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니 먼데 5
딸이 어제 오후 '일요일 밤에 아파트로 오라'며 전화를 했다. 사위가 나를 모시러 온다나. 드디어 나의 봄날은 끝이 보였다. 2주간 쉬라더니 겨우 일주일 만에 호출이다. 그래도 좋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으면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내 몸이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청소는 하고 싶을 때 걸레로 설렁설렁 먼지만 훔쳐냈다. 매향에 젖어서 글을 썼고, 홍매, 흑매, 백매, 녹악매가 지척에 있는 것을 알아냈으니 일주일 휴가 중 최고의 수확이다. 이 글도 집에 들어오자마자 흥이 깨지기 전에 쓴다.
동구 아양아트센터 옆에는 대구 기상청이 있다. 그곳의 백매 두 그루가 나를 불렀다. 금세 매화에 빠져서 사진 찍을 방향과 각도를 찾는데 어디서 "빨리 나가세요! 외부인은 출입금지입니다!" 나는 소리가 나오는 건물을 향해 90도로 절을 하고, 매화가 핀 나무를 가리켰다. 그리고 손전화기를 들어 보였다. 한 장 찍을 동안 조용하나 싶더니 이내 장내방송을 대구 시내가 떠나갈 듯 해댔다. '이 사람아, 갈 때 되면 가니까 떠들지 마라. 쫌!' 버텼다. 내가 시끄러워서 못 있을 정도로 반복했다. 그리고 인근에서 놀랄 것 같아서도 더 있을 수 없었다. "에 라이~ 멋때가리 없는 인간아. 간다, 가!"
쫓겨 나온 나는 수성구로 가는 굴다리를 지났다. 능엄사 옆 공원에는 불그스레한 빛이 보여 접근해 봤더니 "이거 웬 횡재야!" 홍매(紅梅)가 두 그루나 있다. 막 피기 시작하여 내 글감으로 딱 이었다. 내일 또 오면 되지만 눌러붙어서 봉을 뺐다. 무심코 바닥을 내려다보니 약콩 만한 홍매 봉오리를 두 개 주었다. 내게 밀려서 떨어진 듯했다. 속으로 '더 힘을 주어서 가지를 제치고 사진을 찍을 걸 괜히 조심했나 보다' 엉큼한 생각도 들었지만 곧 미련을 버렸다. 욕심이므로.
마음이 봉오리 때문에 바빴다. 매향이 동구시장 부근에 다다르자 어디선가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전 화단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며 빨리 오라며 재촉하는 듯 했다. '그럼 그렇지. 매향은 나만 느낄 수 있지…' 또 나가라고 할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이곳은 관심도 없었다. 석양 빛이 어설프게 비쳐서 빛 조절을 해가며 백매를 찍었다. 꽃 향기는 나를 포옥 감싸 안으며 달면서도 경쾌한, 신선한 청정수를 선물했다. 그 맛에 또 흠신 젖어버렸다. 꽃이 지는 나무와 막 피기 시작한 두 그루가 한전이 아닌 동구시장 쪽에 심어져 있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높이로 최적이었다.
한전 문을 나섰다. 흑매(黑梅)가 4차선 도로 건너에서 그냥 가면 화를 낼 거란다. 횡단보도가 얄밉게도 멀리 있었지만 건너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흑매는 지고 있었다. 솔직한 말로 흑매는 색이 짙어서인지 질 때 참으로 거시기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지는 멋은 지는 대로 있는 법. 그런데 주운 봉오리가 생각났다. 그러나 즐길 것은 즐겨야 한다. 흑매가 지고 있으니까.
포토에세이를 쓰고 있다. 주제가 흑매와 녹악매다. 적합한 사진이 필요했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정말 그런 날이었다. 연분홍 매화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 오늘도 손전화기 매만지며, 흰 구름 흘러가는 신작로로 나섰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내년을 기약하며… 좋아하는 가요 '봄날은 간다'가 흥얼거려졌다. 고음은 저음으로 처리하여 부르면 되고.
그래, 봄날이 자알 가고 있다…
사진: 정 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