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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약맛댕댕이 Sep 11. 2023

결국 출근하지 못했다.

정서적 완벽주의자(1)_발병의 시작

전편 : https://brunch.co.kr/@08063629267045e/64


키보드 소리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대뇌어도 가슴이 자꾸 답답하고,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손이 너무 차가워 마우스를 잡기 힘들 정도였다. 원래는 사고의 전환을 시도해보려 상담코칭센터를 예약했으나, 이제는 긴장과 불안이 신체적 증상으로까지 표출되는 수준까지 이르고 있었다. 일단 화요일부터 한 시간에 한 번씩 깼으니, 수면의 질과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나는 평소에 9시간을 내리 숙면하는 사람이다) 특히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의 경우, 너무 답답하여 가슴을 치면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예전 한 방송에서 신동엽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에 자다가도 가슴을 치면서 일어난 적이 있다고 했엇는데 그 방송 클립이 생각났다. 


 잠을 내리 3일 못자는 건 나에게 사망선고와도 같기 때문에 서둘러 정신과를 예약했다. 요즘 정신과가 너무나 호황이라 초진 예약은 하늘에 별 따기라던데, 과히 맞는 말이었다. 초진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이주일까지 예약이 걸렸고, 그마저도 반차를 써가면서 가야하는 수준이었다. 간신히 차주 월요일에 예약을 잡아두고, 금요일 오전 하루만 더 버티면 월요일에 병원을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출근 준비를 하고 문 앞에 섰다. 그 동안 울면서 자는 나를 지켜본 동거남은 오늘 하루 수고하라고 나를 안아주었고,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회사 가는게 너무 무서워. 가면 숨을 못 쉴 것 같아. 라며 얼마간 울었을까. 집 밖을 나서는 문이 철문과도 무겁게 느껴져 손잡이를 만지며 부들댔다. 동거남은 일말의 당황한 기색 없이 말했다. 


가방 내려놓고, 당장 전화해서 회사 못가겠다고 해.
오늘 서울을 다 뒤져서라도 정신과 예약 잡아서 다녀와,
그게 응급실이 되었든 상관없으니까"


난 거의 반강제로 가방을 놓고, 아침 8시에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아침 8시에 팀원에게 전화가 왔으니, 그도 아마 무슨 일이 있음을 짐작하고, 잘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종료했다. 나는 그 이후 정신과를 네이버지도에 검색했고, 서울에 이렇게 많은 정신과가 있음에 감탄했다. 예약 창에 초진 오전 10시 한 군데가 빈 그 곳이 어딘지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예약을 마무리했고, 지도가 이끄는 대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실, 병원에 어떻게 갔는지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모든 버스 탑승객이 나를 쳐다볼 정도로 엉엉 울었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햇살도 뜨거웠고, 창피도 했기에 선글라스를 꼈건만, 자꾸 흐르는 눈물 때문에 선글라스를 벗어가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눌렀다. 


그렇게, 정확히 거지같은 회사를 뛰쳐나온지 1년 6개월만에, 난 다시 정신과를 방문했다. 




> 다음편 : 환자분은 정서적 완벽주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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