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혜 Dec 18. 2021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독서 에세이

  "아무도 지배받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여자와 남자가 무조건 똑같거나 평등한 곳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틀을 만드는 기준인 세상 말이다. 누구나 타고나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는 세상에서, 평화와 가능성의 세상에서 산다고 상상해보라. 페미니즘 혁명만으로는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없다. 인종차별과 계급 엘리트주의, 제국주의도 함께 종식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하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며 자유와 정의를 향한 우리의 꿈을 실현하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진리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22쪽)


  벨 훅스 작가는 1952년생이다. 현재 만 69세이며 우리나라 나이로 70세. 나와 같은 세대를 살면서 동서양의 문화적 사고의 차이는 아주 크다. 특히 흑인 여성으로 차별이 심했던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일부 문장이지만 22쪽의 인용은 매우 공감하는 바이다. 대승불교의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한 날 시에 너도 나도 부처가 되자는 희망 사항과 흡사하여서 그렇다. 


  얼마 전 지인이 책상에 한 책을 올렸다. 얼핏 쳐다보니 '소설 김 삿 갓'이어서 책 표지 앞뒤를 살폈다. 뒷 표지에 한자로 "정비석 풍류소설, 천하의 바람둥이, 재치와 기행의 천재, 점잔 떠는 얼굴에 침을 뱉는 독설가!  빼어난 선골풍(仙骨風)으로 도인(道人)에게는 도(道), 풍류객(風流客)에게는 풍류(風流), 시인(詩人

)에게는 시(詩)로 맞서며 기막힌 인생을 거침없이 살다간 김삿갓, 그 해학과 호연지기의 여로!" 


  이 책을 1988년에 읽었던 같다. 쌍둥이가 거실에서 놀 때 완전히 빠져서 난독했다. 굉장히 멋진 사나이라고 흠모까지 하면서 말이다. 현재는 전혀 아니올시다 다. 뒷 표지를 보면서 대뜸 "집에 남은 처자는 어떻게 살라고 재치와 기행을 펼쳐? 처자에 대한 배려심이 있기나 한 거야"라고 내뱉었다. 이 양반은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을 터. 여성주의 또는 여권주의는 여성의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어야 한다는 견해를 알았어도 발등에 떨어진 자신의 문제와 가문을 일으키고, 현실과의 타협이 급선무였을 것. 


  김 삿갓은 여섯 살 때 선천(宣天) 부사였던 할아버지 김 익순(益淳)이 평안도 농민전쟁 때 홍 경래에게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당하였다고 한다. 관련 글을 검색하며 2018년 8월 3일 영남신문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읽으며 김 삿갓의 사연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바람둥이는 한 여자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이 여자, 저 여자와 염문을 뿌리는 남자를 말할 것이다. 바람둥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천하의 바람둥이'

라는 비유는 세간의 이목을 끌자고 출판사의 상업적 술수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글귀는 깊이 생각한 후에 썼으면 한다.



  작가 벨 훅스는 113쪽에서 

  "자유를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 싸웠던 여성 투사들은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에 맞서 홀로 고군분투했다." 

  김 삿갓의 부인은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사회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홀로 고군분투했을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김삿갓은 편협한 양반사회에서 재기할 없었던 울분을 주체할 없자 불쑥 나선 일탈이 진정한 자유의 의미알았던 것은 아닐까. 이해는 있지만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닌 사람, 가운이 몰락하여 험난한 삶을 꾸리는 아내는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후동이가 여성학 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딸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면서 읽기를 권했던 책. 읽은 후 치열한 논쟁을 해보자고도 했다. 딸의 제안에 두 손 들고 뒤로 물러설 것이 확연한 논쟁을 피하고 싶었다. 우연히 이즈음 '불교의 여성관'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눈으로 훑으니 페미니즘에 대해서 문외한의 눈을 조금 뜨게 해 주었다. 오히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보다 강하게 파고들었다. 물론 불자여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불교의 여성관'은 붓다의 여성관을 다루면서 세계 여성의 억압과 차별받는 역사를 파헤쳤다. 저자는 고대 사회의 여성관부터 고찰하며  '불교를 인도 고대 문화로부터 결코 분리해낼 수 없듯 인도 고대 문화도 인류문화사적으로 원시시대의 문화와 절연(絶緣)된 것이 아니라 큰 흐름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전형적인 모계제 사회의 풍습 위에 남성의 역할이 이중적으로 확대되면서 변화되는 시기가 있었다여가 장제(女家長制)의 모계사회는 세계문화사적으로 기원전 1750년 무렵에는 거의 사라지게 된다. 이 무렵부터 원시 농경문화가 서서히 사라지고 씨족·부족사회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힘이 약한 무리들은 자연히 쇠퇴하고, 강한 무리들은 영토전쟁에서 승리한 무리만 살아남아 부족국가 형태가 되었다. 부계사회는 딸과 처도 농경에 필요한 노동력이고, 남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여성은 남성들의 재산 소유물과 같다는 의식이 강화되어 간다. 예컨대 남성들의 힘의 논리가 사회적으로 지배 논리로 변하면서 처방혼은 사라지고, 여성은 혼인을 하면 남편의 생가에서 살게되었다.' 


  '또 한 남성이 많은 여성과 혼인하는 것은 힘있는 남성의 상징적인 모습처럼 보이게 되었다. 농경사회가 더 발전하고 사회 힘의 구조가 복잡다단해지면서 여가장제의 모계사회가 인류의 역사에서 기원전 1800년 무렵에는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고 추측하였다. 그러면서 남성들의 힘의 논리가 우선시되고, 힘을 가진 남성이 정치권력을 독점하면서 사회는 전반적으로 남성 위주의 부권제(夫權制)를 확립한다. 부권은 계속 강화되면서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의 사회로 변하여 갔다.' 


  위키백과에 보면 "'인도유럽어족'은 유럽과 서아시아, 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분포한 인도유럽인 민족들의 언어로 이루어진 어족이다."라고 나온다. 고대 인도의 언어가 유럽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인도 고대 문화도 인류문화사적으로 원시시대의 문화와 절연(絶緣)된 것이 아니라 큰 흐름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의미가 그렇다. 벨 훅스의 페미니즘은 그 역사가 작가의 학문적 체계보다 더 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원전 624년에 붓다가 태어났다. 고대 인도가 굉장히 혼란하던 시절에 붓다는 '모든 사람은 동등하며 평등하다'고 역설하였다. 카스트 제도에 의해서 신분을 철저히 나누었던 고대 인도에는 아리안들이 있었다. 기원전 3000년 무렵 아리안들은 유럽 각국으로 살 길을 찾아서 흩어졌다. '고대 민족의 대 이동'의 장본인들이다. 유럽의  유구한 역사 속에는 페미니즘의 싹이 트고 있었지만 아리안의 무지한 남성들에 의해서 좌절되었던 것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273쪽 의 해제에서는

  "사실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약자이자 강자다. 우리가 약자를  배려해야 하는 이유는 약자가 생존 가능한 사회에서만 우리는 모두 우리의 취약함을 감당하고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약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 인간을 지금까지 '진화'시켜왔다. 인류의 진화는 다양성이라는 조건에서 이루어졌으며 우리는 점점 더 서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므로 각자도생의 사회란 인류에게는 불가능한 미션이다. 약자를 위한 정치학이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될 수 있으며, '다양성'은 우리의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다."


  앙굿따라 니까야 합리적인 행위 경(AN4.61)에서 붓다는 가장 먼저 자신을 행복하고, 만족하고, 바르게 행복을 지키도록 한다. 둘째는 부모, 셋째는 아들과 아내와 하인과 일꾼들을 행복하고 만족하며 바르게 행복을 지키도록 한다고 가르쳤다. 행복한 일 중 첫 번째가 나 자신의 행복이다. 내가 있어야 처자(남편)도 있는 법이며, 내가 행복해야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가족을 지키려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페미니즘이자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싶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금년 5월 7일 오후 5시 43분, 해 질 녘 화단에 핀 줄 장미꽃. 한 날 한 시에 피지 않았지만, 모두가 진한 향기를 지니고 있었고, 피었던 꽃들은 시들어서 낙화하였다.


아래 사진: 12월 15일 아파트 단지 내 피었던 개량종 겹 동백꽃 잎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있다. 동백꽃 아래에는 진홍색 꽃잎이 새롭게 꽃을 피웠다. 12월에 꿀벌이 화분을 모으고 있으니, 화분을 채취하는 것은 꿀벌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598617012

 

작가의 이전글 자타일시성불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