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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Apr 20. 2022

영화 <파이트 클럽>-통제되지않는 그림자의 질주

그림자는 나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소행성에서 날마다 바오밥 나무의 뿌리를 솎아내고 휴화산을 청소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무와 뿌리가 순식간에 자라 행성을 뒤덮을 것이고, 화산의 분출구가 막히면 내부의 압력으로 행성이 폭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어린 왕자 덕분에 그의 작은 행성은 안전할 수 있고 그는 성공적으로 그의 소중한 장미를 보호한다.

이 영화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어떤 싹이 자라고 있는지, 무엇을 억압했는지, 어떻게 그것을 해소해야 하며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 가를 보여준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여러 그룹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명함에도 정작 이름이 빠져있다. 편의상 잭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잭은 불면증에 6개월이나 시달리다가 단골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고통을 호소하는데 의사는 암환자의 고통에 비하면 그의 고통은 약과라고 말한다. 그래서 한번 찾아가 본 암환자 모임에서 환자들은 죽음을 앞두고 진심만을 말하고 서로 얼싸안고 울면서 서로 위로하는데, 이들의 품에 안겨서 잭도 위로를 받으며 잠을 푹 잘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고환암 환자 모임만 갔지만 나중에는 백혈병, 위암, 결핵 등 여러 종류의 암 환자 모임을 날마다 순례하게 되는데, 어느 날부터 한 여자가 그가 참석하는 모임마다 등장하게 된다. 그가 잠을 이룰 수 있는 이유는 그곳에는 진실만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는데 자신 이외에 거짓된 환자가 또 등장하자 잭은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 성가시고 혀로 자꾸 건드리게 되는 입안의 상처 같은 여자의 이름은 말라였는데, 둘은 서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며 모임이 겹치지 않도록 나누어서 참석하기로 합의한다.


잭의 직업은 자동차 회사의 리콜 코디네이터이고, 그는 순전히 비용적 측면에서 모든 사고 차량에 대해 개별 보상하는 것이 전체 차량을 리콜하는 것보다 싸다면, 차량의 결함을 알고도 리콜하지 않고 유지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는 비인간적인 일을 한다. 그는 이런 결정을 위해 출장을 많이 다니다가 어느 날 비행기 옆자리에서 자신과 똑같은 서류 방을 가진 비누 사업가 타일러 더든을 만난다.

출장에서 돌아온 잭이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갔을 때 그 건물에 화재가 났고 불탄 집은 바로 그의 집이었다. 그가 이케아 카탈로그를 뒤져가며 사서 모은 가구와 살림이 폭발로 인해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갈 곳이 없어진 그는 말라와 타일러에게 전화를 한다. 타일러의 제의로 잭은 폐가나 다름없는 그의 집에서 같이 살기로 한다.

타일러는 잭에게 자신을 때려보라고 부추기고 맞은 뒤에 자신도 잭을 때리며 둘은 싸우게 되는데 이 싸움은 매일 계속되고 잭은 여기서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누구와 싸우고 싶냐는 질문에 잭은 자신과 엄마를 버린 아버지와, 간디나 링컨 같은 위인과 싸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들의 싸움을 흥미롭게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그들은 ‘파이트 클럽’을 결성하게 되는데 그들은 클럽에 대해 말하지 말 것, 일대 일로 싸울 것, 기권을 외치면 멈출 것 등등 규칙도 만들고 회원 수는 점점 늘어나게 된다.

타일러는 밤에 영사 기사로 일을 했는데 그는 가족영화에 포르노 샷을 슬쩍 끼워 넣는 장난을 하기도 하고, 웨이터로 일하는 식당에서는 채소에 재채기를 하거나 수프에 오줌을 싸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이 지방흡입으로 버리는 지방으로 비누를 만들어서 자신이 버린 지방을 도로 사게 하자며 잭을 성형외과 병원의 폐기물 처리장으로 데려가서 버려진 지방을 훔치기도 한다.  길 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도발하여 싸움을 건 뒤 일부러 져주어서 싸움에 재미를 갖게 해 주고, 길가에 세워진 차의 타이어를 펑크내기도 하며, 비둘기에게 먹이를 일부러 많이 먹여 근처의 차에 온통 똥을 싸게도 한다. 아르바이트하는 휴학생을 총으로 협박하여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공부하라며 앞으로 지켜보겠다고 말하며 신분증을 빼앗아 보관하기도 한다.


그러나 잭이 싸움에서 도를 넘기 시작하고, 곱상한 샌님 생활은 신물이 난다며 회사 상사를 찾아가 유급 휴직을 허가하지 않으면 그가 폭행했다는 걸 보이겠다며 스스로를 때려서 상처를 내어 원하는 것을 받아내기도 한다. 타일러의 장난도 정도가 심해져서 문명을 파괴하여 원시 상태로 되돌리겠다며 ‘대혼란 작전’을 계획한다. 이과정에서 시내 한복판의 건물에 불이 나고 잭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타일러는 이 작전의 룰은 질문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며 대답을 회피한다. 둘이 말다툼을 한 뒤, 자동차의 운전은 타일러가 하였는데 그는 앞을 보지도 않고 핸들을 놓고 그대로 차를 돌진시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큰 사고를 낸다.

심하게 다친 잭이 며칠 뒤 일어났을 때 타일러는 보이지 않고 그의 집에서는 회원들이 비누의 원료로 폭탄을 제조하고 있었고, 작전 수행 중 경찰의 총에 맞아 회원들이 죽었는데 그중 한 명은 잭이 암환자 모임에서 만나 위로를 받았던 밥이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 잭은 집안을 뒤져 많은 신분증 더미와 여러 도시를 다녀온 탑승권들과 알 수 없는 주소들이 적힌 종이를 발견한다. 이것들에 근거하여 타일러를 찾으러 여러 도시를 다닌 잭은 자신이 늘 그보다 한발 늦는다는 느낌과 그 장소가 과거에 가본 듯한 기시감을 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결국 어떤 술집 주인이 잭에게 “당신이 곧 타일러”라고 말해준다.

자신의 집을 폭파시킨 것도 그 자신이었고, 둘이 싸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스스로 자신을 때린 것이었다. 또한 말라가 타일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그녀는 잭을 좋아한 것이었다. 잭은 타일러가 자기도 모르게 나타나 그녀를 해칠까 봐 걱정이 되어 그녀를 다른 곳으로 피신시킨다. 그리고 폭탄이 설치된 빌딩 지하의 주차장으로 가는데 이때 타일러가 나타나 이를 막으려고 잭을 때리지만 CCTV에는 잭 혼자서 스스로를 때리며 이리저리 넘어지는 장면으로 보인다. 폭탄을 찾은 잭이 그것을 해체하고 건물의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을 때 타일러가 총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잭은 타일러에게 “그동안 고마웠지만 지나쳤어. 이 모든 것의 책임은 나야.”라고 말하고, 반면 타일러는 잭에게 “나를 원했으니 계속 모든 것을 다 맡겨줘.”라고 말한다.

잭이 자신과 타일러는 같은 사람이니 타일러가 총을 가졌다는 것은 자신이 총을 가진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총은 잭의 손으로 옮겨온다. 그러나 타일러에게 총을 쏘아봤자 죽지 않고, 자신이 죽어야 타일러도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잭은, 총구를 자신의 입안에 대고 볼 쪽으로 향해서 방아쇠를 당긴다. 타일러는 사라지고 다친 잭은 때마침 끌려온 말라에게 앞으로 잘 될 거라고 말하며 밖에서 나머지 폭탄이 터지는 광경을 보면서 그녀의 손을 잡는다.  

       



남자아이들은 자라면서 아버지를 보고 배우고 롤모델로 삼는다. 같이 엉켜서 레슬링도 하고 운동 경기장도 가서 남성 호르몬을 어떻게 발산하는지도 익히면서 자란다.

잭은 친부가 어릴 때 자신과 엄마를 떠나면서 이미 이런 방법을 배우는 길을 잃었다. 아마도 착한 아이라서 엄마의 속을 썩이지 않으려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얌전한 아들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 겉으로는 전문적인 직업도 가지고 살지만, 내적으로 쌓여가는 남성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방법을 몰라서 억압했고 그 압력이 상당했을 것이다. 타일러가 영사 기사로서 영화에 엉뚱한 장면을 삽입하는 것처럼 그의 삶에도 무의식은 때때로 틈입한다. (잘 보면 타일러의 모습이 영화 중간중간에 순간적으로 등장할 때가 많다.) 어느 순간 압력이 감당이 안될 정도로 커지자 ‘그림자’인 타일러가 전면에 등장한다. 비인간적인 자동차 리콜 감정사를 해서 번 돈으로 기껏 잭이 하는 일은 고급 가구나 필요하지도 않은 명품을 사는 일인데, 이 자괴감이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로 발전해서 나중에 자본주의의 상징인 크레딧 카드 회사를 폭파해야겠다는 생각의 기초가 된다.

억눌려 있던 무의식은 분출구를 찾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한다. 처음에는 간판 문구의 알파벳 몇 개의 위치를 바꿔서 웃기는 의미를 만드는 등의 악의 없는 장난 수준이었던 행동들이 나중에는 위험한 단계에 이른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억압한 그림자 부분이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가끔 도가 넘치는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이 스트레스 때문이거나 과거의 상처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그러나 잭의 문제는 타일러는 잭이 한 일을 알아도, 잭은 타일러가 한 일을 모른다는 것이다. 잭이 잠이 안 왔을 때에도 사실은 잭이 타일러가 되어 부업을 했고, 오랫동안 잠을 잤다고 생각하는 기간에도 타일러가 일어나 많은 일들을 하고 돌아다닌 것이다. 타일러의 에너지가 너무 커서 잭을 압도하고 휘두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순간 타일러로 변해서 무슨 짓을 했는지를 모르는 상태이다. 주변에서 보는, 술을 먹으면 개처럼 행동하다가 블랙아웃이 되어 나중에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는 사람의 상태와 같다. 잭이 이름도 없다는 것은 ‘자아’의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다. 자아의 정체성이 없으니 모임마다 다른 이름, 즉 ‘페르소나’만을 가지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자아’의 통제권에 대한 상징으로 자동차가 많이 나오는데 꿈이나 환상에서 누가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영화에서 잭 대신 타일러가 운전석에 앉아있다는 것은 자아가 현실의 통제권을 잃었다는 뜻이다. 또한 핸들을 놓고 달린다는 것은 방향을 상실한 것이고, 질주한다는 것은 한계를 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종을 울리는 존재는 ‘아니마’의 상징인 말라이다. 그녀는 잭이 암환자 모임에서 거짓 위안을 얻을 때마다 나타나 그것이 잭의 진짜 평화가 아님을 일깨운다. 그녀는 타일러 타령을 하는 잭에게 마음 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이 들어있다며 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물론 말라도 현실의 인물은 아니다. 그녀는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찻길을 살피지도 않고 사고 없이 절묘하게 건너는 비현실적인 존재이다.

 

사랑하는 친구 밥을 잃고서야 정신을 차린 잭은, 타일러가 곧 자신이고 자신의 무의식이 자아를 집어삼켰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통제권을 찾기 위해 자신을 해침으로써 타일러를 없애는 극단의 방법을 쓴다. 그리고는 “나는 이제 눈을 떴어”라고 말한다.

드디어 그는 자신의 주인이 되어 아니마와 손을 잡고 무너지는 예전의 세계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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