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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Feb 19. 2021

봄을 들이다

  연분홍의 매향(梅香)이 은은하다. 세 번째로 모셔온 매실 가지들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겹으로 피는 꽃이라는 걸 짐작했다. 활짝 핀 홍매를 사진으로 보니 확실히 겹꽃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한 화장으로 뿜어내는 화장품 냄새나 향수를 많이 뿌려서 코를 찡그리게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잘 가지도 않는 백화점의 1층 화장품 매대가 모여있는 곳은 웬만하면 피하려고 한다. 매향처럼 그윽한 향내를 좋아한다.


  사흘 전 산책하러 나섰다가 전지한 나무 중 매실 가지가 또 보였다. 분홍색 봉오리가 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 같아서 나무를 자르는 분에게 전지가위를 빌렸다. 유리병에 꽂자마자 마치 '살았다'는 듯 동글동글한 봉오리들이 생의 활동을 계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젯밤 한 봉오리가 벌어지면서 노란 수술이 보일락 말락 했다. 여기저기서 진통이 시작되고 있었다. 파상적으로 배가 아픈 것 같았다. 그 트임에도 향기가 느껴졌다.   


  들숨이 싱그럽다. 글을 쓰면서  문득 들이쉬는 호흡으로 새벽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글이 한참 진행될 땐 오로지 글과 내가 하나가 된다. 그러나 눈을 들어서 유리병에 꽂힌 매화를 보면 눈도 마음도 흐뭇하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더 깊숙이 향기를 내 안으로 스며들게 한다. 다시 눈은 컴퓨터 자판으로 옮겨서 글에 집중한다. 향이 느껴지지 않는 듯하여 길게 호흡을 해본다.


  옷을 입지 않으려는 손자를 겨우 입혀서 유모차에 태운다. 그리고 매화가 있는 곳으로 산책을 나선다. 나는 매화가 보고 싶어서 손자를 데리고 나온다. 손자는 밖으로 나와서 나의 의중을 알아차린 듯 복잡한 세상이 마냥 신기한 모양이다. 매화가 피어있는 길로 유모차를 밀면 나의 매화 산책이 시작된다. 아파트 단지에는 매실나무가 의외로 많았다. 또한 길 건너 공원 한쪽에는 매실나무를 서로 마주 보게 심어서 내가 매화터널을 지나가는 산책이 되기도 하다.


  매화 사진은 단지 경계를 벗어나면서부터다. 손자가 몇 번을 유모차 안에서 몸을 뻗대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럴 적마다 "그래, 그래~ 금방 갈게~" 입으로는 가자면서 "손자야, 할머니의 망중한을 잠시마안~"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 할머니를 체념하였는 것 같다. 야트막하게 핀 매화가 있으면 유모차를 꽃 가까이 대서 향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나는 콧구멍을 매화에 바짝 대고서 "으~으~음 역시!" 손자가 매화의 매력을 알 수 있도록 크게 감탄한다. 손자가 무심히 나를 바라보다 살그머니 검지를 펼쳐 꽃잎에 조심스레 대본다.   



  첫 번째 전지 되어 방치된 나뭇가지들을 봤다. 무참히 인간의 욕심으로 잘려나간 것이 속상했다. 나는 매실 가지를 최대한 많이 주워 모으며 '매실나무에게 짧지만 생명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라고 읊조렸다. "우리 집에서 맺지 못할 인연이지만 꽃으로나마 생을 빛내보자"라면서 매실나무에게 위로를 했다. 매실 가지에게 생의 의미를 깨닫도록 하여서 꽃을 피우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요, 역시 지척에서 매화를 있는 계기가 되어 발걸음을 빨리 했다.  


  전지한 매실 가지를 욕심껏 유모차에 실었다. 매실 가지는 현관에 두고 손자와 손부터 씻고 화병과 유리병을 챙겼다. 전지가위가 없어서 대충 구도만 맞추어서 꽂아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나는 2021년 1월

22일 내 방으로 봄을 들이고 있었다. 이미 봄은 내 곁에 있었건만, 나는 방으로 매화 봉오리가 달린 매실 가지를 모시면서 봄이 온 것을 확인했다. 


  23일은 딸의 생일이다. 작은 애가 수원에서 내려오면 매향을 생일선물로 주고 싶었다. 딸이 서재를 열었을 매향이 반기면서 생일을 축하해 주기를 기대했다. 추운 곳에서 따뜻한 방으로 거처를 옮

매화 봉오리들은 시간이 다를 정도로 몸을 불려갔다. 바닥에 떨어진 꽃봉오리들을 모아서 작고 넙적한 그릇에 물을 부어 꽃 피우기를 격려했다. 생명의 신비로운 정경을 바라보는 것은 손자를 키우는 것과 다를 없었다. 나는 서재 방문을 닫았다.


  추운 곳에서 손자와 씨름하지 않는 것만도 얼마나 좋은지. 잘디 잔 봉오리들이 생기를 찾으며 생의 활동을 이어갔다. 우후죽순처럼 봉오리들이 꽃을 피울 준비를 서둘렀다. 꽃가지들은 어쩌면 길지 못한 생애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마음이 아려왔다. 나도 매실이 맺히려면 곤충들의 수정 작업을 도와서 착상이 되어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계절과 상황이 아니다. 내가 붓으로 인공수정을 할 수도 있으나 완전한 매실로

키울 수는 없다. 그래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이건만 또 꽃이 필락말락한 봉오리에 손전화기를 갖다 댔다.


  손자가 매화를 보고 손가락질을 했다. 나의 생일 선물에 손자 어미도 좋아라 웃음꽃이 활짝 폈다. 작은 딸이 방문을 열어보고 향기에 반해서, 먼저 모셔온 봄을 맞이하면서 감동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내 딸은 정말로 환희롭게 매화를 대했다. 그런 딸을 보면서 물이 오른 나뭇가지들은 땅에 꽂거나 물에 담그면 뿌리를 내리는 사실이 상기되었다. 나는 행동이 용이하게 손자를 업고 매실 가지가 떨어졌던 곳으로 가봤다. 이미 치워지고 없는 깨끗한 화단에서 바닥을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메마른 가지들을 한 주먹 모았다

. 수원으로 가는 딸에게 매실 가지를 신문지에 말아서 보냈다. 그곳에서도 꽃이 피었고, 방 안 가득히 향기를 채웠다며 카톡을 보냈다. "엄마가 매화의 매력에 빠지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라고.  


  이  봄은 무릇 생명을 키우고 꽃 피우는 계절이다. 그런데 나만 보려고 방 안에 들인 꽃보다 공해에 찌들 일 망정 있는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은 아파트 단지에서 활짝 개인 날,

아래 사진은 하얀 자기 그릇에 핀 백매와 홍매, 녹악매 봉오리.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248707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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