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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Dec 25. 2021

딸은 안 보여?

  주어도 주어도 끝없이 달라는 것이 자식인가 보다. 연년생이나 다름없는 자식을 키우는 딸의 요청도 있었지만 자원하여 손주를 거두어 준다. 육체는 체력 저하로 하루 다르게 피로가 누적되는 실정이다. 마음만큼은 날마다 좋은 날이어서 매일을 이어간다. 오전에는 신나게 아이들과 놀다가 오후만 되면 시계를 바라보게 된다. 짧은 해는 어둠도 빨리 몰고 와서 두 어깨부터 피곤을 내리 덮어서 아래로 보낸다. 딸은 엄마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놓아주지 않는다. 한 시 바삐 빨리 벗어나고 싶은데 


  목요일은 우쿠렐레를 배우는 날이다. 귀가하며 아파트 가까이 문화센터에 들리기만 하면 된다. 국가유공자 가족은 100% 수업료 면제여서 배우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새벽부터 장이 꼬일 듯 아파서 일찍 오라고 전화까지 했다. 한 녀석은 업고, 손자는 달래면서 어멈을 병원으로 보냈다. 다행히 오후부터 차도가 있어서 아이들의 음식을 장만하고 저녁을 준비하였다. 손녀가 일찍 잠이 들어서 제때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지 않도록 준비를 하였으나, 꼬맹이들의 예상치 못하는 일이 종 종 발생하여 결국 지각을 하였다.


  "아픈 딸을 위해 마음 편하도록 해주면 안 돼?" 등 뒤에서 들렸다. 차도가 있는 딸이지만 악기를 들고 나서기 무척 난감하였다. 사위도 오지 않았는데 나서기 미안하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하직인사를 대신했다. "그럼 안 가면 되지. 안 갈 듯 말을 하면서도 갈 거잖아. 왜, 사람 기대하게 해?" 아프던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두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현관 문을 열었다. 딸이 만족을 모르는 것 같아서 눈길 또한 마주치기 싫다.


  너의 마음 편하도록 당연히 해주어야지. 엄마가 육아에 힘든 딸을 위해 무슨 행위인들 못해. 좀 전에 한 말은 좀 심한 것 아니야. 딸을 배려하면, 당연히 엄마에게도 걸맞은 대우를 해야지. 왜 엄마만 끊임없이 주어야만 해? 다른 날도 아니고, 미리 준비하며 기다린 시간인데, 너만 생각하여 그렇게 말을 해… 무엇을 바라면서 이것저것 집요하게 요구하는 사람도 아니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알고, 손주들 힘겹게 돌보면서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어미에게 


  소위 스트레스와 날마다 외롭게 사투 중인 내 딸. 벌써 몇 번째인가. 손자를 잘 키우고 싶다는 욕심은 하버드 대학교를 입학시킬 듯하다. 그런 반면 손자는 자기 주도적으로 노는 아이다. 어멈이 옷을 입혀 데리고 나가려면 족히 한 시간은 걸린다.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며, 구슬리고, 달래고, 어멈 혼자 열 받고 포기하지 않고 꼬셔서 겨우 출입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운동하는 시간에 이 녀석이 깍듯이 절을 못 하면 밉기라도 텐데 그것도 아니다. 얄밉고도 고운 손자다.


  월, 수, 금 비대면 운동을 한다. 어멈은 손자를 데리고 나갈 계획을 하며 손녀는 내게 맡긴다. 운동은 엄마가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비대면 운동하면서 전국적으로 손자, 손녀가 방송을 탔다. 손녀를 업거나 안고서 따라 하는 경우도 많다. 그 사이 손자와 딸은 씨름하면서 침묵이 흐르다, 목소리가 올라갈 듯 내려가고, 손자가 나가지 않겠다고 새청맞은 소리를 질러댄다. 부정적인 언사나 한숨은 아이에게 보이지 말라고 하였으니 어멈의 속이 시커멀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손자를 모시고 나간다. 어멈의 인내력이 참으로 가상하다.


  아침밥 한 술 식은 국에 후루룩 말아 넣으며 승강기를 호출하는 사위. 저녁 7시가 지나야 퇴근하는 남편에게서 만족하지 못하여 어미에게 떨어지는 기대치. 그 기대치조차도 만만하지 않아서 돌아앉아 한숨이다. 가장 손쉬운 카톡으로 화를 삭이나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일 것이다. 어렵고도 만만한 어미에게 어쩔 수 없이 또 의지를 해보는 딸이다. 싹싹하고 영리하여서 앞뒤로 가감 계산은 끝났을 터. 틀림없이 집에 도착할 즈음이면 미안하다는 카톡을 보낼 성미다. 하지만 괘씸하다.


  딸이 호들갑을 떨며 어미를 맞는다. "엄마 눈에 딸은 안 보여?" 이거 웬 생뚱맞은 소리. "손자 손녀만 쳐다보고 웃지 말고 딸도 보면서 웃어주세요~" 그래, 딸이 더 소중하지. 손주에게 어멈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야 이 녀석들도 지 엄마를 존중할 테니. 소갈머리 없는 할매가 딸을 포옹하며 보여주기 상황을 연출하였다. 등을 토닥이며 "내 딸~ 사랑해~" 미워하지 못할 내 새끼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금년 4월 19일.

금호강으로 내려가는 둔치에서 선동이는 만삭이 가까워 넙적한 돌에 주저앉았고, 후동이는 조카를 데리고 갓 꽃이 흐드러지게 핀 곳으로 오려고 이동하는 중이다.


아래 사진: 12월 6일.

산책하는 길에는 매실나무 틈새로 조팝나무가 심어져 있다. 잔 가지가 촘촘히 늘어진 틈바구니에 작은 새집이 보였다. 짓궂게 가까이 접근하여 새집을 찍어서 엿보니 당연히 빈 둥지다. 새끼들이 다 떠난 빈 둥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부부만 있는 우리 집조차 날마다 빈 둥지다.

내 딸 역시 30년 후에는 그러하겠지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60427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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