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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Feb 26. 2022

영화<베스트 오퍼>-그녀에게 모든것을 건 남자

다 걸어야 얻을 수 있다


경매에서 어떤 작품에 제시하는 가장 높은 가격을 ‘베스트 오퍼’라고 한다. 

베스트 오퍼를 하는 사람만이 그 작품을 얻을 수 있다. 

정말로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 수 있을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질 올드만은 최고의 예술품 감정사이자 잘나가는 경매사이다. 누구와의 접촉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늘 장갑을 끼고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밤에는 가정부마저 퇴근시키고 혼자 지낸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아름다운 여성의 초상화를 모으는 것인데 수십 년간 화가 친구인 빌리와 짜고 진품을 위작으로 속여서 낮은 가격으로 낙찰 받은 후 집에 소장해왔다. 그가 소장한 수백점의 그림은 비밀의 방에 걸려있는데 모두 빌리와 공모해서 얻은 작품들이다. 

버질은 빌리에게 공모의 댓가로 적은 돈을 지불하지만, 빌리는 돈보다도 심미안을 가진 버질이 자신의 작품에 좋은 평가를 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화가 빌리에게 버질은, 그의 그림에는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혹평을 한다. 

예술가적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받은 빌리는 버질을 파멸시킬 작전을 짠다. 골동품이 많은 대저택을 빌리고, 버질의 예술적 취향을 고려해서 선택한 아름다운 여인 클레어를 고용하여 많은 유산을 받은 집주인으로 설정하고, 창고의 유산들을 처분하려고 하니 감정을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집사와 엔지니어도 고용해서 연기를 하게 하고, 버질의 대학시절 전공인 ‘보캉송의 로봇’ 부품을 창고에 흘려 흥미를 유발한다. 그것도 모르고 버질은 이웃에 있는 엔지니어에게 창고에서 찾아낸 부품을 가져다주고 조립하게 하여 로봇은 조금씩 제모양을 찾아간다. 

버질은 광장 공포증인 척하고 집안에만 있는 집주인 클레어에게 끌리어 그녀를 몰래 훔쳐보고, 벽을 사이에 두고 그녀와의 대화를 이어가다가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의 과거 스토리와 상처를 위로하며 점차 그녀와 가까워진다. 어느 비오는 날 빌리의 각본대로 그녀의 집 앞에서 폭행을 당한 그가 길에 쓰러졌을 때, 그녀는 밖으로 뛰어 나와 그를 간호하고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광장 공포증에도 불구하고 클레어가 그를 위해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감동한 그는 그녀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오고 그녀를 자신의 집에 데려와 같이 살기로 하고 서로 사랑하며 행복해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림이 걸려있는 비밀의 방까지 공개한다. 클레어는 감동하여 버질을 포옹하며 무슨일이 생기더라도 그를 사랑한 것은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버질이 마지막 경매를 마치고 은퇴하여 돌아올 때 빌리는 작별 인사를 하며 포장한 자신의 그림을 선물하고 꼭 간직해 달라고 한다. 그 그림을 벽에 걸기 위해 비밀의 방에 들어온 버질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벽을 보고 경악한다. 벽에 걸렸던 모든 그림이 사라졌던 것이다. 남은 것은 빌리가 마지막에 선물한 그림인 클레어의 초상화와, 엔지니어가 조립을 마친 보캉송의 로봇뿐. 

오랫동안 거의 폐인의 생활을 하다가 깊은 절망 끝에 일어선 버질은 “모든 위작에는 진지한 면이 반드시 있다”는 자신의 지론에 따라 클레어의 모든 거짓말 뒤에 있는 일말의 진심을 따라 그녀가 유일하게 행복했다고 이야기하던 프라하의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예술적 가치를 지닌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가 가득 걸려있는 방만 보아도 영화의 본전은 다 뽑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비밀의 방 장면은 압도적이다. 버질은 매일 이 그림들 앞에 앉아서 넋을 잃고 그림들을 바라본다. 

빌리는 버질이 좋아하는 모든 그림의 이미지를 통합하여 그가 좋아하는 유형의 여인을 골라 복수극을 꾸민다. 예술에도 위작이 있듯이 사랑이나 감정도 위조할 수 있다고 비웃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버질과 클레어와의 관계에는 거짓만 있지는 않았다. 클레어는 처음에는 돈 때문에 시작한 연극이었지만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을 사랑하는 버질을 보고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된다. 

또한 말이 복수지 방에 갇혀 그림이나 바라보는 불행한 버질에게 아니마 자체가 구현된 현실의 여성을 찾아준 빌리는 버질의 은인이나 다름없다. 

버질이 아무리 예술품을 사랑한다 해도 실제로 존재하는 클레어와의 사랑과는 비교가 안되기 때문이다. 

버질의 클레어에 대한 베스트 오퍼는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예술품 콜렉션 전체이다. 그가 그녀에게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비밀의 방을 보여주었을 때 버질은 클레어에게 그의 전체를 걸고 베스트 오퍼를 한 것이다. 그녀는 그의 일생에서 자신의 모든 콜렉션과 바꿀수 있는 단하나의 존재였던 것이다. 

    

심리학적인 해석이 남아있다. 

고아였던 버질 올드만은 모성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해서 마음에 올바른 여성성을 키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여성성인 아니마에 근접하는 여성의 초상화를 끊임없이 모은 것도 다 그 결핍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버질의 취향을 가장 잘 아는 친구 빌리만이 그의 아니마에 부합하는 실제 여성 클레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둘이 함께 오랫동안 경매에서 그림을 같이 선별했기 때문에 수백 점의 그림을 꿰뚫는 특정한 분위기를 아는 사람은 빌리뿐이다. 

벽을 사이에 두고 둘이 대화하는 것은 의식이 무의식에 있는 아니마와 대화하는 것의 은유이다. 또한 그녀를 방에서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은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의 은유이다.

자신의 아니마에 맞는 실제 여성을 찾아서 아니마를 의식화한 버질은 괴팍한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여성과 그림이 아니라 실제 세상에서 살아갈 마음의 힘을 얻었다. 이전에는 소장한 그림들이 그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사랑하는 여인 클레어가 그의 전부이다.

또한 버질과 빌리는 한사람의 양면이라고 볼 수 있다. 버질을 자아라고 보면 빌리는 어두운 그림자 측면이다. 그림자는 구박을 받다가 폭발하여 결국 자아를 파멸로 몰고 간다. 빌리는 모든 위작을 걸러낼 수 있다고 잘난 척 하는 감정사 버질에게 이 사랑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내보라는 문제를 던진다. 오랜 고심 끝에 버질은 클레어의 거짓말중 진실을 찾아내어 위작 안 어딘가에 진실의 흔적이 있다는 그의 이론을 증명한다.   

영화에서 클레어가 버질이 기다리는 카페에 나타날지는 열린 결말이지만, 클레어가 구태여 버질에게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단하나의 진실을 섞어서 이야기했다는 것은 그가 그녀를 찾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의미일 것이어서 조심스럽게 해피엔딩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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