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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Mar 10. 2021

그래, 벗어라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가 참 중요하다. 각자의 버릇만 봐도 살아온 환경을 대충 짐작하 듯 말이다. 늘 하던 동작은 몸에 배여서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고 있다. 그간 하던 행위들은 혼인을 해도 은연중에 그대로 남아서 이어진다. 배우자에 대한 배려심이 없으면 당연히 어제의 행동을 아무런 생각 없이 계속해나간다.

처가(시가) 가족의 다른 문화는 안중에 없고 또한 관심도 없으며 '다들 그러려니…' 하고.

 

  이 녀석이 오늘도 아래를 수건으로 가린 채 안방으로 들어갔다. 게걸음을 걸으면서. 내가 소파에 앉아 걷어 논 손자의 기저귀를 개키는데 얼핏 사위가 지나갔다. 나는 안 본 것처럼 고개를 모로 돌려 손자를 보면서 손을 부지런히 놀렸다. 잠시 후 러닝과 사각팬티를 입은 사위가 바닥 청소를 한다며 밀대에 물 묻은 걸레를 끼웠다. 그리고 바닥을 쓱 쓱 밀고 당겼다.


  사위의 허벅지가 미끈했다. 울퉁불퉁한 다리가 아니었다. 종아리가 쭉 뻗었으며 박자를 맞추어 움직이니 상당히 매력적이다. 허벅지 근육이 탱탱하다. 소파 밑을 닦아내느라 퍼지르고 앉으니 엉덩이의 쌍계곡도 드러났다. 참으로 뒷 태가 섹시하다. 나의 못마땅했던 감정은 숨기고 "와우! 우리 사위 섹씨 한데~~" 사위가 눈치도 없이 히히 거리고 웃는다. 나도 이젠 사돈 말씀 맞다나 '빤쓰 바람'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사위가 밤 시간은 어영부영 보내고, 아침에는 출근 몇십 분 전에 일어나 정신없이 청소하는 위인에게 바지 입으라고 눈총을 주지 말아야겠다.


  사돈이 어느 날 손자를 보러 왔다. 사돈이 손자를 데리고 놀다가 트렁크팬티 차림으로 어슬렁거리는 아들을 봤다. 대뜸 "이 짜쓱이요! 어데 장모 앞에서 빤쓰 바람으로 돌아댕기노!" 사돈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 들어라고 "빨리 안에 드가가 바지 입고 나온나!" 이어서 나를 보고도 "사돈, 저거를 그냥 두고 봅니꺼? 버릇 없구로 나둡니꺼" 사위가 샐 샐 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 번은 남편이 점심 식사하러 아파트로 왔다. 사위는 아내를 돕느라 주방에서 빤쓰바람으로 돌아다니다 장인이 도착했다. 그때 나는 사위의 차림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상한 한 마디를 궁리 중이었다. 사위는  빤쓰바람으로 장인을 맞이했고, 남편은 못 본 척하는 것 같았다. 빤쓰차림으로 상을 닦는 사위에게 넌지시 "자네 얼른 들어가서 청바지라도 입고 나오게. 장인한테 예의가 아니다" 사위는 나를 힐끗 보며 "그랄 까예?"라며 일어섰다. '그랄 까예에~'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위다.


  아주 아주 오래전 큰 시누이 집엘 갔다. 시누이 남편이 처남댁이 왔는데도 파자마 바람으로 거침없이 다녔다. 지금이야 나도 능글맞아져서 '대애충 그 까이 꺼~' 하면서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새파란 생 속이었다. '하이구~ 별 웃기는 인간이 다 있네. 예의라고는…' 혼자 생각하다가 손 위 둘째 동서에게 이렇고 저렇더라며 말을 했다. 나의 말은 들판에 불이 붙은 듯 시누이 귀에 전달되었다. 한 칼 하는 시누이가 '너는 뭐 그리 대단한 인물이라고 둘째 올케한테 내 남편 흉을 보느냐'고 공격을 하여서 내가 KO 패(敗)를 당한 적이 있다. 


  사위가 퇴근했다. 예의 빤쓰 차림으로 나와서 다녀왔다고 인사를 한다. '아고~ 저걸 그냥 콱!' 그렇지만

"사위 왔나? 얼른 옷 입고 저녁 먹어야지" 실내 옷 입고 나오라며 언질을 줘도 손자와 노느라 건성으로 "예~~" 아비가 쌍계곡을 드러내니 새끼는 볼 것도 없다. 부자가 팬티 차림으로 거실을 활보한다? 눈 앞이 어질거린다. 사위를 어떻게 설득을 시켜야 할까.


  딸은 사위를 애시당초 포기한 것 같다. 아니 한 수 더떠서 벗고 다닌다. 내 딸은 아예 벌거벗고 이방 저 방을 오갔다. 나의 눈을 감는 것이 훨씬 편했다. "윤서방! 자네 안 사람 옷 입으라고 말 쫌 해라"고 했더니 사위는 "장모님, 순수한 저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데예~"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저는 숨기고, 가리고 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더 좋아예~" 내가 물러서는 것이 빠르다. 그러나 60년 하고도 70년 세월이 낼, 모렌데 물 위에 새긴 이름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고정관념이.


  그런데 사위의 빤쓰 하나가 옆이 터져서 고관절을 드러냈다. 내가 사위에게 옷 갈아 입을 때 아예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당부를 했다. 그러나 사위는 잊었고, 나는 아까워서 세탁기에 넣었다. 그리고 또 입은 모습을 보면 잊지 말라고 하면서. 결국 딸이 볼 품 없는 것을 세탁기로 보내지 않고 손자의 장난감으로 주었다. 손자가 질감을 느끼고, 팬티가 쭉 쭉 찢어지는 소리를 들어라고 그랬다나. 거실 바닥에는 손자가 찢었는지 어쨌는지 째진 빤쓰가 너덜거렸다. 이런 사위를 보면 내 남편보다 성질머리가 느긋해서 바지 안 입는다며 더 이상 군말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하이고 참 내. 어제는 딸 내외가 둘째 태중 손녀 정기검진일이라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딸이 태아 사진을 보여준다며 내 방에 주저앉아 펼쳤다. 뒤따라 온 사위가 방문도 들어서기 전에 청바지부터 벗어제낀다. '그래, 벗어라.'  


  나는 아침마다 사위의 쎅씨한 아랫도리를 훔쳐본다.







사진: 정 혜


대문사진은 옆구리가 터진 사위 팬티.

아래는 장미꽃이 검붉으면 흑장미라고 하듯, 홍매화의 색이 짙으면 '흑매'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해가 진 뒤 찍은 흑매의 색깔이 상당히 섹시해 보인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270419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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