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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Dec 19. 2020

따악 걸렸어~~ 제대로오

  "와사삭! 바사삭! 파삭!"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후루루~룩 슥, 삭! 계속 들려왔다. "파사삭! 와작! 바 사사삭!" 나의 청각을 유혹하는데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을 수 없었다. 식탁에서 손전화기 불빛이 비쳤다. 사위는 왕년의 TV 인기 대만 드라마 '포청천'을 삐딱하게 앉아서 그것도 허리를 구부린 채 보느라 내가 다가서는 줄도 몰랐다.  


  밤이면 내가 글을 쓰느라 컴퓨터를 마주 한다. 소리가 들리는 시각은 아마 10시 전후였을 것이다. 사위는 매일 밤 비슷한 시간 우유에 씨리얼을 말아서 먹었다. 사위가 저녁식사 설거지를 마치고 간식으로 먹는 소리는 가히 나의 식욕을 당기고도 남았다. 딸은 손자를 재우느라 이미 별천지로 여행을 갔고, 사위는 손전기에 의존하여 있는 광경을 종종 보았다. 어떤 때 코 고는 소리에 이끌려 찾아보면 소파에서 불편한 자세로 자고 있다.


  나는 우유를 먹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잘 먹히지 않았다. 천천히 씹으면서 먹어야 하는데 물 마시 듯 벌컥벌컥 마시고 나면 다음날까지 속이 더부룩하다. 그래서 어쩌다가 먹었는데, 골다공증 지수가 높아지면서 묘안이 없던 나였다. 사위 덕분에 우유 먹는 방법을 달리 했다. 씨리얼이 달달해서 요즘처럼 단 것이 당기는 때에 아주 적격이었다. 우유를 씹을 수 있었다.


  내가 우유를 먹어야 하는 이유를 사위에게 설명했다. 사위는 그 이후로 씨리얼 종류를 다양하게 사다 날랐다. 사위의 구입 방법은 아파트 옆에 있는 마트에서 세일 가격으로 1+1을 선호했다. 또 인터넷으로 직접 구매하기도 하여 내가 골고루 맛을 보았다. 이 친구는 우유나 씨리얼을 먹어서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내면의 욕구를 뿌리치지 못했다. 내 딸이 간섭과 잔소리를 포기하는 것 같았다.


  나도 먹지 말라고 몇 번 넌지시 말했다. 하지만 '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밤마다 바삭 거리는 소리가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지금 당장 나와서 야식으로 잡수시라고. 저녁 수저 놓으면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는 나다. 그러나 사위의 씨리얼 씹어대는 소리는 참지 못할 지경이다. 그래서 한 번은 눈의 피로도 풀 겸 사위와 마주 앉아 먹어보았다. 사위는 동조자가 생겨서 좋은 지 더 후루루룩 거리며 입으로 흡입했다. 역시 나는 별로였다.


  우유가 우리 몸에 좋은 것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우유가 몸에 맞지 않는 사람, 특히 어릴 적 내 아들은 감기가 떨어지지 않았다. 어디서 유제품을 먹이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끊어봤더니 효과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한참을 먹이지 않았다. 지금이야 먹지만. 사위에게도 권했건만 중독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에 만성 비염을 달고 있었고, 감기도 아주 친한 친구였다. 그저 이쁘기만 내 사위다.


  사위가 며칠 전부터 밥을 먹지 못했다. 속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사위는 속을 비우고 싶어 하여서 몇 끼 굶어도 그냥 넘어갔다. 딸이 소화제를 대령하는데도 골 골 거리며 배를 쥐고 다녔다. 나는 속으로 '밤마다 씨리얼 물 때 알아봤다, 이 짜슥아.'라며 고소를 금치 못했다. 마누라가 약은 챙겨주면서 긴 말 짧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장모라고 더 나설 수 없는 입장이라 "약 먹으며 위를 편안하게 하라."고 점잖게 권했다.


  사위가 밥을 먹지 못하던 전전날이다. 안 보이던 과자 봉지가 두 개 보였다. 지퍼를 열어서 맛을 보니 아몬드에 단맛, 청양고추 맛 등을 가미하여 제법 먹을 만했다. 이틑 날 또 두 봉지가 보여 맛을 보니 아몬드의 다른 맛이었다. 현관에는 뜯지 않은 것도 두 봉지가 보이고. 포청천을 보면서 아몬드 과자를 먹는 것으로 짐작했다. 허리도 펴지 않은 채 다리를 꼬고 앉아서 먹고는 그대로 잠을 자러 들어갔을 것이다.


  오래전 내노라하는 스님을 뵌 적 있다. 이 분이 내방자들에게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게 하면서 "대장(大腸)님, 고맙습니다."를 시작하여 오장육부 이름을 모두 부르며 소화 잘 시켜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따라 하라는 것이다. 나도 두 말 못 하고 웃으며 따라 했다는 이야기를 사위에게 해주었다. 그리고 손을 따뜻하게 하여서 시계방향으로 문지르라고 했다. 사위는 웃기만 할 뿐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내가 죽 대신 누룽지를 끓여주었다. 사위는 적은 양이었지만 위를 편케 한다며 남겼다. 남편이 아침마다 당신이 만들어서 먹는 건강식품을 사위에게 먹이고 싶어 들먹거렸지만, 사위가 위에서 받아들이지 않느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위는 오로지 누룽지에 의지했다. 내 사위가 "장모님, 아몬드 저 과자가 디기 마싯는 기라예. 그래가 포청천 보민서 다 무떳니 그기 탈이 났는 갑심더~" 계면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는 "그러케 마시떠나? 하기는 나도 무보이 마시떠라."라고만 할 수밖에 없었다.


  식탐은 말 그대로 욕심이다. 먹고 싶은 것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욕구다. 식탐처럼 다스리기 어려운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화를 품고 있으면 영락없이 소화제를 먹어야 했다. 내가 소화제 사지 않는 것도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지금도 위염으로 소화되는 시간이 더디다. 나는 내 몸이 위장을 보호하며 소식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마음이 편안하면 소화가 잘 된다. 그래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한다. 또 매사 바르게 보려고 노력 중이다. 바르게 보는 눈을 가지면 생각 또한 올바르다. 올바른 사유는 나를 평정하도록 이끈다. 그러면 먹은 것이 소화되면서 금방 배가 고파진다. 모든 것은 연기적이어서 인연 따라 일어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사위가 배탈이 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내가  사위더러 위장에서 음식 조절 잘하라고 신호 보낸 것이라며 알려 주어야겠다. 남편은 사위가 나의 말을 알아들을 나이도 아니고,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라며 말하지 말라고 했다. 못 알아듣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사위의 몫이다. 때가 그런 시절이래도 들어 두어야 훗날 생각이라도 날 것 아닌가. 하루속히 사위의 위가 안정되었으면 좋겠다.


  사위가 먹었던 과자는 요즘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과자라고 한다. 사위 덕분에 새로운 과자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생각이 짧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사위는 아내를 아기에게 뺏긴 채 갈 곳이 없었다고 유추됐다. 사위의 서재는 내가 밤마다 들어앉아서 글을 쓴다고 점령하고 있었으니…  그래서 만만한 씨리얼을 먹으며 포청천에 꽂혀 있었다고 사려했다.


  "사위야, 장모가 빨리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하네. 그런데 이 사람아! 내가 독서다 글쓰기에, 기타 배우기, 다이어트 등 여러 가지 모임을 소개하지 않던가. 그런데 자네가 배울 뜻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굳이 장모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마음 놓겠네. 그런 줄만 알게나." 우리 사위의 이런 점도 귀여워 죽겠어 


 식탁에 '마늘빵 맛 아몬드?' 한참 보이지 않던 과자  봉지가  보였다. "자네 저거 또 샀나?" 놀라서 큰소리로 묻자 사위가 히히 거리면서 "차 안에 하나 잇어가 가왔는데예~" 자라보고 놀란 가슴 가마솥 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내가 그 짝 났다. 우리 철부지 사위를 어떻게 다루어야 빨리 철이 들랑고




사진: 정 혜

위 사진은 저녁 5시 59분, 아래는 5시 41분에 찍은 사진이다. 18분 동안 초사흘 달이 선명해지면서 해는 완전히 져버렸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78868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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