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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Sep 26. 2020

가만히 앉아서 지시만 내렸다

  남편은 토요일을 선택하여 이른 아침 성묘하러 떠났다. 마치 아이처럼 들떠서 삼색전과 삼색 나물, 과일과 떡을 스스로 구입했다. 남편은 큰 동서가 3년 전에 별세한 후 질부의 짐을 덜어준다며 차례와 제사를 간소화했다. 설 전날은 시아버지의 제사여서 시어머니와 합치고, 큰 동서 내외는 7월 마지막 날로 정해서 며느리의 고생을 반감시켰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추석 성묘를 책임졌다. 


  음력 팔월 열나흘은 남편 생일이다. 큰 형수 고생한다면서 빨리 올라가라며 며칠 전부터 나를 들볶았다. 남편과 입씨름하는 것이 싫어서 아예 5일 전에 올라갈 때가 많았다. 작은 딸을 만나서 국립중앙박물관, 동대문 역사박물관, 영화관이나 사찰순례를 한 후 동서에게 이틀 전쯤 간다. 나는 남편 잔소리도 들을 것 없고, 생일 미역국과 밥상 차릴 걱정을 할 필요 없어 오히려 즐기러 갔다. 


  중요한 것은 남편이다. 남편은 앉아서 "여보, 빈대떡 더 갖다 줘. 초간장도!" 여보라고 부르면 입은 내밀었을 망정 남편 앞으로 음식이 배달되는 그 과정을 좋아했다. 명절 음식 만드는 일이 바빠서 눈코 뜰 새 없는 나를 앉지도 못하게 닦달했다. 나는 일이 무서운 것이 아니고, 남편이 아내가 힘든 모르고 불러대는 것이 죽을 맛이었다. 아이들은 아버지 채근에 큰집에 와서 일을 거들어야 했다. 내가 불만이 컸듯 남매 역시 그런 아버지를 못마땅해 했다.


  나는 테라와다 불교의 가르침을 공부하면서 제사에 대한 입장이 달라졌다. 막내아들인 남편이 제사에 연연하여 목소리를 높이니 큰 동서는 무언의 압력 감을 느꼈다. 남편은 제사를 잘 지내면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단정한다. 내가 정반대의 의견을 내세우면 3차 대전은 불 보듯 훤하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


  친정어머니는 생전에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하였다. 당신의 아들과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린 결론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판단 잘했다고 박수를 쳤다. 어머니는 재작년 영면에 들고, 동생이 나에게 제사와 관련하여 물었다. 나는 명쾌하게 지내지 말자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동생 내외를 만났을 때 올케가 살아 있는 동안 간소하게 예를 표하고 싶다고 하였다. 올케 스스로 먼저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적이 있었다.


  제사(祭祀)는 '신령이나 ②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차려 정성을 표하는 의식', 이라고 daum 사전에 나온다. naver에는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이라고 했다. 두 국어사전은 제사의 대상을 

① 신령

②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차려 정성을 표하는 의식'이라며 두 가지로 나누었다.

  

  다시 '신령(神靈)'은 daum에서 '풍습으로 숭배하는 신' 그리고 네이버는 '민속 신으로 받들어지는 영혼 또는 자연물'이라고 나온다. ①의 신령은 신(神)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제사 대상이 아니다.  즉  ②의 '죽은 사람의 넋'이 조상(祖上)을 뜻하며, 내가 죽으면 조상(祖上)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의 목적은 무엇일까. 테라와다 불교를 통해 불교적 근원을 찾아봤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꾸따단따 경(D5)>에서 조상에 대한 제사를 <나의 이익과 행복을 생겨나게 하고,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나의 이익과 행복이 생겨나게 하고,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따른다. 그것은 보시(베풀어야) 하고, 오계를 받아 지니고 실천하면서, 명상수행을 하여야 한다.


  몇 년 전부터 명절 전후로 대구 시내 곳곳에  '명절 증후군으로 나타나는 이혼 소송을 도와 드립니다'라는 내용으로 대구 지방 가정 법원에서 현수막을 설치했다. 그만큼 일하는 주부들의 심적 부담감이 크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각자 가정의 이익과 행복을 생겨나게 하고,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한 강행군으로 이혼을 한 번 더 고려하는 결과도 빚은 것은 사실이다.


  큰 동서는 예민하여 한 달 전부터 마음을 끓였다. 미리 제수 용품을 사다 들이고, 제사나 명절 전날은 나와 둘이서 음식 만들기 정신없었다. 큰 동서는 그 힘든 점을 자식, 형제들, 이웃들에게 쉴 새 없이 해마다 되풀이 방송했다. 자신의 일을 해내면서도 만족하지 못했고, 입으로 쌓은 그간의 공로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그러면서도 맡겨진 책무에 대하여 최선을 다했다. 남편은 형수의 그 점을 높이 샀다. 


  시집간 여자의 제사 대상은 시(媤) 집의 조상들이다. 남편의 돌아가신 윗대 어른들이라는 말씀. 당연히 남편이 아내를 도와야만 한다. 제사는 후손들의 화합으로 이루어낸 작품이다. 아내를 도와서 식구들이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든 후 차례를 지내면 얼마나 화목한가. 이것이 나의 이익과 행복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나의 소견은 그렇다.


  남편이 해 질 녘에 전화를 했다. 강원도 횡성에서 성묘를 마치고 대구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내가 끄집어낸 주관들은 남편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깊숙이 저장되고 말았다. 나는 목소리를 부드럽게 다듬어서 "고생했어요. 조심해서 내려와요." 빨간 단추를 살짝 건드렸다. 나는 자식들에게 제사의식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것이다. 대신 어느 날 형제들이 모여서 우애를 확인하고 다지는 시간을 가지라고 권할 예정이다.


  아마 지금쯤 시내 어디에는 '명절 증후군으로 나타나는 이혼 소송을 도와 드립니다' 이 현수막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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