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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Mar 19. 2021

핥지마아, 징그러우니까

   나이가 들면 관심이 없던 것에도 생기나 보다. 특히 동물에 대해서 그렇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릴 적 내 어머니는 동물과 인연이 없는지 오래 함께 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래서 나는 동물을 아예 키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랬기도 했지만, 개가 근접하여 꼬리 치면서 혀로 아무 데나 핥아대는 것이 왠지 싫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런데 요즘 손자와 산책을 나가면 애완견을 많이 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개를 보고 이쁘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저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 만 봤다. 그랬던 내가 아파트 주변으로 손자를 데리고 다니면서부터 의도적으로 관심을 나타냈다. 그리고 예쁘다는 소리를 자주 해서 그런지 개들이 이쁘게 보였다. 내가 손자로 인해서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 혼자 떠난 여행지에서 '해탈이'라는 진돗개를 만났다. 지인이 겨울 한밤 중 산돼지 일가가 음식 찌꺼기를 먹으러 왔다고 말했다. 진돗개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해탈이는 온 산중이 떠나가도록 으르렁대며 격렬하게 싸웠다고. 정말로 산돼지와 피 터지게 싸운 티가 났으며 다리까지 절고 다녔다. 지인은 산돼지에게 물린 상처가 겨우 아물었다면서 마음 아파했다. 며칠 전 '해탈이 아들'도

산돼지와 죽기 살기로 싸우다 허벅지가 물렸고, 발목뼈를 다쳤는지 붕대를 감고 있었다. 지인이 소독약과 연고를 들고 가서 처치해주는 것을 보며 실감할 수 있었다. 


  지인은 스스럼없이 진돗개를 어루만졌다. 발목 관절을 묶은 붕대를 가위로 잘라내서 약을 발라주며 "머한다꼬 등치도 자근기 산돼지한테 달라들어가 이 고생이고~ 마이 아프제? 담부터는 산돼지가 와도 모린 체 해라. 알겠제?" 개의 본성이 그러하거늘 사람처럼 본 체 만 체 할 수 있나. 아무튼 해탈이 아들은 다 나을 때까지 철망을 쳐서 격리한다고 했다. 새벽이면 산골짜기의 기온이 매우 낮아져서 많이 추울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 곁에 있던 해탈이가 혀를 내밀어 나를 핥으려고 하여서 "나는 니가 핥는 것을 싫어해, 하지 마라~" 완곡히 부탁했다.

  지인은 해탈이가 공양간 주방 문 앞에 서 있어도 먹이를 주지 않았다. 영하의 날씨에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그리운지 가만히 섰다가 돌아갔다. 그 모습이 실내에서 창 너머로 얼마나 쓸쓸해 보이는지 공연히 짠해졌다. '전생에 어떤 악연을 지었길래 현생에서 개의 몸으로 태어났을까' 하는 연민심이 생겼다. 해탈이의 나이가 몇 살 정도인지 지인에게 물었다. 인간으로 치면 80세를 넘겼다나. 순간 아무리 짐승이지만 반말을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해탈 님"이라고 당장 호칭을 바꿨다. "해탈 님이 그렇게 연세가 많은 줄 몰랐어요. 지금부터 해탈 님이라고 부를게요"  해탈이는 밥을 주는 지인을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나의 삼 남매가 초등학교 다닐 때다. 우리는 한 동(棟)에 두 집이 사는 사단 참모 관사에서 살았다. 옆집에는 아들만 둘 있었고, '방글이'라는 자그맣고 하얀 개 한 마리를 키웠다. 방글이의 외모는 먼 발치에서 봐도 상당히 예뻤다. 모든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방글이를 좋아했고, 주인은 방 안에서 데리고 뒹굴며 먹이고 씻겼다. 나는 그 점이 아주 못마땅했다. 내 아들도 이뻐해서 개를 키우자고 조를 정도였다. 그들이 아파트가 있는 부대로 전근을 가면서 내가 그 개를 키우겠다고 자원했다. 그리고 남편이 진급하여서 우리도 대구를 떠나 충주로 가게 되었다. 

  나와 아들이 충주로 가는 이사 트럭에 탔다. 그리고 트럭 뒤 이삿짐 실은 곳에 방글이도 태웠다. 가는 도중 수시로 "방글아, 우리는 앞에 있어." 뒤에서 들리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안심시켰다. 충주 관사는 마당이 넓었고 훌륭한 개 집도 있었다. 트럭에서 내린 방글이는 관사가 있는 동네를 한 바퀴 시찰하고 들어왔다. 이사한 그 날부터 내가 방글이에게 밥을 주게 되었다. 나는 방글이가 좋았지만 핥으려고 하여 아주 질겁을 했다. "미안하다, 니가 핥으면 나는 징그러워서 견딜 수 없어. 그러지 말아라." 방글이의 심중은 헤아리지 못하고 냉정히 잘랐다. 내가 궁여지책으로 고무장갑을 끼고 몸도 쓰다듬어 주었다. 방글이가  손을 핥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랬다. 그러면서 냅다 염불을 해주었다. 또 밥을 집 앞에다 놔 주고도 방글이 들어라고 고성(高聲) 염불을 마치면 "좋은 몸 받고 좋은 곳에 태어나세요."라고 축원까지 했다. 개도 주인이 곁을 내어주지 않자 뭔가 낌새를 차리는 것 같았다. 

    

  방글이가 생리를 했다. 난생 처음 알게 된 짐승의 초경이 생소했다. 그리고 새끼를 한 마리 낳았다. 새끼는 죽어 있었다. 방글이는 하염없이 새끼를 핥았다. 미역국을 끓여서 갖다 주어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내가 봐도 미물이지만 애 끓는 심정이 한눈에 보였다. 방글이의 속 타는 심정도 모르는 사람처럼 나는 속으로 '그동안 염불한 결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방글이가 마실 나간 사이에 새끼를 화단에 묻었다. 방글이는 묻힌 새끼를 찾아내어 다시 핥아주었다. 자식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집착했다. 나는 깐 마늘 껍질을 구덩이 밑바닥에 조금 깔고 그 위에 시체를 놓은 다음 마늘 껍질을 얹고 흙을 덮었다. 방글이는 새끼를 미친 듯 찾았고 집 안 곳곳을 서성거렸다. 방글이는 새끼를 잃은 후 가슴이 허 한 듯했고, 피부병을 앓았다. 약국에서 연고를 사다가 고무장갑을 끼고 발라주면서 방글이의 몸을 살폈다. 포동포동하던 몸이 비쩍 말라 있었다. '비루먹은 강아지'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속담 그대로였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야윈 데다가 피부병으로 털이 빠졌다. 방글이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피부병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나로서는 방글이의 텅 빈 가슴을 메워줄 수 없었다.

  가끔 남편 부대 주임상사가 관사를 다녀갔다. 그는 방글이를 보자마자 사랑해주었다. 방글이도 정이 그립고 메말랐던지라 펄쩍펄쩍 들뛰면서 마음껏 핥으며 좋아하였다. 받아 주지 못해 늘 미안했던 내 마음도 흡족했다. 남편이 대구로 발령이 나면서 방글이를 키우겠다는 반가운 말씀에 흔쾌히 승낙했다. 그는 우리가 대구로 이사한 후 얼마 있지 않아서 방글이가 죽었다고 전화를 했다. 나는 방글이가 부디 인간의 몸으로 사랑 받는 가정에서 태어나기를 발원했다. 나도 본래 주인에게 방글이의 사실을 알려주었더니 대답하는 소리가 울먹이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방글이를 잊을 수 없었다. 사랑을 듬뿍 받던 녀석이 나에게 와서 그 사랑을 채워주지 못한 나의 부족함이 걸렸다. 방글이는 주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다가 갔을 것이다. 어쩌면 방글이와 나와의 인연은 내가 그저 돌봐주는 정도였는지도 모른다. 해탈 님을 보면서 방글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길에 돌아다니는 애완견을 보면 방글이를 생각했다. 애완견들은 주인에게 사랑은 받지만 자유를 박탈 당한 것으로 보였다. '자유를 박탈한다' 이 말에 반발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의 목줄을 아무리 어깨에 매었다지만, 주인이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하도록 목줄을 당겨서 하는 말이다. 주인은 손전화기를 보거나 이야기하느라 정신없으면서 강아지가 자기 흔적을 남기거나 다른 곳으로 가면 어김없이 목줄을 잡아챘다. 다른 곳에 가지 말라고, 오로지 주인 옆에서, 오직 주인만을 쳐다보라고 강요했다. 그런 것을 보면 해탈 님은 자유롭게 산다. 방글이도 느슨하게 살았고. 


  내가 예쁘다고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손자에게 짐승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함이다. 난 손자가 내 손을 붙잡고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그렇듯 개 산책을 시키러 나왔으면 개가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말이 된다. 해탈 님 모자는 비록 세심한 사랑과 보살핌은 없을 망정 자유롭다. 해탈 님은 넓은 산속을 멋대로 헤집고 돌아다녔다. 그러다 밤이 되면 수시로 산돼지와 맞짱도 뜬다. 해탈 님 모자는 생명을 담보로 물고 늘어질 것이다. 주인을 위해서 싸우겠지만 강한 승부 근성 탓도 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아파트에서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성대 제거 수술을 하지 않나, 붉으스름한 맨 살이 드러나도록 털을 자르지, 암컷의 자궁을 드러내고, 수컷의 고환을 제거하는 등 모두가 주인들 마음대로다. 심지어 버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그래도 되는 것일까. 해탈 님 모자의 삶이 비록 거칠지만, 애완견보다 더 호기로우며 사는 것처럼 사는 것 아닐까.




사진: 정 혜


아래 사진은 중암 앞에서 해탈 님과 나. 바라보는 방향이 각각이다.   


대문 사진은 "해탈 님이 나를 핥으려고 하여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모습이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280557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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