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엄마가 된다는 걸 진심으로 축복해주고 싶었다.

친구가 아줌마가 되자 나는 이모가 되었다.

by 농약맛댕댕이


한 달에 한번 여행계를 빌미로 모이는 고등학교 친구들.

한달 전 결혼한 친구 A의 이야기로 이야기 웃음꽃을 피웠다.



일정이 있어 뒤늦게 삼겹살집으로 합류했건만, 내년 하반기 겨울에 일본 료칸 여행을 가자는 것이 아닌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 결혼은 여행에 상관없으니까 모르겠고, 임신이나 그럼 다들 미뤄라~

라고 던졌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img.png 모든 짤은 무한도전으로.. 감사해요 명수옹 (출처: Google)



그때까지만 해도 눈치는 완전 밥 말아먹은 채로 삼겹살에 항상 소맥을 먹던 우리가 그날따라 술을 한 병도 시키지 않은 건지, 왜 친구 A가 칵테일 바가 아닌 카페를 가자는 것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평소 눈치가 매우 빠른 편이거늘, 이런 날에는 또 바보다) 이미 카페를 다녀왔던 나의 강력한 주장으로 칵테일 바에 갔는데 그녀가 오렌지 주스를 시킴과 동시에 수줍게 가방에서 임산부 뱃지를 꺼내는 것을 보고서야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왜 브라질리언 왁싱 체험기를 늘어놓는 나에게 “그거 임산부들도 많이 한다면서” 라며 나에게 집중했는지, 왜 이번 년도 겨울도 아닌 내년 겨울에 일본 여행을 가자고 했는지 모든 것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당황스러웠다.

축하해야 할 일이 맞는건지. 누가 봐도 계획하지 않은 일인 것 같은데 괜찮은 건지, 속상해 하지는 않는 건지. 친구도 친구의 남편도 일을 하는데 직장은 어떡하며, 집은 또 어떻게 하는지. 갑자기 가득 찬 생각으로 임신한 친구 대신 입덧을 하는 느낌이었다.



image.JPEG?type=w420 왜 내가 당황스러워 하는건데.. (출처: Google)



한번뿐인 그녀의 순간을 이렇게 보낼 순 없지.

아득해진 정신을 붙들어 매고,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건냈다. 그리고 으레 친한 친구라면 하듯이 모든 것을 취조(?)하기 시작한 결과, 허니문 베이비로 신혼여행 기간이 다소 위험한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해, 안 생길 확률이 높지만 생기면 대박이다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미 흰색 구렁이가 집 문에 들어서는 태몽도 꾸어서 아직 귀도 생성되지 않은 쪼꼬미이지만 (아이)보리라는 이름도 지었다고 했다. (이건 쫌 귀엽다)


결혼도 담담하게 얘기해서인지 임신을 더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집은 회사 근처에 더 큰 평수로, 출산휴가만 쓰고 복직,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했던 신혼여행 겸 해외여행은 아이 낳고 단둘이 등등 그녀는 그녀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에 맞추어 또다시 그녀의 인생 계획을 수정 중이었다.



8956606234_1.jpg 검색해보니 책이 있더라고요.. 읽어볼까봐요.. (출처: Google)



내집장만 마련의 꿈에 치우쳐 어쩌면 나도 누릴 수 있는 순간을 피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복직 걱정 없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낼 수 있는 그녀의 근무환경과 서울 집이 아니어도 출퇴근이 편리한 그녀의 생활환경이기에 가능한 것이라 애써 자기위로를 했다. 하지만, 내가 그녀와 똑같은 환경이라도 난 지금 결혼, 출산을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난 큰 계획이 틀어지는 게 죽기보다 싫은 ENTJ의 인간이고, 2년마다 전세로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인생의 큰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간이 크지 않은 겁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0대인 우리가 엄마 아빠라니. TV프로그램 <고딩엄빠>와 우리가 무엇이 크게 다르단 말인가. (오해하지 마라 고딩엄빠가 그토록 존경스럽다는 뜻이다) 난 20대에 임신을 하면 경찰서 조사를 받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엄마가 되기에는 미성숙한 것 같고, 내 친구들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농담삼아 20대에 임신은 법적으로 금지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까지 말한 우리가 한 명의 임신으로 인해 1명의 예비 엄마 그리고 3명의 예비 이모로 재탄생했다.



20180117519186.jpg 내가...내가 이모라니!! (출처: Google)


난 여전히 누군가의 언니, 누나일수는 있어도, 누군가의 이모와 엄마(엄마는…진짜 감당불가 단어다)일수는 없다. 내 아이에게 내가 받은 만큼은 해주고 싶은 완벽주의자이며, 서울에 직장이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서울에 직장이 있기 때문에, 퇴근 1시간이 넘는 거리에 집을 둘 순 있어도, 그 상태로의 육아 및 출근은 불가능함을 알고 있으며, 남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하자, “네가 애 낳았냐?”는 소리를 직접 옆에서 듣게 한 회사에서는 더욱이 임신할 수 없다.


난 여전히 그녀가 임신을 시도조차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친구가 복지 좋기로 소문난 선생님이며, 서울 집값을 감당하지 않고도 근무지 모처에 터전을 꾸릴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그런 선생님마저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또 오해 금지. 낳으라는 강요가 아니다. 난 남이 애를 낳든 말든 관심이 없다) 그때는 정말 대한민국 모든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고 있음으로 봐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a9c0799f-fd97-4154-b19b-63464277cd99.jpg 출산율 최저 이미 심각한 문제다. 내가 해결할 생각은 없지만.. (출처: Google)



건설회사 직원으로서, 매일 신혼부부특별공급, 신혼희망타운 조성 등의 기사를 확인한다. 서울에 회사가 있는 대부분 직장인에게 평택, 화성 등의 너무 먼 곳에 희망타운을 조성하고(직접 2시간씩 막힌 길 뚫어가며 출퇴근), 맞벌이 부부라면 으레 넘을 수 밖에 없는 소득제한으로(둘이 합쳐 1억도 안되는데 이미 중위소득이다) 청약 1순위는 꿈도 꿀 수 없는게 현실이다.


대한민국 예비 엄마아빠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모두 선생님이 아닐지라도, 법적으로 정한 권리들을 눈치보지 않으면서 사용하고, 아이를 임신함으로써 손해를 감당해야 하는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나와 같은 쫄보 예비 임신 가능 여성/남성들은 여전히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GG를 외칠 것이다.


아이가 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축복, 축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시대, 언제 올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지금은 아니었다. 내가 진심으로 그 친구에게 바로 축하해! 하지 못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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