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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May 22. 2022

영화<중경삼림>-그의 방에는 예쁜 우렁각시가 산다

마음의 방 들여다 보기

    

사람의 마음속은 보이지 않는다. 남의 마음뿐 아니라 자기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볼 수 없는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문학이나 영화의 이야기에서는 상징을 사용한다.

상징을 잘 이해할수록 작품의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조위가 연기한 경찰 633은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라는 패스트푸드 식당에 비행기 승무원인 연인을 위해 매일 샐러드를 사러온다. 그러나 어느날 결별한 그녀가 떠나가며 식당에 이별 편지와 그의 아파트 열쇠를 맡겼으나 그는 그것을 찾지 않고 식당에 맡겨두며 애써 외면한다. 직원 모두가 훔쳐본 편지에는 “항로 변경-내 비행기에 더이상 너의 자리는 없어”라고 쓰여 있다.

식당 주인의 조카인 페이는 식당일을 돕다가 그를 보고 좋아하게 되지만 내색을 하지 못하고 몰래 훔쳐보거나, 떨리는 것을 숨기려고 큰 볼륨으로 ‘캘리포니아 드림’이라는 음악을 틀어놓고 그와 이야기한다.

페이가 식재료를 사러가는 시장의 길거리 식당에서 자주 식사를 하는 양조위와 우연을 가장해 마주치고, 그녀는 맡아놓은 편지를 부쳐주겠다는 핑계로 그의 집 주소를 알아낸다.

그가 점심을 시장에서 먹는 것을 확인하는 날마다 그녀는 그의 빈집에 들러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하고 새로운 살림살이도 가져다 놓는다. 어항의 금붕어가 많아지고 우중충한 옷 대신 옷장의 윗부분에 있던 화사한 옷들이 꺼내져, 입기 쉬운 아랫부분에 놓여진다.


떠나간 애인이 혹시 돌아왔을까 봐 갑자기 그가 집에 들러서 그녀가 숨어있을 거라며 벽장문을 열었으나 그녀는 없고 대신 페이가 다른 칸에 숨어있다. 그는 닳아서 얇아진 비누와 말랐다며 기운내라고, 물기를 머금은 해진 걸레에게 눈물을 흘린다며 그만 울라고, 곰 인형이 추레하다고 빗질해주며 대화한다. 그는 그녀가 떠나서 자기 방의 모든 것이 슬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히 불안해진 그가 집에 왔을 때 집은 물바다가 되어 있었고 그는 물을 퍼내고 치운다. 비누는 새 비누로 바뀌었고 걸레도 새로운 수건으로 바뀌었고 대화하던 인형도 바뀌어 있다.

어느 날 그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다가 페이가 그의 집에서 종이 비행기를 던지는 것을 보고 놀라서 집에 가고, 집 안에 있던 페이를 발견한다.


그녀를 좋아하게 된 그는 식당으로 찾아가 캘리포니아라는 레스토랑에서 만나자고 데이트 신청을 하지만 페이는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는다. 일 년 뒤 페이는 캘리포니아에서 승무원이 되어 돌아와 삼촌에게서 식당을 사서 주인이 된 양조위 앞에 나타난다.

그녀는 종이 냅킨에 그의 자리가 그려진 항공권을 내밀고 양조위는 그녀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라도 가겠다고 말한다.  




이 영화의 겉 이야기는 남녀의 이별과 사랑 이야기이지만 속 이야기는 남자 주인공의 마음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사물과 이야기를 하느냐, 어떻게 물건이 바뀌는 걸 모를 수가 있느냐, 페이가 스토커처럼 남의 집에 어떻게 들어갈 수가 있느냐 하는 비판은 의미가 없다. 실제로 영화의 대사 중에 페이가 자기가 몽유병이 걸렸는지도 모르겠다고 하며 꿈에 양조위의 집에 들어갔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현실에서 페이가 그의 집에 들어간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양조위를 짝사랑하는 페이의 상상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페이가 그의 집에 들어가서 이것 저것을 바꾸어 놓고 옷장에 숨어있고 하는 것은 일종의 메타포이다. 사람의 마음은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그의 마음을 집이나 방으로 비유하고 마음속의 여성적인 부분, 심리학적으로 ‘아니마’라고 부르는 부분을 페이로 만들어 이토록 귀엽고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전 여자 친구와의 이별 후에 양조위의 마음은 정말 슬프다. 그러나 마음은 보이지 않으므로 마음의 메타포인 방이 슬퍼한다. 집안의 모든 물건에 자신의 마음을 투사해서 얇아진 비누에는 자신의 초라한 심정을, 물이 떨어지는 걸레에서는 자신의 눈물을, 곰인형에게는 자신의 추레한 모습을 본다. 우울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하는 그에게 집의 수돗물이 새서 물바다가 된다는 것은 그가 사실은 펑펑 울고 싶다는 이야기다.

예전 애인은 외모는 아름다울지 모르겠으나 방에 나타난 흔적으로 볼 때 그녀는 그에게 낮은 단계인 본능적인 수준의 여성성이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부정적 여성성을 깨닫는 일은 단번에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금씩 천천히 제거하다가 마지막에는 홍수가 날 정도로 제대로 울어야 이별할 수 있다.

오랫 동안의 이별의 애도 끝에 페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진정한 여성성은 그에게 밝은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가 한동안 서랍에 쳐박혀서 곰팡이가 핀 그의 셔츠를 장대에 꽂아 맑은 하늘이 보이는 창밖에 매달아서 말리는 것은 그가 더이상 우울한 마음으로 지내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아니마가 스스로를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 주위에서 이미지가 비슷한 여성을 만났을 때 활성화되기 쉽다. 그도 자신의 영혼과 어울리지 않은 여성과 헤어지고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름다운 여성 페이를 만났을 때 마음속의 아니마가 제자리를 찾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마의 메시지를 알아듣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우렁각시처럼 나도 모르게 조금씩 마음을 변화시키는 아니마를 알아챈 순간은 그녀가 보낸 신호인 종이 비행기를 본 순간으로 표현된다.   

  

현실의 페이는 양조위를 좋아하지만 그의 고백을 금방 받아들일 수는 없다. 마음속의 아니마 페이와 현실의 페이는 닮았지만 둘은 동일한 인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의 페이가 그의 진심을 이해하는데는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도 기꺼이 기다린다.

그리고 그들은 드디어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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