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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Aug 01. 2022

영화<1408>-그 방에 절대로 들어가지 마라

금기는 깨지 말았어야 했다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고, 어떤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그 생각을 하게 된다. 주인공이 받은 초대장은 “1408호에 절대로 들어가지 마시오”인데, 독자나 관객들은 역설적으로 이 사람이 이 방에 들어가서 무서운 일을 겪을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 마이크는 회의주의자로, 사후 세계나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사랑하는 딸 케이트를 병으로 잃은 후 아내와도 헤어지고 귀신이 나온다는 호텔에서 묵으며 방문기를 작성하여 책을 내는 인기 없는 작가이다. 역설적으로 그의 방문기를 모아서 만든 책은 귀신이 있다는 것은 헛소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책이 된다.

딸이 죽고 아내와 이혼 후 혼자 자유로운 삶을 살던 그는 바닷가에서 서핑을 하던 중, 바닷속에 빠져 거의 죽을 뻔하다가 겨우 살아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의 돌핀 호텔로부터 “1408에는 절대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쓴 초대장이 오고 흥미를 느낀 마이크는 그 방에 묵기로 마음먹는다.

호텔 지배인은 그 방에 묵은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는 역사를 말하며 만류하지만 마이크는 고집을 부리고 기어이 1408호로 들어간다.     

들어간 후 알람시계에 한 시간이 설정되며 그 방에서 죽어간 귀신의 환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아버지의 환영도 나와 “너도 나처럼 될 거다”라는 저주를 퍼붓는다.

또한 딸이 건강했을 때 세 식구가 행복했던 시절의 영상과, 딸이 죽어가며 천국에 대해 물어볼 때 아내는 죽은 후에도 아름다운 세계와 친구가 있다고 대답한 반면, 마이크는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던 장면도 티브이 모니터에 보인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 이후 힘들었던 마이크는 아내가 딸에게 헛된 희망을 주었다고 비난하며 아내를 떠났었다.

호텔방의 벽에 걸려있던 그림은 배가 파도가 치는 바다에 위태롭게 떠 있는 것이었는데, 갑자기 그림에서 물이 쏟아지며 방안을 가득 채우는 바람에 마이크는 물에 빠진다. 그가 정신을 차려보니 과거에 서핑을 하다가 바다에 빠졌다가 구조되었을 때처럼 자신은 병원 침대에 누워있고 이번에는 옆에서 아내가 간호를 하고 있는 다른 상황이다.

 

그러나 며칠 후 완성된 원고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에 갔을 때 그곳의 직원들이 호텔에서 보았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마이크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우체국 벽을 부수는데 거기에 나타난 장소는 결국 1408호였다.

그 방이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절망한 마이크 앞에 익숙한 방문이 나타난다. 그 방문이 열리며 평생 잊을 수 없는 딸 케이트가 나와서 마이크 품에 안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케이트는 재가 되어 부서져 버리고 마이크는 딸을 두 번 잃었다고 절규한다.

그러면서 방안에 딸의 무덤과 마이크가 들어갈 무덤이 등장한다.

한 시간이 지나자 시계가 다시 세팅되며 방은 두 가지 선택을 제안한다. 다시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하던지, 체크 아웃(죽음을 의미)하던지 고르라고 하는데 마이크는 체크 아웃을 선택하지만 방이 제시하는 방식은 거절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체크아웃하겠다며 방에 불을 지른다. 극장판에서는 불이 난 호텔에 아내가 신고한 소방차가 오고 소방대원이 그를 구출해서 데리고 나오고, 감독판에서는 방과 함께 마이크는 불에 타 죽는다.



1408호는 인간의 무의식을 상징한다. 무의식에는 의식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기억이나 생각들을 억압하여 쌓아 놓게 된다.

마이크는 자신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기를 쓰고 그와 다르게 살아왔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 아버지와 닮은 특성이 그림자로 억압되어 있다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를 공격한다.

또한 그는 딸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회의주의자여서 딸이 영혼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딸이 천국에 있다고 믿는 아내를 그토록 비난한다. 심지어는 유령이 있다는 호텔을 다니며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책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리운 딸의 영혼이 존재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절실한 소망이 있었다. 어쩌면 그의 진심은 자신의 무의식 속에 딸의 영혼이 숨어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무의식에서라도 딸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꼭꼭 누를수록 압력을 커지는 법이어서 절대로 들어오지 말라는 금기를 깨게 된다. 의식은 이것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이미 보냈었다. 현실에서 바다에서 서핑할 때 한눈을 팔다가 깊은 바닷속에 빠져서 죽을뻔한 것은 무의식을 함부로 탐험하면 빠져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경고였다. 그러나 그는 이 경고를 알아채지 못한다.

무의식의 가장 깊은 층에서 딸을 만났을 때 마이크는 사후에 귀신이 된 딸을 만나서 위험한 것이 아니라, 결국 딸은 죽어서 영혼도 없고 그냥 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또다시 받아들여야만 하고 그 허무와 절망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방은 무덤 두 개를 제시하고 그와 그의 딸이 묻힐 것임을 암시한다. 무덤 하나는 이미 죽어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딸의 상징이고 다른 하나는 절망한 그가 자살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허무의 끝에서 절망한 마이크에게 남은 선택은 파멸(자살), 아니면 탈출(무의식을 봉인하고 사는 것)이다.

감독판은 파멸을, 극장판은 탈출을 보여주었다.

      

심리치료에서도 무의식을 의식화시키는 경우가 많지만, 무의식의 세계가 너무 어둡거나 환자의 자아가 약해서 그 세계를 감당할 수 없는 경우 절대로 함부로 그 세계를 건드리지 않는다. 무의식에 압도당해서 자아가 망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 극장판에서 아내의 도움으로 구조된 주인공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물리적인 1408호는 타버렸지만 마음의 무의식은 없앨 수 없다. 녹음기를 통해, 봉인된 무의식의 갈라진 틈으로 새어 나온 딸의 목소리는 부부의 삶을 흔든다.


주인공에게 1408호는 절대로 들어가면 안 되는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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