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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Oct 17. 2020

피서지에서 생긴 일

  기해년 여름은 나를 선선한 곳만 찾도록 만들었다. 나는 선풍기나 냉방기 찬바람을 직접 맞으면 즉시 머리가 아프다. 살 속을 파고드는 냉기도 괴로워서 긴 팔의 면(綿) 옷을 입고 외출하는 형이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 댄스 하는 곳에서는 나만 기계 바람을 피해 구석을 찾아다니며 운동하는 별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은 선풍기 바라기이고 냉방기 작동 담당이다. 나는 두 가지를 내 손으로 만지는 예 가 거의 없다. 가끔 하는 부채질도 그치면 더 덥다. 그래서 맨 몸으로 여름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딸이 9월 초순에 해산할 예정이다. 7월부터 육아휴직이 적용되어 하루 간격으로 아이 아파트에 가면서 ‘올여름 피서지‘로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실내 온도가 섭씨 26도 유지하는 것이 신생아에게 적합하다는 산부인과 의사의 권장 사항이라 했다. 산부인과 의사의 말은 풋내기 부부에게 전지전능하신 절대자 하느님이었다. 내가 이 전당으로 자꾸 발길이 돌려졌다.


  ‘A Summer Place’ 대략 50년 전,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봤던 영화다. 우리나라는 ‘피서지에서 생긴 일’이란 제목으로 상영됐었다. 재혼한 부부가 남매 관계로 맺어진 청춘남녀(산드라 디와 트로이 도나휴)를 데리고 떠난 피서지에서 사건이 발생된 영화였다. Max Steiner(맥스 스테이너)의 영화 주제음악도 뛰어나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글을 쓰려고 구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다.

  “엄마, 더우니까 무조건 아파트로 오세요.” 이렇게 달콤한 유혹은 지금까지 없었다. 딸이 냉방기 얼음바람처럼 굴 때는 ‘느지감치 가서 도와줄 것만 해주고 바로 돌아서야지 ‘  거리를 유지하려고 매번 마음을 굳혔다. 하지만 밤새 더위와 몸싸움하면서  ’날이 밝으면 눈곱만 떼고 아파트로 가야지…’ 벼르며 잠을 설쳤다.


  태아가 모녀관계를 이어주는 가교였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매번 ‘갈까’, ‘가면 안돼‘ 번민은 활화산처럼 맹렬했다. 번뇌가 버스정류장에서 들끓었다. 다 큰 자식과는 적당한 평행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눈에 익은 냉방차가 정지하면 재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딸은 아기 용품을 A4 용지에 빡빡하게 인쇄하여 하나씩 지워나갔고, 아기용품은 벗이 빌려주거나 포장도 뜯지 않은 것을 거저 주기도 했다. 딸 세대들은 아기 물품이 홍수가 날 지경이었다. 나는 친정어머니께서 모든 것을 장만해주어서 신생아가 쓸 것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인터넷 정보보다 못한 나였다. 딸에게 부끄럽기도 하였지만, 이 녀석의 마음이 흡족하도록 아예 두어 발 물러서 버렸다. 딸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서도 한편 씁쓸한 구석은 감출 수 없었다.


  모녀간 공통 대화는 태중 아기다. 다 잊어버린 신생아 목욕 및 필요한 물품은 네이버나 다음으로 어렴풋이 기억을 살려냈다. 나의 친정어머니는 주변에서 알려주는 도움말로 나를 산(産) 바라지하였다고 짐작되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외손녀를 통하여 어른으로 거듭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깨달아가고 있으니까. 그러나 내 딸은 산부인과에서 퇴원하면 바로 조리원에 가려고 사위가 계획하고 있다. 신생아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찰떡같이 믿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유기농으로 생산된 기저귀 천 끝을 감치는 것과 임산부가 먹고 싶은 것 만들어 주는 것이 다였다.


  딸은 노산(老産)이라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서 손발과 종아리 주물러 주고, 등과 허벅지를 나무 기구로 문질러서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있다. 그러면 태아가 기분이 좋아지는지 태동을 하며 지어미에게 신호를 보냈다. 내 딸은 “아드으을, 기분이 좋아. 니가 좋으니 엄마도 좋단다.” ”그래, 그래~ “그렇게 좋아~” 온몸이 천근만근이면서도 자식의 움직임을 ‘모성애’로 감내하며 아기의 기분을 어루만져 주었다.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명언을 만삭인 산모를 관찰하며 실감했다.


  기분 좋은 딸이 주방에 들어와 나를 거들었다. 나는 생각도 없이 “이것 해다오, 저것을 해봐라, 이렇게 저렇게 하는 거란다” 싹싹하던 딸이 “엄마, 나 지금 가르치는 거야?” “그렇다면 나 안 할래. 나중에 인터넷 검색해서 해도 되니까 굳이 다 큰 자식 가르치려 하지 마.” 칼로 무 자르듯 한 뒤 안방으로 가버렸다. ’ 아차! 내가 방심했구나 ‘


  산드라 디와 트로이 도나휴는 다 컸다고 합방하는 일부터 저질렀다. 호적상으로 남매가 된 선남선녀는 이론적으로 적절치 못한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부부는 뜬 눈으로 날이 샐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두 청춘을 기다렸다. 재혼했을 만큼 사랑했던 그들은 서로의 자식을 가슴으로 품었다. 제3 국으로 나가서 사랑의 결실을 맺도록 선처했다. 큰 그릇이 작은 것을 모두 담는다. 작은 용기는 제 아무리 품고 싶어도 용량 부족이라 그릇 크기만큼 수용할 따름이다.


  사돈이 아기이불을 사주었다. 며느리가 좋아하는 유기농 제품으로. 고부의 물건 고르는 안목은 달라도 아주 달랐다. 그래서 며칠 전 사돈을 만났을 때 사전 정보를 알려주었건만 사돈 의지대로 했던 모양이다. 딸의 불만족은 최고조였다. “실패를 해도 내가 감당하고, 극복해야 하는 나의 권리를 왜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방해하느냐”라고 흥분하여 쫑알댔다. 사돈의 심정도 이해되었지만, 유별난 개성을 가진 내 자식 또한 탓할 수 없었다. 실내가 26도만 아니면 직접 눈으로 안 봐도 되는 일이다. ‘습도는 왜 이렇게 높아지는 거야…’


  딸이 먹고 싶다는 반찬을 만들어야 했다. 재료들을 냉장고에서 꺼내 다듬었다. 딸이 등 뒤에 있었는지 “내가 해 달라는 대로 해주면 안 돼?” 언성이 예사롭지 않았다. 씻어서 포장된 콩나물도 물에 다시 헹구고, 수세미도 구별해서 사용하라, 행주도 상 닦는 것과 싱크대 닦는 것을 따로 하는 것이 사위의 철칙이라는 것. 그 기본에 따르라는 거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했다. 나 역시 이 집 규칙대로 해야 서로 편하다는 것 안다. 딸은 감시하고 있었던 것 마냥 짜증이 배인 목소리였다. ‘애고고, 내 집에서 글이나 쓸 것을 공연히 와가지고…’ 긍정적으로 대처하려 했건만, 딸의 수위가 높아져 있었다. 나도 이내 서운했다. 아예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이곳 말고 시원한 곳이 어딜까’, ‘도서관으로 가버릴 걸 그랬지…’ 나 혼자 상념에 빠진 채 불 앞에서 머리와 손이 따로 놀았다.


  “엄마, 미안해요. 윤 서방이 낮잠을 자고 있으니 괜히 속상해서 엄마한테 투정 부렸어요.” 침대에 누워 쉬는 것 같던 딸이 살며시 다가와 있었다. “엄마만 일 하는 것도 속상하고” “그래. 나도 섭섭해” 볼 멘 소리로 응수했다. 부부싸움만 칼로 물 베기가 아니다. 딸 말 맞다나 다 큰 자식이 사과하면 받아들이는 것이 상책. 그러니 도마에 오른 생선처럼 파닥거리다 이내 미안해하는 딸을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저리 잠만 자니 미워 죽겠어” 울먹거리는 딸의 불룩 나온 배를 어루만지며 “새싹이가 아버지 미워하는 말 다 듣겠다. 생각을 얼른 돌리자. 우엉 조리는 것 맛 좀 봐줄래?” 내가 입을 내밀고 있을 여가가 없다.


  7월 중순이 넘었다. 날은 갈수록 폭염으로 이어졌다. 비례적으로 냉방기도 실내온도를 낮게 설정하고, 나는 갈 곳이 없어 서성거렸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내게 맞지 않고, 도서관으로 가면 제일 좋을 것이다. 그러나 기저귀 감침질 거리가 까만 비닐봉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아침마다 “엄마, 안 와?” 축 쳐지고 며칠 미음 한 술도 안 뜬 목소리가 셀 폰 너머로 새어 나왔다. 땀은 이미 나의 온몸을 장마철 냇물 흘러가 듯 좔 좔 내려가던 차 호출이다. “많이 힘들구나. 조금만 있어라, 곧 갈게” 이 소갈머리 없는 여편네는 하던 짓거리 집어던지고 옷 갈아입기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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