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혜 Dec 12. 2020

아~, A, B, C… 하는 거야?

  내 딸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우연히 문조 한 쌍을 얻게 되었다. 나는 화초는 좋아해도 동물은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지인이 키울 형편이 되지 않는다며 나한테 의중을  물었다. 아이들의 정서교육에 도움이 될까 하여서 두 말 않고 받았다. 문조는 짙지도 연하지도 않은 회색 털을 지녔고 상당히 귀티 나는 새였다. 그리고 은 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목소리여서 더 매력적이었다. 


  아이들이 오며 가며 볼 수 있도록 거실 한 곳에 새장을 두었다. 아이들은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오히려 관심도 없던 나였다. 가만히 문조를 관찰해보니 목욕하는 것을 좋아해서 아침에 물을 갈아주면 즉시 내려앉아 깃을 적셨다. 그리고 횃대에 올라가서 두 날개를 펼쳐 물기를 털어냈다. 새장 주변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뿐만 아니다. 모이를 쪼아 먹으니 이것 역시 튀어서 거실이 지저분해졌다. 새 키우는 것이 아주 성가신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컷은 신기했다. 아침마다 깨끗한 물에 목욕을 한 뒤 횃대에서 물기를 털어내고 몸단장을 했다. 모이를 먹고 다시 횃대에 앉아서 "쉬 이~ 휘 이~" 작고 가는 긴 소리를 냈다. 수컷의 행동이 신기하여 계속 쳐다보게 되었다. 나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내려와서 물과 모이를 먹고 또 횃대로 가서 어떠한 소리 내기에 힘을 쏟았다. 내가 휘파람을 처음 배울 때 바람 새는 소리 같았다. 여러 날을 두고 되풀이했다. "쉬~ 쉬!" 하며 약하고 힘없이 바람 빠지는 것처럼 들리더니 반 달이 넘었을 즈음 얼추  '문조 특유의 노래를 부르는구나.'로 들렸다.     


  손자가 근래 "AE~ C~"라며 반복한다. 내가 잘못 들었나 하여 일부러 귀를 기울였다. 손자는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며 그냥 생각이 나는 듯 쉬 쉬 그랬다. 나의 십팔번 문자를 손자가 '벌써?'에 의문점을 찍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혀를 앞니에 대고 '씨~ 씨~'하는 발음이 꼭 그렇게 들린다. 이 소리는 65년을 더 써먹은 나만의 읊조림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저절로 나온다.


  손자가 영특하여 특히 말하는 것을 조심한다. 딸이나 동생에게도 긍정적인 어투로 말하고, 욕은 절대 사용불가로 불문율을 세웠다. 그리고 나의 전용어 "AE~ C"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손자가  "C~ C" 거리고, "AE~ C~"라고 발음 연습하는 듯 들렸다. 그래서 나 자신을 예의주시 하였다. 손자의 인지능력이 높아진 반면 딸 내외의 불만스러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빈도가 많아져서 혼잣말로  "AE~ C~"나 "하이고 참 내."를 되뇌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손자를 안거나 업은 순간에는 입을 때리고 싶었다. 


  문조가 생각이 났다. 부모에게 배운 대로 행하는 것이 자식이자 새끼다. 이것을 아는 내가 실소를 터트리면서도 손자의 빠른 학습을 어떻게 전환시켜야 하는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의 목표는 손자의 정서적 안정과 긍정적인 언행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랜 습관이 손자에게 바람 새는 소리를 가르친 꼴이 되었다. 이러니 어떠한 것을 보고 따라 할지 사뭇 긴장된다.


  말 못 하는 손자가 의도했던 것을 못하게 되면 떼를 쓰다가 포기한다. 그리고  "AE~ C~"가 나오니 내가 오금이 저렸다. "아~, A, B, C… 하는 거야?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셨지?"라고 궁여지책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나의 말을 들은 손자가 알파벳이 적힌 그림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검지로 가리켰다. 손자에게서 한숨은 돌렸건만, 나의 십팔번 문자가 언제 무의식 중에 튀어나올지 모른다.


  대승불교 법요집 첫 장은 천수경으로 시작된다. 천수경의 처음은 정구없진언(淨口業眞言)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풀이하면 '입을 깨끗이 하는 부처님의 참 말씀'이라는 뜻이 된다.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듣고 배워서 사용하는 말이 모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말하는 입을 깨끗이 한다, 우리 모두가 구업을 많이 짓고 있다는 결론이기도 하다. 우리는 부모에게서 가장 먼저 말을 배운다. 학교, 사회생활하면서 의미를 되새겨 보지도 않은 채 배우며 쓰고 있다. 


  욕은 악구(惡口)다. 네이버 사전에는 '남의 흠을 들추어 헐뜯거나 험상궂은 욕을 함. 또는 그 욕'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악구는 불교의 십악(十惡)의 하나에 속한다. 열 가지 악한 것 중 말하는 것이 4가지다. 거짓말, 여기저기 함부로 말을 하여 분란을 일으키는 말, 아무 쓸 데 없는 잡담, 입에 담기 힘든 말이나 저주의 뜻이 담긴 욕과 거친 말을 구업(口業)이라고 한다. 


  나는 십악업을 짓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나의 문자야 입에 담기 힘든 말도 아니며 또한 저주나 거친 말도 아니라고 변명을 앞세운다. 하지만 말은 나의 품격이다. 거친 말은 아무리 좋은 옷을 입었어도 나의 격이 떨어트린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통장에 악업만 쌓인다. 나처럼 손자가 배우듯 자식 역시 듣고 그대로 흉내를 낸다. 자식이, 손자가 듣고 배워서 사용한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자식의 자식이, 손자의 자식이 듣고 배우는 악업이 이어지므로 윤회한다는 말이 된다. 돈이 들지 않는 일이라고, 내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악업 쌓는 일을 계속하면 결코 다.


  나는 손자에게 품격 있는 할머니이고 싶다. 그렇게 존중받고 싶은 나다. 문조가 은쟁반에 옥 구슬 구르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쉼 없는 노력이 있었다. 문조의 암컷은 지극히 단순한 소리만 냈다. 문조는 오로지 암컷을 위해서 세레나데를 불렀다. 나의 좋지 않은 버릇을 손자가 바로 잡아주고 있다. 나는 십팔 번 노래를 중단했다. 불쑥 입에서 머리를 쳐들 때 빨리 알아차려야 할 텐데   



사진: 정혜. 

내가 있는 아파트에는 12월 10일쯤 백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71735293

작가의 이전글 후리 늘씬한 몸매를 위하여!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