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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May 09. 2022

영화 <조조 래빗>-토끼와 히틀러

소년은 그렇게 성장한다


때는 나치 치하 독일이다.

티비와 라디오에서는 쉬지 않고 히틀러의 연설이 흘러나오고 거리에는 징병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다. 젊은 여성들은 그의 연설에 열광하고 그의 손을 잡아보려 팔을 뻗으며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눈물까지 흘린다. 오늘날의 록스타 공연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살 소년 요하네스 베츨러는 아버지가 2차 대전 참전으로 이탈리아로 가고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누나 잉거는 어떤 이유에선지 사망해서 영화에서는 사진으로만 존재한다.

소년은 열렬한 히틀러 지지자여서 심지어는 마음속 친구도 히틀러로 상상된다. 그러던 그가 히틀러 청소년단이라는 어린이 군사 훈련 캠프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교관이 작은 토끼를 잡고서 목을 비틀어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수행하지 못하자 모두 그를 조조 래빗(겁쟁이 조조)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모욕감을 느끼고 있던 그를 상상 속 히틀러가 부추겨서 훈련 중 충동적으로 수류탄을 던졌는데 그것이 거꾸로 굴러와 터지는 바람에 그는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게 되고 소년단에 더 이상 참가할 수 없게 된다. 할 수 없이 대안으로, 실명한 상이군인으로 퇴역한 대위 클렌젠도프가 운영하는 기관에서 전단 붙이는 작업을 하게 된다.


다정한 엄마는 그와 자전거도 함께 타고 춤도 추며 아들이 자라면 사랑도 하게 될 것이라 이야기해준다. 둘이 같이 걷던 길에서 나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목매달아 놓은 것도 보게 된다.

어느 날 그의 집 2층에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본 조조는 다락에서 엄마가 숨겨준 유대인 소녀 엘사를 발견한다. 그가 알고 있던 유대인에 관한 지식과는 전혀 다른 그녀를 보며 점차 자신이 알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다. 벽을 사이에 두고 그녀와 대화를 하고 그녀의 남자 친구인 척하고 편지를 써서 읽어주면서 그녀에 대해 사랑을 느끼고 엄마가 말했던 사랑할 때의 상태인 '뱃속이 거북하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자유 독일 쪽지를 돌리며 바쁘게 살던 엄마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 날 조조가 거리에서 나비를 좇다가 머리를 들었을 때 엄마의 춤추던, 늘 신던 구두를 신은 발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엄마 발을 끌어안고 오열한다. 집에 돌아와 그는 드디어 머릿속 히틀러를 끄집어내어 내팽개친다.


오래지 않아 전쟁이 끝나고 나치 복장을 한 조조를 연합군이 끌고 갔을 때 마침 그곳에 있던 대위는 엄마를 잃은 조조를 위로하며 그의 군복을 벗기고 일부러 유대인 소년이라고 욕을 하며 내쫓아 안전한 곳으로 보내고 대신 자신은 죽음을 맞이한다. 집으로 돌아온 조조는 엘사를 잃을까 두려워 한참을 망설이다가 전쟁이 끝난 것을 그녀에게 알리고 밖으로 나와 함께 춤을 춘다.

          



어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미 나치 치하였다면 그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그것이 당연한 환경이고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히틀러를 광신하고 있다면? 소년은 다른 환경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으므로 주변 어른들을 모방할 것이다. 아버지마저 부재한 경우이니 그는 히틀러를 숭배하고 초자아로 삼게 된다. 그는 애국심에 불타서 소년단에 입단해서 군사 훈련까지 받는다.

그러나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는 그곳에서 유대인을 상징하는 토끼를 죽이라는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다. 소년이 들은 정보로는 유대인은 뿔이 달리고 꼬리도 있으며 뱀의 혀를 가지고 있고 비늘이 있는 피부에 박쥐 날개를 가지며 고약한 꼬마 양배추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렇게 사회가 인간을 사물화, 괴물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본능적으로 토끼를 죽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조조의 엄마는 나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로 나오는데(사실은 아빠도 멀리서 그 활동을 돕고 있었다고 보인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어린 조조에게 절대 주입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위험한 시대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려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고, 또는 아직은 이념을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안 됐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의 엄마는 억지로 아들을 성장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기다려준다. 그가 잘 자라서 올바른 생각을 갖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다려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들이 자라서 남성으로서 다른 여성을 사랑할 것이라는 믿음도 보여준다.

주입하는 대신 그녀의 인생으로 보여준다. 아마도 반체제 운동을 같이 하는듯한 아빠와의 사랑도 이야기해주고, 죽음을 각오하고 유대인 소녀를 숨겨주고, 자유 전단지를 돌리다가 실제로 죽는다. 자신은 속물로 나태하게 살면서 자식에게 진로도 정해주고 연애도 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는 엄마들과는 다르다.

    

벽장 속에 숨은 유대인 소녀 엘사는 여러모로 안네를 연상시킨다. 그녀는 그 시절 박해받고 학살당하던 모든 유대인의 상징이다. 그 시절 꿈 많고 가능성도 많은 인간들이 정신병자의 망상 때문에 스러져갔다. 조조는 실제 유대인을 보고 자신이 들어왔던 것들이 거짓임을 깨닫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엘사는 안네의 소망처럼 휘파람을 불고 춤을 춘다.(감독은 끝내 이루지 못했던 안네의 꿈을 영화를 통해 실현해 준다.)

    

그 시대는 눈이 먼 시대였지만 그렇지 않은 어른들도 있었다. 그 첫째가 조조의 엄마였고, 다음으로 전쟁 중에 실명하고 전쟁의 무의미함을 이미 깨달은 대위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엄마의 정체가 발각되어 끌려가서 죽고 경찰이 조조의 집을 수색할 때 옆에서 유대인 엘사의 신분을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고, 마지막에 전쟁이 끝나고 조조가 끌려가서 총살될 수도 있었던 순간에 조조를 보호하며 살려준 인물이다. 눈먼 어른들 때문에 세상이 엉망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 이런 어른들 덕분에 다음 세대는 제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조조의 마음과 집을 채우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사라졌다. 아빠, 사랑하는 엄마, 누나, 심지어 상상 속 히틀러까지. 소년의 페르소나이자 초자아였던 히틀러를 내쫓고 성장한 청년은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고, 아니마였던 엄마가 죽고 유태인 소녀 엘사가 새로운 아니마로 마음에 들어왔다. 조조는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해서 자신이 제대로 선택한 가치관을 가질 것이며 운명의 여성을 자유롭게 만나 사랑도 할 것이다.

앞으로도 어떤 역경이 닥칠지는 모르지만 릴케의 시처럼 "아름다움도 두려움도 모두 경험하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조조가 만든 유대인에 관한 책 <유후 유대인>의 끝에 엘사는 조조가 준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 넣었다.

‘철장 안에 갇힌 토끼를 한 소년이 열쇠를 쥐고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다.

철장은 소년의 머리이자 마음이고 그 자물쇠를 풀지 말지는 소년의 의지에 달려있다.

토끼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그가 더 이상 자신의 머릿속에 주입된 편견에 구속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조조는 기꺼이 열쇠로 철장을 열고 토끼를 풀어준다. 그리고 토끼와 함께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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