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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Sep 05. 2022

영화<우리 선희>-세월을 초월하는 '선희'

홍상수 자신의 이야기

    

영화를 전공하는 대학원생 문수는 선희를 사랑한다.

그의 대학 선배 재학도 선희가 좋다.

그 학교 교수인 최동현 선생도 선희를 아낀다.

셋이 창경궁 연못가에 모여 선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이 각각 이야기하는 선희는 다른 듯 같기도 하다. 그들은 누구이고 선희는 누구인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희는 영화 학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가려한다. 추천서를 받기위해, 다니던 대학에 와서 최동현 교수를 찾아간다. 동현은 선희에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라며 아는 만큼 솔직히 써주겠다고, 다음날 받으러 오라고 한다.

학교 앞 치킨집에 앉아 있을 때 우연히 옛 남자 친구인 문수가 지나가고 그녀는 그를 부른다. 그는 자신의 영화는 모두 선희에 관한 것이라며 그녀가 자기 인생의 화두라고 말한다. 그는 선희에게 끝까지 한 우물을 파고 한계에 부딪쳐 보라고 한 뒤, 보고 싶었다며 왜 헤어졌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녀는 어이없어하며 가버린다.

황당해하던 문수가 선배인 재학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하고 재학은 언짢아하면서 하던 일 끝내고 가겠다고 말하고 그를 몇 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뒤 나온다. 문수가 선희가 예전처럼 예쁘다며 괴로워하자 재학은 여자는 잡는 게 아니라며 보내주라고 한다. 그러면서 끝까지 파봐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음날 학교에 와서 추천서를 받은 선희가 벤치에 앉아 그것을 읽어보니 “그녀는 거짓이 없고 순수하지만 내성적이어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야망에 비해 실천의지가 부족하다.”는 혹평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최교수에게 전화해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한다. 한식집에서 만난 최교수는 선희를 예뻐했는데 자신을 쌀쌀맞게 대하고 연락도 하지 않아서 섭섭했다며, 그녀가 예뻐서 평생 옆에서 그녀 편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하며 식사가 끝난 후 손잡고 어디론가 같이 간다.

재학의 하숙집으로 찾아가서 그를 불러낸 동현은 자신이 과거에 살았던 옛 하숙집에서 가족들과 별거하며 살고 있는 자유로운 재학이 부럽다고 하며 요즘 재회한 어떤 여자에게 마음이 쓰이고 설렌다고 고백한다.

다음날 우연히 야외 카페에 앉아 있던 선희는 지나가던 재학을 만나서 술집으로 같이 간다.

그는 선희에게 유학 같은 것은 다 핑계일 뿐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계속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이 자격은 없지만 선희가 늘 예쁘고 그녀가 문수 만나는 게 신경 쓰인다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감싼다. 둘은 취해서 함께 걸어가다가 키스한다.


창경궁 홍화문 앞 벤치에서 선희는 동현을 만나고 그가 다시 쓴 추천서를 읽는다. “그녀는 실험성이 강하고 개연성이 있으면서도 시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뜻을 타인과 공유하고, 순수하면서도 치밀하고 집요하게 목적을 성취해왔다.”는 최상의 평가이다. 선희가 어느 추천서가 자신과 비슷하냐고 묻자 동현은 깊이 파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될 거라고 답한다.

이때 문수가 선희에게, 재학이 동현에게 동시에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한다. 둘 다 거절하지만 결국 모두 창경궁으로 온다. 선희가 화장실에 간 동안 세 명의 남자가 연못가에 모이고 동현은 선희에게 그들이 왔다는 문자를 보내고 선희는 그들을 피해 가버린다.

 

세 남자는 함께 명정전을 구경하며 선희에 대해 이야기 한다. 셋 다  ‘그녀는 솔직하고 아름답고 똑똑하며 내성적이지만 용감한 여성이다.’라고 말한다.

     



이 영화의 겉 이야기는 한 대학의 영화과에 다니는 아름다운 여학생 선희를 여러 남성이 동시에 사랑하는 스토리이다. 주인공 세 남자 이외에도 우연히 지나가던 남자 선배도 선희에게 접근할 정도로 선희는 모든 남성의 로망이다. 그러나 어떻게 한 여자가 동시에 세 명을 좋아할 수가 있느냐, 또는 문수는 제외하고라도 결혼한 선배 재학과 교수인 동현이 어떻게 젊은 여학생과 사귈 수가 있느냐라고 도덕적으로 접근한다면 그것은 넌센스이다.


선희는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일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한 인물로 촉발된, 심리적으로 표현하자면 남성의 마음 안의 여성성인 ‘아니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세 남성은 같은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한 선후배로 표현되지만 실은 한 남성이 나이를 먹으면서 보이는 모습을 상징한다. 대학원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관심을 받은 문수가 세월이 지나 세속에 찌들고 가정을 가지면서 좌절하고 고민하는 재학이 되고, 그래도 계속 그 세계에서 노력해서 대학교에서 교수가 된 모습이 동현이다.

문수의 인생의 화두는 선희여서 그녀에 대한 영화를 열심히 만들어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재학은 과거의 자신인 문수를 보면서 자신은 현실에 찌들어서 젊은 날의 순수함을 잃었다는 생각에 질투심을 느낀다. 동현은 자신이 살던 자취방에 사는 과거의 자신인 재학을 보며 용감하게 가족으로부터 나와서 무언가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재학이 부럽다. 자신은 이제 편안한 현실과 가정에 적응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선희를 보면 다시 설레고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모두 과거의 자신을 부러워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것은 모두 아직도 선희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 사람이 선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거의 비슷하다. 즉, 나이가 들어도 마음속 아니마 이미지는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녀는 아름답고 똑똑하고 내성적이지만 솔직하고 용감하다.

또 한 가지 세 사람의 공통점은 선희에게 하는 충고로 위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하는 다짐과도 같은 메시지로, ‘같은 길을 계속 걸으라’는 것이다. ‘한 우물을 끝까지 깊이 파라’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해야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한계는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인데, 문수의 미래가 재학과 동현, 나아가서 이 영화를 만든 홍상수 감독이라고 본다면 그는 평생 그가 말한대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창경궁 연못가에서 세 남자가 모인 장면은 다른 시간대에서 온 세명의 자기 자신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멋진 장면이었다.

선희가 한 번도 동시에 두 명 이상의 남자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녀가 현실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들이 자신의 일을 끝까지 하게 하는  화두이자 초심이자 열정이자 뚝심의 상징이다.

나이가 들어도 그녀를 생각하면 세속적으로 적응하여 덤덤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는 자기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녀를 그의 편으로 만들어 함께 평생  길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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