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니 먼데 10
3월 13일, 손자가 186일째. 딸이 손자 이유식으로 현미 미음을 만든다고 했다. 사위는 장애어린이 집 교사로 재직 중이다. 어린이 집이 코로나로 휴원 상태라 사위가 느지감치 출근했다. 오전에는 남편 나가고 어영부영하면 점심 때니까 그렇다 치자. 딸이 오후에는 그저께 이삿짐 일부를 정리하던 뒤끝으로 몸살이 온 것 같단다. 그러면서도 컴퓨터에 카톡까지 한다. 손자의 낮잠을 내 옆에서 재우며 나도 함께 잤다. 손자가 자는 도중 벌떡 머리를 쳐들고 울어서 옆에 있다가 바로 토닥여 주어야 자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손자를 핑계 대고 눕는 이유다.
거실이 조용하였다. 딸도 밤에 손자가 자주 울어대니 당연히 잠이 오겠지. 잠이 많이 올 나이이고 수유 중이라 이해한다. 딸은 이삿짐 정리를 서서히 해도 저 마음에 들도록 하겠다며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럼 나야 더 좋지. 일 하기 괴로운 차 반가운 소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앓느니 죽는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사위 오면 해야지, 혼자는 하지 않을 거야'라면서 꾀를 썼다.
사위도 마누라 등살에 밀려서 정리를 하고는 콧물을 훌쩍였다. 머리가 아프다면서 침대에 누워버렸다. 사위 눈치는 내가 해주기를, 아내가 얼른 끝내주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일 할 군번이 분명 아니다. 딸은 뜻대로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니 손댈 필요가 없었지만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어떤 제의를 하면, '앞서 나가지 말라"며 짜증과 핀잔만 돌아왔다. 딸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말없이 가급적 지켜보기만 했다.
딸이 손자를 본다고 데리고 앉지만, 아기가 싫증을 내며 나한테로 왔다. 사위에게도 손자가 오래 있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다. 내가 아이를 봐주면 놀아가면서라도 짐 정리를 해야지 왜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느냐 이 말이다. 손자 봐줄 때 정리하라고 하면 "천천히 하면 어때서 재촉하느냐"라머 말대답이다. '애구, 저 위인을 야단을 쳐야 하나' 이내 생각을 바꾸어서 '나이 사십을 바라보는데, 저 알아서 하도록 뒤로 물러서자'
내가 방향 전환해서 흙탕물이 되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나는 화가 나면 얼굴에 나타나는 단점이 있다. 성질 급한 딸도 내게서 낌새를 챘는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딸은 뱉은 말에 대한 책임감으로 건수만 잡히면 '톡' 소리를 내며 터지는 봉숭아 씨방 같다.
'박 주영 축구장'에는 코로나 선별 관리소 텐트가 여러 동 설치되어 있다. 딸의 아파트 거실에서 환히 내려다 보였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대중가요가 떠오를 정도로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코로나 선별 관리소 텐트를 보면서 몽골 초원의 겔이 연상되었다. 봄 빛이 하루가 다르건만, 딸은 나가지 못하게 나를 통제했다. 사위도 내가 나가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눈치였다. 거실 통유리로 내다보면 가슴이 벌렁인다. 싱싱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창문을 열어도 본다. 내 발로 흙의 촉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 같다.
만물이 본능적으로 용솟음치는 시절, 나 또한 나가서 매향을 만끽하고 싶다. 나가서 봄기운을 사진기에 담고자 한다. 제발 날 붙잡지 마라.
사진: 정 혜
딸의 아파트 11층에서 내려다 본 박 주영 축구장.
폐쇄된 대신 코로나 선별관리소가 저 몽골 초원의 겔처럼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