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퇴사를 준비하다
잔다르크를 희망하던 나는 드디어 사직서를 냈고, 첫 번째 사직서는 3분 만에 칼 같은 반려가 됐다. (그 회사 인사팀은 타 부서의 협조 요청에 반응을 하지 않기로 유명했는데, 이런 사직서 반려는 또 빠르기로 유명했다) 담당 부서장과의 면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문제는 그 부서장이 해당 기간 입원을 해, 결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 위인 부사장과 면담을 하게 되었고, 정확히 우리 아빠 뻘인 그에게서 “업계가 얼마나 좁은데, 내가 너 인생 망칠 수 있다.”라는 듣는 사람 민망해지는 협박만 들었다.
일이 한번 꼬이면 제대로 꼬인다고 했던가. 덜컥, 어느 회사의 1차 면접까지 붙고 말았다. 가고 싶었던 대기업이었고, 만약 신입사원으로 입사한다면 3일 만에 회사를 나가야 했다. 부서장까지 부재한 상황에서 3일 만에 회사에서 튀는 게 가능할까?
Episode1 | 인수인계, 받았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일단은 힘들었을 때마다 작성해두었던 인수인계서를 꺼내 프린트하고, 바로 사수에게 다른 회사가 붙어 일주일 만에 근로를 종료해야 할 것 같다고 말을 했다. 의외로 그의 태도는 매우 유연했는데, 붙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는지, 바로 내 인수인계서를 보면서 자신에게 업무를 설명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인사팀장을 면담하고 나서 바로 바뀌었다. 특히 그 회사는 신입사원이 퇴사하는 것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행동했는데, 신입사원 퇴사율이 그렇게 높았음에도 기껏 뽑아줬더니 나가냐는 한결같은 스탠스를 유지했다. 나의 사수 또한 내 사직을 보고했을 때, 걔가 없는 거 너가 확실히 책임질 수 있냐는 말을 들었고, 그는 바로 책임질 수 없을 것만 같은 무서움에 이미 받은 인수인계마저 받지 않았다며, 인수인계 확인서에 사인을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Episode2 | 알아서 퇴사하세요.
인사팀장과의 면담 또한 계속 실패하자, 나는 아예 인사팀 앞에서 진을 치고 앉아 그를 만나기 위해 대기를 타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퇴사를 희망하는 모든 나의 행동들이 곧 증거가 될 테니까. 하지만 그는 끝끝내 나를 회피했고, 그 다음날 내가 그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자, “알아서 퇴사하세요. 무단 퇴사 처리할 테니까.”라며 퇴사사유 또한 듣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전달했다.
무단 퇴사.
내 인생에서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행동이다. 하지만 나는 급했고, 한 달 이후에도 내 사직서는 반려될 것이 뻔했기에, 내 인생 평생 만날 것이라 생각도 못 한 노무사를 나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Episode3 | 노무사를 만나다.
속칭 대부분의 회사 내규를 보면, ‘퇴사를 희망하는 근로자는 한 달 정도의 기간을 두고 퇴사를 진행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결코 한 달이라는 기간과 함께라면 나는 퇴사가 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다. 사직서를 내는 순간부터 퇴사 의사가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지만, 반려가 된 경우, 다시 사직서를 제출하는 일을 반복해야 하고, 동시에 불편한 면담 (예시: 어디로 이직하냐) 등이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커리어에 대한 협박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모두들 같은 것을 고민할 것이다.
무단 퇴사를 한다면, 내 다음 회사에 문제가 될까?
결론 1: 어떤 이유로 하여금 근로자의 타 회사 고용 프로세스에 악의를 가지고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불법이다. (고용법)
결론 2: 사직서 반려로 인한 무단 퇴사의 경우, 만 1년을 채우지 않은 경우에는 문제가 될 확률이 적다. 하지만 만 1년 기준으로 퇴직금이 발생하기 때문에, 퇴직금 산정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결론 3: 근로계약서 상실 신고 코드에 무단 퇴사 코드를 사용하게 되면, 다음 회사 인사담당자가 확인할 수도, 그리고 확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새롭게 신입사원으로 지원하는 경우, 레퍼런스 체크가 없어 대부분의 경우 문제가 없지만, 경력증명서를 4대 보험 확인서로 제출하는 경우, 코드가 확인될 수 있다. (확답할 수 없음)
첫 번째 사직서가 반려가 되고 난 뒤, 노무사에게 내 질문을 퍼부으면서 들었던 말 중 가장 힘이 되는 말은
“사회초년생으로 지금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거 압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이건 정말 별게 아니라는 거 꼭 알아두세요.”
라는 것이었다. 받을 퇴직금도, 경력직으로 지원할 생각도 없는 신입사원에게는 사직서가 반려돼도, 인수인계서를 받지 않았다 사수가 주장하여도, 당당히 근로를 종료시킬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