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코로나 19, 니 먼데 11

by 정 혜

3월 14일, 손자가 187일째. 딸이 사위에게 나를 신천동까지 태워주라고 압력을 넣었다. 코비드 19가 껄적지근 하여 나를 태워다 주려는 의도다. 솔직히 나는 불편하다. 그러나 나는 딸의 말에 무게감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못이기는 척 사위의 차에 올랐다.


내가 우선적으로 사위에게 딸의 짜증을 사과했다. 내 딸을 이해하라고 하지 않았다. 같이 소리 지르고, '나도 신경질 난다'면서 기선 제압하라고 권했다. 손자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쌓인 감정을 털어내라고. 그리고 이삿짐은 사위가 솔선수범 하여 세 부류로 나누고, 다른 것은 내팽개쳐 두고 사위 옷부터 정리해라, 봄 옷은 가까운 공동 장소에. 다음은 한 번을 해도 완벽하게 하려고 뜸 들이자 말라. 완벽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 봤느냐고 물었다.


딸이 자가당착 상태다. 진척 없는 이삿짐 정리에 지친 눈치다. 사위와 내가 해주기를 바라면서도 흡족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손대지 말라고 했으니까. 딸이 나에게 치우지 말라고 했으나 어수선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니 그것도 한두 번이다. 빠르게 해결하지 않는 딸이 슬슬 얄미워졌다. 나는 틈틈이 말없이 정리해주었다. 딸 앞에서 말을 앞세우면 공치사가 된다.


내 어머니는 뒤따라 다니며 일일이 지적하면서 화를 냈다. 당신은 그렇지 않았다면서 한 번 잔소리했으면 두 말하지 않도록 왜 못하느냐고. 엄마의 말은 들을 적마다 징글징글 맞았고 반발감만 높아졌다. 그래서 나는 일절 말을 하지 않고 몸소 실천하고 있다. 나중에 자식들이 본 대로 행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새끼들이 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으며 그저 이 순간 충실히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될 뿐이다. 화가 치미는 것이 느껴지면 '이 순간 최선을 다하자'면서 나를 다독였다.


내 집 옥상으로 올라갔다. 바람이 아주 심하게 불어서 오래 있기 힘들었다. 과일을 먹고 화분에 묻었던 복숭아 씨가 발아하여 두 해전부터 두어 송이씩 꽃이 폈다. 금년에는 제법 많은 꽃을 볼 것 같다. 옆에는 백매화가 피는 매실나무도 발갛게 침처럼 뾰족하게 싹이 솟아 나오고 있었다. 지인에게 얻은 묘목이 3년째다. 나는 매향을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며 지척에서 향을 느끼고 싶어서 키우고 있다.


지난해 산책 길에서 채집한 씨앗들을 화분에 뿌렸다. 나와 인연이 있으면 싹이 나올 것이다. 안 나오는 것은 씨앗의 몫이다. 나의 바람은 꽃을 보기 간절히 원한다. 흔하지 않은 하얀색 분꽃, 풍선 넝쿨, 기억이 나지 않는 야생화가 나와 인연이 맺어졌으면 좋겠다.


식물의 싹은 트이지 않아도 되고, 내 자식이 게으름 피우면 안 될 이유가 있었나. 게으름은 자식의 천성이지만 교육을 잘못 시킨 내 탓도 있다. 딸은 나와 전생의 인연으로 내 곁에 왔을 것이다. 나 또한 딸과 어떤 관계였으므로 현생에서 모녀의 연(緣)으로 만났으리라.


무아(無我). 내가 없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만물과 소우주인 내 마음. 나는 오래 머물러 주지 않아서, 붙잡을 수 없는 마음들이서 괴로웠다. 그 속에 '나라는 자아', '내 것이다', '내 마음'이라고 할 고정적인 실체가 없다. 나는 아프지 않기를 바라지만 내 뜻대로 되었나 말이다. 내가 부자가 되어 떵 떵 거리며 살고 싶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게 인연이 없는 것들을 붙잡으려고 연연하였다. 그럴수록 만질 수 없고, 가질 수 없었다. 나는 내내 그 무상한 것들을 잡으려고 몸부림쳤다. 부처님은 무상한 것을 영원하기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문답식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무상(無常)하니 내곁에 머물지 않는다. 항상하지 않는데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을 바꿔야만 한다. 내 딸의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대하도록 하자.



사진: 정 혜


대문 사진은 개나리 꽃.

아래는 벚꽃 봉오리가 올록볼록 소녀의 젖몽우리 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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