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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Feb 09. 2021

나도 똑바로 보고 있거등!

  아들이 커 갈수록 화장실 냄새가 고약스러워졌다. 매일 청소를 해도 없앨 수 없었다. 이모저모 사유를 하던 중 강아지가 돌아다니다 전신주나 길 모퉁이, 화단 한 구석에 한 다리를 버쩍 올리고 오줌을 갈기는 것이 연상되었다. 동물들은 "여기, 나의 흔적을 남기고 간다. 나랑 나중에 따로 만나자" 무언의 신호가 생각났다. '이곳은 나의 구역이야. 함부로 까불지 마!' 아들이 한참 이럴 때라 코를 찡그리고 막을 정도였다. 


  아들의 흔적은 남편보다 심한 것 같았다. 처음에는 양변기 겨냥 잘해서 볼 일을 보라고 점잖게 말했다

. 그랬는데도 내 콧구멍 두 개를 손가락으로 막고 구시렁거리게 만들었다. 또다시 아들에게 제발 똑바로 싸라고 애원하다시피 했다. 그것도 아니었다. 도무지 화장실 문을 열기도 거북하여서 아주 괴로웠다. 급기야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아들과 마주칠 적마다 잔소리를 해댔다. "아, 나도 똑바로 보고 있거등!" 


  궁리 끝에 아들한테 앉으라고 강요했다. 수상쩍은 듯하면 아들부터 나무랐다. 아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 잘하고 있으니 잔소리 그만하라고 큰소리치며 인상을 마구 썼다. 날마다 내 입만 아파서 고무장갑을 옆에 준비해 두었다가 수시로 닦아내기도. 그러면서 냄새가 좀 잡히는 것 같아 두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이 대학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게 되었다. 나의 후각이 둔해졌다.


  남편이 딸의 아파트로 어느 날 불시에 들이닥쳤다. 그날 이후 다시 나의 예민한 후각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화장실의 원인 모를 역한 냄새가 은근히 신경 쓰였다. 사위는 앉아서 해결하는 눈치였다. 아들이 없으니 범인은 틀림없는 남편이다. 이 말, 저 소리 듣기 싫어하는 남편에게 입도 벙긋하지 않는 사위를 들먹이며 앉아서 볼일을 보라고 했다. 결벽증이 있는 사위가 당신의 딸을 들볶는다면서.


  남편은 한 번에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다. 아내가 말을 하거나 말거나 자기 고집대로 서서, 그것도 강약을 조절하여 세게 그리고 약하게. 다음은 샤워기로 변기에 물을 퍼붓고, 창문의 물기를 긁어내는 도구로 바닥의 물을 훑었다. 슬리퍼에 물기를 남긴 채 문을 닫고 의기양양하게 나왔다. 대낮에 볼일 보러 들어가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런다고 지린내가 없어지면 내가 이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집에서 발을 씻고 슬리퍼를 세워두면, 남편은 어김없이 "뒷사람이 어떻게 신으라고 신발에 물을 묻혀 놔!" 양말 벗고 조용히 들어가도 될 일, 꼭 듣기 싫게 표현하며 한바탕 꼰대 티를 냈다. 그런 양반이 아파트에서는 입장이 바뀌었다. 내가 쓴소리를 해야 할 상황이라서 더 괴롭다. 무슨 말을 하면 그러냐고 수긍하면 얼마나 이쁠꼬. '남편은 하늘'이라는 것을 앞세운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더럽다는 이유로, 치우기 싫어서 그저 돌아갈 따름이지.


  몇 날 며칠을 사위만 팔았다. 사위가 청소하면서 우리의 딸에게 집을 지저분하게 관리한다며 마구마구 몰아붙인다고 과대포장까지 했다. 그리고 사위는 마음이 여려 저 스스로 견디지 못해 생 몸살을 앓으면, 딸이 사위를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고 갖은 핑계를 둘러댔다. 남편이 겨우 앉는 것처럼 감이 잡혔다. 서서 하던 동작을 바지 내리고 앉는 것은 잠시 불편해도 뒷 손댈 것 없는 장점이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추론에 불과하다. 남편이 허리띠 푸는 것은 남자로서의 체면을 구기는 행위인 것은 분명했다.


  고양이 일가가 내 집 손바닥만 한 화단에 살았던 적이 있다. 어미가 세 마리 새끼들과 화단을 놀이터로 삼았다. 이 녀석들은 크고 작은 것을 항상 땅을 파헤치고 묻었다. 뜨락에서 화단까지 엎어지면 코가 닿는 간격이라 그해 장마철에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다행히 길냥이 새끼들이 모두 어미 먼저 이승을 떠나버려서 더 오지 않을 때였다. 그랬지만 일 년 가까이 유지되었다. 그 꼬롬한 내 가 바닥에서 올라오면 "엄마야~ 이거 사람 죽이네 ~" 내가 검지와 중지로 콧구멍을 막지 않으면 못 배겨냈으니까.


  아들 없는 아파트에서 남편이 예쁜 짓을 하였다. 내가 워낙 싫어하니까 오줌 소리는 들리지 않고 물을 훑어내는 도구 소리가 오히려 컸다. 남편이 나오면 고무장갑을 끼고 씻어냈다. 사위가 드디어 "장인어른은 안자서 안 봅니꺼?" 나는 부끄러웠지만 "그래서 내가 자주 변기를 씻고 청소를 한다네"  사실 남자들만 사용하는 화장실의 냄새는 오줌이 튕겨 나가기도 하지만, 술을 먹은 사람이 다녀가면 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서서 오줌을 눈다는 것은 남자만 가능하다. 내가 그것을 남편에게 하지 말라고 눈총을 주었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남편만 앉아서 싸는 것이 아닌데도 실행이 어렵기만 했다. 남편은 자기가 옳다고

여기면 여간해서 바꾸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 시쳇말로 '간 큰 남자'가 내 남편이다. 이 간 큰 남편이 한순간에 바뀌지 않아서 미간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남편은 내가 없는 집에서 마음대로 세기를 조절하며 물을 묻혀 둘 것이다. 


  지린내를 느끼는 것은 차원 높은 인식의 깨어있는 작용은 아닐 터. 나의 가장 기본적인 감각이 본능에 충실하고 있다는 뜻 이리라. 어쩌면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은 나의 눈으로 본 것을 의식(意識)이 슬쩍 못 본 척하는 것일지도. 그런 나의 본능을 통제하려니 남편의 대소사까지 간여하는 원치 않는 일을 하여야만 했다. 둘만의 구역이 아니라 더 그러하였다. 급기야 퇴근한 딸이 손을 씻으러 들어가자마자 "엄마, 왜 이렇게 찌린내가 나?" 목소리도 높았다. 남편이 아파트를 다녀간 날이었다.



사진: 정 혜

매화, 대구는 2020년 12월 10일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23740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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