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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Feb 25. 2021

두 발끝을 들어서 손을 내밀어도

봄을 들이다 2

  2020년에는 매화를 1월과 12월에 두 번이나 봤다. 양력 정월에는 대구 수성구 범어 4거리에 피어 있는

흑매를, 12월에는 현재 내가 사는 동구 율하동 아파트 단지 밖에서 백매를 마주하며 경이로운 탄성을 내질렀다. 일 년에 두 번씩이나! 딸의 아파트는 대 단지다. 단지를 가르는 큰길에는 매실나무가 많았다. 딸이

지난해 3월 이곳으로 이사하여서 늦게 피어난 매화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달력이 빨리 넘어가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12월부터 손자와 산책을 나가노라면 화단에 심어진 특히 매실 가지를 눈여겨 관찰했다. 매실 가지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유독 봉오리가 봉긋봉긋한 한 나무를 눈여겨봤다. 12월 10일에 몇 송이 개화하여 나의 두 눈을 크게 뜨도록 만들었다. 매화는 나의 모델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사진을 찍기는 맹랑한 높이였다. 나는 매화를 향해 두 발끝을 최대한 들어서 손을 내밀어보았지만 역부족. 급기야 나는 지나가면서 나의 행위에 관심을 기울이는 어느 여성에게 매실 가지를 붙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가지를 잡아서 우선 코를 들이대고 흠향부터 했다. 그녀에게도 향기를 음미해보랬더니 "이야~~ 참말로 냄새 존네예~" 그러면서 한파가 몰려왔다. 올록볼록하던 꽃봉오리와 매화가 얼어붙어버렸다. 강추위로 맥을 못 추는 매화를 보며 발걸음조차 뜸해지면서 내 마음이 아팠다. 


  나는 매화 향기는 '흠향한다'라고 표현한다. '흠'은 부사로써 "냄새를 맡으려고 콧숨을 들이쉬는 소리"다고 네이버 사전은 알려주었다. 향은 향기 향(香)을 써서 매향의 품격을 높였다. 매향은 호흡을 깊이 들이쉬면서 향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으며, 매화의 향기만큼은 '향기를 맡는다' 또는 '냄새를 느낀다'는 둥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나만의 주관이지만, 매화는 분명히 격이 다른 향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21년 1월 22일.

  이날 오전 손자와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에서 각종 나뭇가지를 전지(剪枝)하여 바닥에 방치해 놓은 것이 보였다. 오후 3시 40분쯤에는 단지 내에서 매실 가지를 보며 무심히 지나갈 수 없었다. 유모차를 고정시키고, 가지를 손으로 억지로 분질르거나 그대로 수북이 집어 들어서 회양목 위에 올려두고 볼일을 보러 갔다. 겨울 해는 길이가 짧고, 또 오후에는 높은 건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기온이 하강하였다. 그런 매실 가지가 마음이 쓰여서 두었던 자리로 급히 돌아왔다. 


  그리고 떨어져 있는 꽃망울들을 주워서 유모차 덮개에 놓고 가지까지 올렸다. 오른손으로 유모차를 밀고, 왼손은 가지를 누른 채 두근거리는 설렘까지 실고 재빨리 집으로 왔다. 매실 가지는 현관에 놓아두고 먼저 손자와 손부터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런 뒤 매실 가지를 정리하여 화병과 유리병에 억지로 욱여넣었다. 꽃봉오리가 추운 곳에서 따뜻한 방 안으로 들여놓으니 잔뜩 오므렸던 꽃망울이 열렸다. 서재로 모신 화병에는 백매의 꽃봉오리가 앞다투어 벌어졌다.


  매향이 느껴졌다. 이 엄동설한에 매화라니. 내 가슴은 감동의 물결이 끊임없이 일렁거렸다. 손자는 뒷전에 두고 매화 곁에만 있었으면 좋겠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이 많았고 또 매섭게 차가웠다. 손자가 추울까 봐 산책하러 나갔다가 오래 걷지 못하고 귀가해야만 했다. 매화는 사진이 더 예쁘다. 또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다. 방 안에서 손자 눈치를 봐가며 틈틈이 사진을 찍었다. 주운 꽃봉오리들도 물에 띄워놓았더니 하나씩 꽃잎을 벌리며 향을 발산했다. 손자는 함부로 매화에 손을 대지 않는다. 내가 코만 들이대어 흠향하고 사진만 찍어서 그런 것 같다. 

백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흑매를 알았다. 그다음 해 3월 하순 경 전남 송광사로 작은 딸과 흑매를 확인하려여행을 떠났다. 꽃은 보지 못하고 진분홍 매화 꽃봉오리만 눈에 담았다. 송광사를 다녀온 이후 대구 시내에도 흑매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부터는 외지로 거의 나서지 않고 있다. 송나라 때 어느 비구니처럼 내 집 마당에서 끊임없이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매화가 피는 시기를 해마다 관찰하였다. 매화는 음력설 전부터 꽃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대구는 서울의 8 학군 지역이 수성구이다. 수성구의 중앙통 번잡한 대로 범어 4거리 사방에서 피는 것을 찾아냈다. 

범어 4거리에는 '고결함'의 대명사인 백매뿐만 아니라 고혹적인 색깔의 흑매와 '청초함'의 대표주자로 손꼽을 수 있는 녹악매(綠萼梅)까지 가까이서 포진하고 있었다. 낮은 가지에서 꽃을 피운 매화는 사진 찍기 적합했으며, 여전한 나의 애인이다. 눈으로 보고, 코로 흠향하며 꽃의 한순간을 남기려 수없이 반복했다. 전혀 질리지 않았다. 손이 시려서 떨어져 나갈 것 같아도 그저 좋았다. 


  

  붉게 핀 장미꽃 색깔이 진하여서 흑장미라고 부른다. 그렇듯 홍매의 빛깔이 짙어서 흑매(黑梅)라는 별칭이 있다. 나는 흑매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그리고 녹악매(綠萼梅)는 꽃잎을 감싸고 있는 꽃받침이 연한 풀빛이어서 푸를 녹(綠), 꽃받침 악((萼), 매화 매(梅)를 별호로 하는 매실 꽃이 있다는 것을  체득했다. 그럼 홍매(紅梅)는 어떤 색깔을 지녔길래 홍매라는 것인가. 나는 길을 걷다가도 매향이 느껴지면 열 일을 제쳐두고 발밤발밤 더듬어서 찾아갔다. 그렇게 경북대학교 화단에서 만난 홍매는 고고(高古)하였다. 이 홍매가 21년 2월 아파트 단지 밖에 다소곳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녹악매는 꽃받침이 연한 녹색이다. 백매의 꽃받침은 거의 홍갈색이나 갈색이다.


  홍매는 분홍 매화였다. 꽃받침은 홍갈색이었다. 단아한 자태에 매료되어 발길을 쉽게 옮기지 못했다. 홍매의 개체수가 백매보다 훨씬 적었다.   


   올해는 매화와 망중한을 즐길 여가가 지극히 짧아졌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서 매일, 그것도 삼사월까지 매화를 볼 수 있다. 내가 있는 아파트 주위와 길 건너 인근 공원에 핀 매화들이 나의 애정 어린 눈길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가. 매화를 내 방에 모셔두고도 바깥으로 나오면, 나를 기다리는 매화의 매력에 금세 빠져들고 만다. "손자야, 미안하다. 잠시 흠향하고 사진 찍을 수 있게 이해해다오." 잠시는 10분 좋고 20분도 금방이다. 흡족한 사진이 찍혀야 손자의 유모차도 움직인다. 그러나 할머니의 마음은 무척 바쁘다.


  그런데 일주일 전 전지해 논 매실 가지들을 보니 마음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 없었다. 관리실 직원이 서너 주에 걸쳐서 넓은 아파트 단지 내 많은 나무들을 혼자 전지 하였다. 그 작업이 내게는 행운이었다. 잠깐이라도 내가 주저하는 이유는 사위가 지저분한 것을 싫어하여서 그렇다. 그러나 사위 눈치 볼 계제가 아니었다. 배짱도 두둑하게 두 손으로 잔뜩 가지들을 집었다. 비록 잘린 가지들이지만 정중하게 내 집으로 모셨다. 자잘한 봉오리가 물을 먹으면서 올록볼록 커가는 장면이 나를 흥분시켰다. 세 번째로 모시는 매실 가지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돌보고 있어서 잠시 여유를 부려봤다.


  하! 겹으로 피는 홍매화를 들이다니. 놀이터 옆 화단의 잘린 매실나무에는 겨우 몇 송이 개화한 상태다. 그것도 높은 곳에 피어서 시어 빠진 포도일 뿐이다. 그래서 맹숭맹숭 그곳을 지나간다. 나는 두 달간 매화와 사랑에 빠져서 우아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화 사진을 찍고 돌아서서 또 찍어도 새롭기만 하다. 향도 꽃도. 서재에서 보는 것과 내 방에서 피는 것이 같은 꽃이건만 남다르다. 그래서 손자가 자는 새벽에 일어나서 마음 놓고 망중한을 즐긴다. 일명 밤도깨비가 되어서.


 

  매화는 홑꽃잎이 우아했다. 조신한 듯 단아하였다. 겹으로 피는 홍매는 풍만한 매력은 있었으나 단아한 멋은 없었다. 조선시대 배꽃을 바라보며 "다정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하는 이조년 님의 '이화에 월백하고'라는 시조가 종종 떠오른다. 매화를 보며 이 시조가 떠오르는 이유는 매화를 향한 내 마음이  "다정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다.  뭐니 뭐니 해도 매화와 어울리는 시조는


  진일심춘불견춘(盡日尋春不見春): 하루 종일 봄을 찾아 헤맸건만 봄은 보지 못하고

  망혜편답롱두운(芒鞋遍梅花搏踏壟頭雲): 짚신이 다 헤지도록 언덕 위 구름만 따라다녔네

  귀래소연매화취(歸來笑撚梅花臭):지쳐 돌아오니 뜰에는 매화가 피어서 향기 진동하고

  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 봄은 여기 매화가지에 이미 무르익어 있는 것을


송나라 때 어느 비구니의 오도송(悟道頌)이라고 한다.  그리고 매화 시의 압권은 이 대목일 것이다. 황벽선사의 게송 중에서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番寒徹骨): 한 번 뼛속을 뚫는 듯한 추위를 겪지 않고서야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어찌 매향이 코 끝을 두드리는 맛을 얻을 수 있겠는가.


  행복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내부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시조다. 깨우침은 바깥 대상에게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온(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코로 냄새를 느끼고, 혀로 맛을 음미하며, 몸으로 행동을 하며,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이 나다.)인 나의 허물들을 알아차려서 하나씩 새로워지는 것이다. 오늘도 살을 에이 듯 부는 바람을 맞으며 공원 한켠의 매화터널을 손자와 걸었다. 유모차를 밀면서 문득 옛 선사께서 뼛속을 뚫는 듯한 추위를 겪으며 피어난 매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저 얻는 것이 아님을 배웠다.


  매화가 혹한에서 피어나니 과연 매실이 열릴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헛걱정이었다. 기온이 상승하자 벌들이 모여들었다. 꽃이 피면 벌 나비가 날아오는 자연 이치에 머리가 숙여졌다. 




사진: 정 혜


대문사진은 2020년 12월 10일에 찍은 백매.

아래 사진은 홍매가 맹추위를 떨치던 날 강한 바람에 날리면서도 품위를 유지하려는 것 같았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255670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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