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니 언제 갈 낀데 3

"엄마, 거기 밀폐된 공간 아니지?"

by 정 혜

코로나 19 때문에 아들을 3개월이나 지나서 만났다. 금요일 밤 9시가 넘어 딸 아파트로 왔다. 5월 한 달은 매일 수필과 한 권의 책을 읽은 만큼 서평을 한 편씩 써야 했다. 내가 한 달간 글 쓰는 작업에 도전했던 것이다. 낮에는 손자와 씨름하고, 저녁에는 글과 맞짱을 뜨고 있었다. 그러니 아들이 내 옆에 와서 인사를 해도 "어, 왔나? 엄마가 글 쓰느라 정신이 없다. 끝내고 보자." 머릿속에서는 글이 줄 줄 나왔으며, 눈은 화면을 주시하고, 손은 타자기 두드리느라 입만 의무적으로 움직였다.


사위가 처남의 신상품 치킨 추천을 받아 기분 좋게 주문했다. 나도 10시 가까이 글 과제를 마쳐서 아이들 옆에 앉아 잘 먹지 않는 맥주를 먹었다. 아들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닌다. 그동안 첫 조카가 보고 싶어도 요란한 역병 때문에 꼼짝 못 하고 있었다. 딸은 수그러질 것 같던 거시기가 서울서도 확진자가 발생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했다. 지방에서는 상경하지 않으면 되지만, 서울은 모여들었다 흩어지는 유동인구들 때문에 장기전이 된다는 것이다.


그놈이야 그러거나 저러거나 내 알 바 아니지만, 아들은 내 몰라라 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녀석과 내가 함께 할 상황이 아니었다. 맥주 한 잔에 취해서 배를 깔고 엎드렸다. 나는 매달 셋, 넷째 토요일은 한자 수업이 있다. 한자 배우는 것이 좋아서 결석할 의사가 전혀 없는데, 아들이 껄쩍지근하게 걸렸다. 그런데 아들도 오후 네시 반에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럼 약속시간 전까지 함께 있어주면 되는데 결석해야만 한다. 그리고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아야 하는데, 안 가면 통증이 많이 느껴질 터이고


아들은 내가 아들바라기가 되어 주기를 원한다. 나는 남편 바라기도 못해서 손 놓은 지 이미 오래다. 하물며 자식 바라기는 더 못 하는 것이 나다. 두고두고 생각해보지만, 나의 천성인 것 같다. 언제 적에 누군가가 나의 가까운 전생에는 내가 '이름 난 장군'이었다고 말했다. 남자였다는 말이다. 나는 그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겉으로 보기와 달리 상당히 남성적이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는 짐작을 스스로 많이 하고 있다.


완전히 토요일 반나절을 아들바라기가 될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딸은 예상치 못한 제왕절개 수술로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 안타까워서 양, 한방 어느 곳이든 좋으니 가라고 사정을 해도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꼼짝도 않는다. 내가 사돈에게 압력을 넣으라고 부탁을 다했다. 그래서 딸이 한의원에 가기로 하여 나와 승용차를 탔다. "엄마는 아들이 모처럼 왔는데 옆에서 대화도 좀 하고 그러지 계모처럼 굴고 그래?" 딸에게 뒷덜미가 덥석 잡혔다. 부끄러워서 잠시 말문을 열지 못했다.


후회할 행동은 하지 말자. 그래서 그동안 나를 많이 내세우지 않았다. 아들에게 어미 노릇을 하지 않아서 지금 내가 후회할 상황인 거다. 길을 걸으며 이모저모 많은 사유를 하였다. 30이 넘은 자식에게 부모는 무엇인가. 스스로의 인생을 살고 있는 아들에게 내가 뭘 어떻게. 나는 나의 인생을 잘 가꾸어 나가는 것이 아들과 딸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평소에 주장한다.


'누구는 뭐 해주더라고 자랑하더라, 유명상표 왜 안 사주느냐, 여기 아프니 CT니 MRI 촬영해봐야겠다 돈 내놔라, 같이 가자' 등 앓는 소리는 하기 싫다.


법구경에 보면, 어린 아들을 붓다의 제자로 출가시킨 후 어머니도 결국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그러나 항상 아들 생각이 한 구석에 있었다. 하루는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 스님을 친견하게 되었다. 아들 스님은 어머니의 이런 마음을 알아차리고 냉정하게 대했다. 당연히 내가 어떻게 키워서 출가를 시켰는데 어미를 그리 대하느냐고 섭섭해했다.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고도 자식에게 연연해하느냐고 되레 공부 제대로 못했다고 나무람만 들었다. 어머니는 그제야 해 왔던 공부를 되짚으면서 자식에게 집착하던 마음을 완전히 끊을 수 있었다.


여름 하늘에는 구름이 많다. 인연이 닿으면 비구름으로 변하여 소나기를 내리퍼붓는다. 비 그친 후 말개진 주변 상황으로 나도 깔끔해지는 것을 종종 느낀다. 나는 '당당하자'라고 결심하며 고개를 바로 세우고 발걸음을 빨리 했다."그래,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거야. 한자 공부하러 가자." 지하철은 공짜로 타니까 탈 적마다 은근히 기분이 좋다. 또 반월당에 내려서 지하도를 걸으면 가끔 하는 구경거리도 자질구레한 것들 잊어버리기 딱이다.


"엄마, 거기 밀폐된 공간 아니지?" 수업 마치고 회원들과 이른 저녁을 먹는데 딸의 전화가 왔다. 집을 나설 때부터 한자수업 소리는 싹 빼버렸다. 딸은 궁금하여서 감시의 촉각이 곤두선 목소리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다. "그런 데 절대로 아이~거든" 믿거나 말거나 그것은 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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