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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May 26. 2021

애 잡는 날

  어멈이 출산하기 전 바닷가에 다녀오리라 별렀다. 며칠 전 후동이가 임신부를 돕기 위해 내려왔다. 이참에 남편은 운전시키고, 손자의 시녀로 이모와 외할머니를 지목하였다. 어멈 자신은 지휘 본부장으로 지시봉을 잡았다. 그리고 출발하기 전 날 세 모녀와 손자가 예행연습을 하려고 승용차에 탔다.


  작년에도 카시트에 앉히려다 실패하였다. 그래서 다시는 손자와 승용차를 타지 않으리라 결심을 하다시피 했던 나다. 이번에는 두리뭉실 두 딸과 동승하는데 일조하게 되었다. 은근히 지옥이 연상되어서 빠져나갈 궁리도 했지만 이미 한 배에 타고 출렁거렸다.


https://brunch.co.kr/@0814jsp/101


   손자는 카시트에 앉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손자와 씨름을 하여 겨우 앉히면 몸부림을 치면서 악바리처럼 울어 제쳤다. 그래서 어멈 내외가 지금까지 아이의 고집을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어멈이 애 이모와 날을 잡았다. 바닷가에 가보겠다 집념으로, 이모는 선동이를 데려다 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어멈은 운전석

, 이모는 앞자리, 나와 손자가 뒷자리에 앉았다. 물색 모르는 손자가 운전대를 만지려고 몸을 움직였다.


  "안돼! 선우는 카시트에 앉아야 해." 어멈이 단호하게 앉으라고 지시했다. 이모도 앉으라면서 엄한 목소리로 대했다. 내가 거부하는 손자를 안으니 빠져나가려고 마구 뻗댔다. 보다 보다 이모가 내려서 카시트 있는 곳으로 왔다. 그리고 나와 힘을 합쳐서 아이를 앉히려고 해 보았다. 이 녀석이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자빠졌다. 어른 셋이 별 수 없어서 뒤로 일단 물러섰다.


  "선우가 카시트에 앉지 않으면 운행하지 않을 거야." 어멈의 강한 명령에도 아이는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카시트에 앉지 않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손자의 간절함을 무시하는 자매가 미웠다. 꼭 이런 식으로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장거리로 나가지 않으면 될 일을 아이에게 가혹하게 굴어서 아주 못마땅했다. 그러나 손자가 카시트에 앉아야만 하는 울고 싶은 현실이 가슴이 쓰리도록 야속했다. 그러나 장단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카시트에 앉아야만 엄마가 안전운전을 할 수 있어." 어멈은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다시 "내일 우리 바다 구경 갈 거야. 선우가 카시트에 앉아야만 갈 수 있어" 어른의 말소리는 20개월 된 손자의 귀에 들리지 않는 듯했다. 무조건 어멈에게 안기려고 들었다. 엄마의 품에서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 자꾸 파고들었지만 차단당했다. 내가 발버둥 치는 손자를 안고 차문을 열었다. 손자가 카시트에 앉지 않으면  모두 차에서 내린다는 행동을 함께 보였다.


   손자는 나를 꼭 안았다. "속 상하지? 할머니도 마음이 안 좋아."라면서 등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를 안심시켰다. "선우는 "잘할 있어" 아이를 내품으로 당겨 안으면서 낮으막한 목소리로 위로했다. 손자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마냥 흐느꼈다. 다시 차에 탔지만, 손자는 한사코 고집을 부렸다. 강단 있던 이모도 속수무책이었다. 자매가 강력하게 밀어붙였지만 자기 주도적인 손자를 포기해야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손자가 나의 어깨에 머리를 묻으며 어깨를 들썩이면서 울었다. 나는 손자를 껴안고 울음이 나올 것 같아 간신히 참았다. 손자는 어른들의 야멸찬 마음이 느껴졌을 것이다. 어른들이 '안전운행'이라는 이유로 아이의 주도적인 면을 꺾으려는 것이다. 손자는 어리지만 고집을 한 번 부리기 시작하면 꺾지 못한다. 끝까지 악을 쓰며 울기 때문이다. 아이의 성향이 그렇다면 부모가 생각을 달리하면 된다. 그런 아이의 기를 꺾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장점으로 키우면 되는 것이다.


  언젠가 작은 나무를 분재로 만드는 것을 봤다. 어린 나무의 수형(樹形)을 다듬어서 가지마다 철사로 감았다. 나무가 더 자라지 못하게  물리적인 힘을 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다루는 사람이 무척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묘목 화분을 사면 화단에 심어버린다. 마음대로 뿌리를 내리며 살라고. 그런데 손자의 카시트 착용은 마치 분재를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삼대(三代)가 칠포 바닷가로 출발했다. 손자가 의외로 카시트에 순순히 앉았다. 아이가 앉으리라 기대하지 않고 시험삼아 앉혀본 것이다. 딸 내외와 이모가 동시에 "최고! 최고! 최고!"라면서 박수를 치며 합창했다. 이 녀석의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웃는 것이 보였다. 어멈이 "선우 정말 잘했어. 고마워. 우리 아들 최고

!" 식구들번갈아 가며 엄지를 세워서 칭찬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말이 맞았다. 아이는 믿어주고, 기다리며, 칭찬해주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다.


  아이가 밀려오는 파도와 그 소리에 또 기겁하였다. 물 가까이 가지 말라고 나를 잡아당겼다. 내가 장난 삼아 후동이와 물가로 가서 파도를 맞았더니 애가 타서 난리가 났다. 칠포해수욕장이 떠나가는 줄 알았다. 두 딸은 해수욕장에 가면서 차양막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거기다가 바닷물이 차가웠다. 손자가 파도소리와 파도를 무서워하여서 더 이상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손자가 돌아오려는 차 안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영특한 녀석이 어른의 속내를 꿰뚫고 있었다. 즉시 체포되어 카시트에 앉혀지고 말았다. 또 박수를 치면서 함성이 터졌다. 어멈이 가슴 답답하던 것이 뚫렸다고 했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 공기 청정한 칠포 하늘로 두둥실 떠다녔다. 후동이 또한 성심성의껏 조카를 돌봐주고 가사를 도맡아 처리해주었다. 자매가 서로를 인정하고, 고생한 것을 알아주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사진: 정혜


대문 사진: 칠포 해수욕장이 아니라 밋밋한 바닷가였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 바다를 잦았지만 본격적인 해수욕 철이 아니어서 썰렁했다. 우리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아래 사진: 손자를 업고 파도에 발을 적시는 삼대(三代). 손자가 두려워서 소리를 질러대 바닷물 맛만 보고 모래를 밟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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