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은 많지만 사회적 지위는 높지 않았던 덴마크 여성 카렌은 실연 후 충동적으로 사회적 지위만을 보고 브릭센 남작과 결혼하여 함께 아프리카로 온다. 브릭센 역시 그녀를 여성으로 사랑하지는 않지만, 친구로서 좋아하고 부자인 그녀의 돈도 필요해서 그녀와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 직후부터 그는 가정과 일에는 관심이 없고 밖으로만 나돌며 즐거움을 추구하느라 그녀에게 커피농장을 맡긴 채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고, 카렌은 생각 없이 한 결혼에서 환멸을 맛본다.
카렌은 어려운 시기에 만난 남성 데니스와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소유에 집착하여 데니스를 묶어두려고 하는 반면, 데니스는 현재에 충실할 뿐 모든 만남이 그 순간 스쳐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고 누구도 자신의 자유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삶과 사랑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둘은 갈등하여 헤어지게 된다.
자신이 공을 들여 경작하던 커피농장까지 화재로 타버리자 그녀는 아프리카를 떠날 마음을 먹는다. 그녀를 공항에 데려다주기로 했던 데니스가 비행기 사고로 죽게 되고, 그녀는 그를 아프리카 땅에 묻는다. 그리고 카렌은 혼자 쓸쓸히 아프리카에서 나온다. 결국 아프리카 땅도 데니스도 결코 소유할 수 없는 대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카렌과 데니스라는 특정 인물의 서사와 아프리카라는 환경이 이작품을 특별하고 아름답게 만들지만 무엇보다 둘이 사랑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이 차이는 여성과 남성의 시각차라고 일반화 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카렌의 사랑-
사랑한다면 손 닿는 곳에 머물면서 공동의 목적에 같이 시간을 들여 헌신하고 그것이 발전하고 커가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일반적으로 여성이 가지고 있는 생각인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자식이 가장 큰 공동의 목적이고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이 이러한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카렌은 아이를 원하지만 남편이 옮긴 매독 때문에 독한 치료를 받는 바람에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되어서 아프리카에서 가꾼 커피 열매나 원주민 일꾼들의 자녀에 애정과 노력을 기울인다. 결혼 전에는 그 대상이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가져온 고급 도자기같은 비싼 예술품이었다.
고급의 취향을 가지고 있고 재산도 많으니 좋은 물건들을 사서 소유하고 그것들을 안목있게 배치하고 둘러싸여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결혼해서 그 사람을 늘 옆에 두고 자기의 것으로 소유해야 하는데 그것이 좌절되자 실망한다.
좋은 사람도 내 옆에 있는 나의 사람이 아니면 사랑이 아닌 것이다.
-데니스의 사랑-
사랑이란 상대방과 좋은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고, 그녀가 잘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멋진 풍경을 함께 보는 것이다. 그녀의 머리를 감겨주고, 밀림에서 모차르트를 함께 들으며 춤추고, 그리워하다가 만나 포옹하는 것이다.
데니스는 외롭고 혼자 죽는 두려움을 감수하더라도 개인이 자유로워야 현재를 살 수 있으며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상대방을 사랑해도 그 사람을 따라 죽을 수는 없으니 결혼 같은 서로를 속박하는 제도로 인간을 묶어둘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도 사랑도 스쳐 지나갈 뿐이다.
부자나라에서 교육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아프리카 원주민보다 우월하지 않다. 그들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된다. 자연과 사람을 소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둘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그들의 생각도 변화한다.
카렌은 좋아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닫는다. 사람도 커피농장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데니스도, 원주민도, 아프리카의 자연도 나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유를 갈구하던 데니스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자 이제는 혼자 있는 것이 힘들어지는 것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만이 전부가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지금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데니스가 죽지 않았다면 둘은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 카렌은 좋은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끼는 것이라는 걸 알고, 데니스도 계속 함께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아니면 데니스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외롭게 혼자 죽었을까?
데니스가 얼마나 멋있는 남성인지를 보여주는 몇 개의 영화 속 에피소드가 있다.
데니스는 다른 남성들처럼 카렌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 자체를 좋아한다. 그는 그녀의 조건이나 외모만을 보는 남자들과는 달리 그녀의 작품 활동을 격려하고 그 결과물을 좋아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만년필을 선물하면서 글을 쓰는 삶을 살라고 격려한다.
데니스가 여행 중 먼지로 헝클어진 카렌의 머리를 감겨주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너무나 아름답고 에로틱했다.
아름다운 아프리카 대륙을 카렌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경비행기 조종을 배워서 그녀를 비행기에 태우고 하늘에서 아프리카의 땅과 해안과 홍학떼의 이동을 같이 내려다 보며 둘이 손을 잡는 순간은 남자가 연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하늘을 날며 대륙을 보여준다는 것은 수캐럿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지이다.
데니스가 밀림속까지 축음기를 가져와서 밤에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을 틀어놓고 둘이 춤을 추는 장면도 너무나 로맨틱했다. 그가 아니라면 누가 아프리카 밀림에서 모차르트를 듣겠는가.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최고의 경험과 최근의 경험을 기억하며 산다고 한다. 여성으로서 인생에서 이러한 경험들중 하나만 가져도 평생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비루함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정도로 멋진 에피소드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