬리는 그를 떠난다.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어려운 시절의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하는 로맨스 영화일 수도 있겠지만, 큰 의미로 보자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사건이 벌어지고 전쟁이 끝난후 그들의 삶의 터전과, 살아남은 유대인 희생자와, 어쩔 수 없었다며 동조한 독일인들의 망가진 인간성이 복원되거나 재건되는 과정에 대한 우화라고 볼 수 있다.
적극적으로 악마적인 행위를 한 사람들 이외의 나치에 수동적인 동조만 한사람들은 미안한 감정 정도만 가질뿐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레네의 말처럼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서둘러 가해자들을 용서하고, 가해자들은 희생자들의 상처나 고통은 보고싶어 하지도 않는다. 서둘러 봉합하고 과거로 돌아가서 옛날처럼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그러나 넬리의 얼굴이 옛날 얼굴로 복원될수없는것처럼, 넬리가 조니와 다시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지금 아무 일도 없었던 과거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이제야등떠밀려 반성한다면 너무 늦은 것이다.
넬리가 조니를용서하지 않고, 새로운 얼굴로그와 작별하고 미래로 나가는것 처럼, 살아남은 피해자들도 반성하지 않는자들이 한일을 잊지 않은채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를 맞이해야 한다.
영화 제목인 '피닉스'는 조니가 일하는 클럽의이름이기도 하지만, 죽이려고 해도 불사조처럼 일어나서 살아가는 넬리나, 아무리 학살해도 사라지지않는 희생자들의영혼을 의미한다고 볼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