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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Jul 06. 2022

영화<미저리>-애니는 어떻게 팜므파탈이 되었는가

억압된 아니마의 공격

     

유명한 악역 캐릭터인 영화 <미저리>의 여자 주인공 애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표정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고, 충격적이고 인상적인 장면이 많아서 코미디에서도 많이 패러디하였던 인물이다.

그녀는 연예인의 사생팬과 비교되기도 하고, 주위 사람을 파멸로 몰고 가는 팜므파탈 이미지로 낙인찍혀 있기도 하다.

그녀의 세계로 한번 들어가 보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가 폴 셸던은 ‘미저리’라는 연약하고 어린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연작소설을 발매하여 성공하고 돈도 많이 번 작가이다. 통속적인 소설이어서 대중은 좋아하지만 평론가들은 악평을 하고, 자존심이 상한 그는 이번 미저리 시리즈를 끝내고 제대로 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산골 시골 마을에 자신을 스스로 격리하고 미저리가 죽는 결말로 시리즈의 마지막을 쓴 뒤, 원고를 가지고 자동차를 타고 도시로 돌아가다가 폭설이 내린 산길에서 사고가 나서 크게 다치고 정신을 잃는다.

     

뒤집힌 차에서 그를 구해준 여자는 전직 간호사인 애니 윌크스로 그를 집으로 데려가 치료한 후 정성껏 간호해준다. 미저리 시리즈를 모두 다 읽었으며 폴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 정도로 열렬한 팬인 그녀는 그가 점차 회복하자 그가 쓴 마지막 원고를 미리 읽어보기를 원한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원고를 읽도록 허락하였는데 그 후부터 애니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미저리를 사랑하는 애니는 작가가 마지막 편에서 소녀를 죽게 하였다고 분노하며 본색을 드러낸다. 그를 가두어놓고 중독성 약물을 주며 자신이 원하는 결말로 바꾸기를 종용한다.     

그녀가 정상이 아님을 알게 된 폴은 그녀가 밖에 나갔을 때 그녀의 스크랩북을 보게 되는데  남편이 그녀를 떠나려고 하자 그를 죽였으며 자기가 학교에서 수석 졸업을 하기 위해 1등 하던 친구도 죽였고 근무하던 병원의 영아들까지 죽인 강박증 살인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폴이 일부러 애니의 비위를 맞추어주지만, 그가 자기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을 눈치챈 애니는 그의 다리를 부러뜨려서(소설에서는 다리를 자른다) 그를 묶어두고 그와 함께 동반 자살하려 한다. 폴은 미저리를 살리는 결말로 바꾸어 소설을 끝내겠다며 그뒤 같이 죽자고 달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가 방에 들어왔을 때 폴은 완성된 원고를 들고 태워버리겠다고 협박하며 불을 붙이고, 원고를 구하려고 달려온 그녀와 격투 끝에 그녀를 죽이고 간신히 구출된다.

     

이후 예전과 다른, 남성적인 글을 쓰기 시작한 폴은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하지만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듯 종종 애니의 환영을 보게 된다.

         



이 영화에서 처음 드는 상투적인 생각은 애니는 유명인에 집착하는 스토커이자 사생팬이라는 것이다. 사생팬은 정말 무서운 존재이다. 그들은 대상에게 자신의 시간과 재산까지 쏟아부을 정도로 좋아하고 선을 넘을 정도로 집착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벗어나면 원수로 돌변한다.


다음에 든 생각은 애니에게 예술가나 작가에 집착하는 팬심 이외에 남편이나 자식에게 집착하는 여성의 모습도 보인다는 것이다. 먹이고 입히고 간호해주었는데 배은망덕하게 내 말을 안 듣는다고 분노하는 애니의 모습에서, 정성껏 키웠더니 말을 듣지 않는다며 자식에게 분노하는 엄마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오싹하다.

     

애니는 머리도 좋고 성취욕과 경쟁심이 많은 여성이다.

그러나 사랑에 실패하고 자신의 인생에서 원하는 만큼 일이 안 풀리자 걸림돌이 될만한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남편이 그녀를 떠나간 것은 그의 잘못이니 그는 죽어야 마땅하고, 학교에서 수석 하는 학생이 없어져야 자신이 1등을 할 수 있고, 자신은 결혼에서 실패해서 얻을 수 없는 아기들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비뚤어진 생각을 가진 애니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녀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글을 쓰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녀가 사는 시골로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가 와서 글을 쓴다는 것을 알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다가 우연히 사고가 났을 때 재빨리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의도와 방향대로 그가 글을 쓰도록 조종한다.


왜 그들은 자신은 책도 안 보고 성장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자식들을 감시하며 공부하라고 하고, 악기 연습하라고 하고, 좋은 직장을 얻으라고 강요하는 것일까?

같은 논리로 왜 애니는 자신의 글을 쓸 수 없을까? 문학 팬인 애니가 폴의 힘을 빌리지 않고 글을 쓸 수는 없었을까? 대상이 연예인이던, 작가던, 남편이던, 자식이던, 환자던, 자기가 돌봐주는 사람이 얻은 성취가 자신의 것은 아니다. 그렇게 좋은 일이라면 자기가 하는 게 맞다.

      

이번에는 심리학적으로 폴의 측면에서 영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

작가인 폴 셸던이 오랫동안 써온 연작의 주인공이 미저리라는 연약하고 감상적인 소녀인 것으로 보아 그의 내면의 여성성은 미숙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작가가 주인공 미저리를 죽이고 소설을 끝내버리는 것은 그나마 미미하게 존재하던 여성적인 부분, 즉 아니마를 제거하는 것이다. ‘미저리’라는 소설이 평단에서 좋은 평을 받지 못한 것은 여성이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라 여성을 제대로 파악해서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통합에 실패한 작가가 위대한(실은 남성적인)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하자 억압된 여성성이 더욱 왜곡된다.

애니는 억압되어서 폭발력을 갖게 된 파괴적인 아니마의 상징이다. 죽어가는 폴을 치료하고 먹이고 돌보아 살려낸 여성성은 그의 작품에 여성성을 반영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을 거절당하자 폴을 파괴하려 한다. 폴은 파괴적인 아니마를 죽이고 가까스로 자아를 지켜내지만 이제는 오히려 여성성의 결핍이 그를 오래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가 애니의 집에서 탈출한 뒤 남성적인 글을 썼지만 때때로 애니의 환영을 보는 것은 애니로 상징되는 여성성이 그의 마음 안에서 결코 없어지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작가는 성별과 관계없이 여성성과 남성성을 다 아우르는 성숙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폴이 여성성과 화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성적인 세계만을 그린다면 그의 미래의 작품도 불완전할 것이고 위대함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 될 것이다. 또다시 오랫동안 억압된 왜곡된 아니마가 나타나 그를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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