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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Aug 21. 2022

영화<킬링 디어>-죄책감이 불러온 파국

신성한 사슴 죽이기

         

이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은 비극 이피게네이아 신화이다.

트로이 원정을 떠난 아가멤논이 실수로 아르테미스 여신이 아끼는 신성한 사슴을 죽였다. 신은 대로하여 저주로 2년간 바람이 불지 않게 하여 배(그 당시는 모두 범선)가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용서를 빌고 신탁을 받았는데 신은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라 하였다. 고심 끝에 아킬레우스와 결혼시킨다는 거짓말로 딸을 부른다. 딸은 처음에는 자신이 제물로 정해진 것을 알고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어린 시절 추억을 생각해달라고 애원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조국을 위해 죽을 운명을 받아들인다. 아버지가 제물인 그녀를 찌르기 직전, 신이 그녀를 암사슴으로 바꿔치기하여 대신 제물로 바치고 그녀를 살려주었다. 그러나 딸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엄마이자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나중에 남편을 죽이고, 아들은 아버지를 죽인 엄마를 죽인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심장외과 의사 스티븐은 생명의 중심인 심장을 다루고 자신이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과 우월감을 가지고 살고 있다. 같은 의사여도 아내의 진료과목인 안과나 동료의 마취과는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의 가정도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는 남편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자신의 기준만 강요하는 수직적인 일방 소통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수술하다가 사망한 환자의 아들 마틴과 지속적으로 만나며 식사도 하고 명품시계 같은 비싼 선물도 하고 집으로 초대도 하여 가족과 어울리게 한다. 그런데 점점 마틴은 스티븐이 그에게 해준 것과 비슷한 수준의 선물과 일을 그에게도 반드시 되갚으면서 그의 일상에 자주 침입하며 스티븐을 거북하게 한다.     

어느 날 마틴은 병원으로 찾아와 스티븐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으니 그도 그의 가족 중 한 명을 골라 죽여야 한다는 요구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를 제외한 가족들이 하나씩 처음에는 다리가 마비되고, 다음에는 식사를 거부하고, 눈에서 피를 흘리다가 결국 죽게 된다는 저주를 한다.

그를 내쫓았지만 그가 말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기 시작해서 어린 아들 밥과 딸 킴이 이유도 없이 다리도 못쓰고 식사도 못하며 침대에 눕게 된다.

 

아내 아나가 남편이 한 일을 추적해보니 스티븐이 마틴의 아버지를 수술하기 전 술을 마신 것이 밝혀진다. 아내는 그 때문에 자신의 아이들이 죽게 되었다며 남편을 비난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가족 모두가, 그들 중 하나가 희생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스티븐에게 자신을 살려달라고 매달린다. 아내는 새로 자식을 하나 더 낳으면 된다며 남매 중 하나를 죽이라고 하고, 큰딸은 신화 속 이피게네이아의 대사처럼 아버지가 생명을 주셨으니 아버지 마음대로 거두라는 연극 대사를 읊으며 아버지에게 아부하고, 아들은 자신도 아버지처럼 심장외과 의사가 되겠다며 아버지의 환심을 사려한다. 상태가 악화되자 결국 스티븐은 자신이 희생자를 고르는 고통을 피하려 러시안룰렛처럼 우연에 의해 총을 맞는 방식으로 아들 밥을 희생시킨다.

얼마 후 살아남은 스티븐 가족 세 명이 식당에서 마틴과 마주치며 영화는 끝난다.

      



신화에서 영웅은 항상 자신의 오만(hubris)으로 몰락한다.

심장외과 전문의 스티븐은 자신이 환자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는 핵심 능력을 가진 의사로, 자신의 권한을 확대해서 생각하는 오만한 인간이다. 일상에서도 시계줄의 소재, 생선의 굽는 정도, 아내의 옷 색깔, 아들의 머리 길이 등에 대한 자신의 기호나 개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며 자신만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술을 마시고 수술을 하다가 환자를 살리지 못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고 수술을 했어도 환자가 죽을 수는 있었겠지만, 수술 전에 술을 마셨다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이다. 다른 사람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비난하지 않더라도, 자신은 그 실수를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다. 그것이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면 환자의 아들인 마틴에게 잘해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오만할 정도로 똑똑한 그는 자신이 한 일을 알고 있다. 어떻게든 죄책감을 덜어보려고 환자의 아들에게 잘해주지만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가 작은 호의로 없어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동안 강하게 억압해온 마음속의 순수한 부분의 상징인 가족들이 병들기 시작한다. 그의 오만의 대가는 가장 어리고 순수한 부분인 아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그 후에도 그는 여전히 마틴과 마주칠 것이며 아들 없는 피폐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영웅의 몰락이다.


영화에서 마틴은 초능력을 가진 존재로 보인다. 신이 마틴의 입을 통해 섭리를 전달하는 것 같다. 마틴의 논리는 ‘모든 일은 평형이 되어야 정의롭다’는 것이다. 선물을 받았으면 그에 상당한 선물을 해야 하고 상대방의 초대를 받았으면 자기도 그를 초대를 해야 하고 제의를 거절당했으면 나도 상대방의 제의를 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겨드랑이 털을 보여주었으면 상대방도 겨드랑이 털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하실로 끌려간 마틴은 스티븐이 자신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못하자, 스티븐의 팔을 물어뜯어 심한 상처를 낸 다음 상대방에 입힌 상해에 대해 말로 미안하다며 쓰다듬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며 자신의 팔을 똑같이 물어뜯는다. 상대방에 상처를 냈으면 나도 상처를 입어야 공평의 정의에 맞는 진정한 사과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하물며 사람의 목숨을 잃게 했으니 그것을 명품시계 따위로 갚을 생각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티븐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그를 괴롭힌다.

아내인 아나는 마틴에게 질문한다. 스티븐의 죄를 왜 나머지 가족이 갚아야 하느냐고. 마틴은 선문답처럼, 자신이 아빠와 똑같은 방법으로 스파게티를 먹는 것이 특별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똑같은 방법으로 먹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대답한다. 즉, 사람들은 세상에서 각자가 특별한 존재인 줄 알지만 인간은 다 비슷해서 대단한 인물은 없고 누구나 무작위로 실수를 했을 때 신 아래 인간들은 신의 섭리(공평의 정의)의 적용을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필이면 마틴의 아버지가 죽어서 마틴의 가족들이 고통을 받는 것처럼, 하필이면 실수한 사람이 스티븐이기 때문에 스티븐 가족들도 고통을 받는다. 스티븐의 가족이라고 특별할 것은 없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마틴은 현실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스티븐 마음속의 ‘초자아’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스티븐이 마틴을 볼 때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자신의 실책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죄책감이 작동한다. 따라서 마틴의 혹독한 요구는 사실 스티븐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소리이다. 현실에서는 그저 마틴이 불행한 모습을 보였을 뿐이었겠지만 그것을 보는 스티븐은 스스로 한 실수 때문에 자신의 콤플렉스가 작동한다. 또한 다른 가정의 남편을 잃게 했다는 자책감은 마틴의 엄마가 외로울 것이라고 해석하게 되고 그녀의 유혹을 상상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죄책감 때문에 앞으로 스티븐은 자신의 아내에게 정상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도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는 점점 피폐해지고 그가 가진 가장 여리고 순수한, 사랑하는 아들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평형의 원리상 가족 구성원 중 마틴과 같은 성별의 남자아이가 선택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어린 아들의 아빠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은 아들을 심리적으로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틴이 아빠의 부재로 불행한 만큼 자신의 아들도 아빠 없는 불행한 삶을 살 것이라는 의미이고 그것이 마틴, 사실은 스티븐 자신이 생각하는 균형의 정의이다. 스티븐은 가정의 가장이므로 그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면 그의 가족들도 행복할 가능성은 없다.

또한 아나의 질문이자 신화의 질문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속죄할 수 있는가’하는 것인데  신화에서는 그것에 대한 대답으로 부정적 결말을 보여주었다. 이것을 영화에 빗대어보면 아들을 잃은 그의 아내나, 동생을 잃은 그의 딸이 미래에 스티븐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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