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해요, 우리

중성화된 그들

by 정 혜

그들이 피둥피둥 해졌다. 힐끔, 본 척 만 척 지나갔다. 내가 밤이면 밤마다 피가 나오도록 소리를 질렀다. 멀리 서라도 들었으면 나를 찾아오라고. 어떤 누구도 돌아보지 않아서 억장이 무너져 낮에도 울음을 토해냈다. 마이동풍이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마실 나간 사이 강냥이가 지하실 밖으로 나오는 사건이 있었어. 주인 남자가 강냥이를 본 후, 즉시 입구를 무거운 돌로 눌러 막아 버린 거야. 내 깐엔 흔적 없이 드나들었는데… 젖도 떼지 않은 새끼들을 굶겨 죽이는 줄 알았지 뭐야. 간신히 지하실로 들어가 세 놈에게 젖을 먹이며 주의를 단단히 주었단다. 어떤 일이 생겨도 나오지 말라고. 집주인의 감시가 심해 아이들 키우기 녹록지 않더라. 주인이 하루는 무슨 까닭으로 지하실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거야. 아무튼 바깥으로 나가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했던 강냥이, 중양이, 약양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이들은 땅에다 배변을 묻기도 하고 나지막한 나무를 장난감 삼아 오르내리고. 나는 양지 뜨락에 엎드려 그걸 보며 졸았어. 참 내. 아 글쎄, 주인 여자가 외출했다 들어오더니 열린 지하실 입구를 완전히 봉쇄해 버리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네 식구가 한 며칠 참 행복했었어. 그것도 복이라고… 아직은 추운 기운이 남은 봄날, 우리 네 식구가 해는 지는데 갑자기 갈 곳이 있어야지. 마침 그 집 한 쪽 구석에는 사용하지 않는 나무상자 더미가 있더라. 거기서 추운 밤을 보낼 수 있었단다. 다행히도 낮에는 기온이 올라가 이놈들이 지어미 속 썩는 줄 모르고 온 집안을 들쑤시고 다니는 거야. 이 집 주인은 우리 식구에게 야박하게 굴었지만 안주인은 먹이와 물을 챙겨주기도 하더라. 심술 사나운 남편이 며칠 뒤 나무상자 더미마저 정리를 해버려 또 헤매어만 했어. 날씨가 차츰 따뜻해져 그나마 견딜 수 있더군.


나는 주인 남자 방 창문 아래로 잘 다닌단다. 그 통로는 새끼들을 데리고 오가면서 배우자 찾는 소리를 가르친 곳이며, 이웃 친구들도 나를 보러 밤 인사차 오기도 하고, 내가 없을 때는 사내들이 와서 슬쩍 냄새를 뿌려 날 유혹하기도 했어. 한땐 우리들의 잔치가 밤마다 열려 골목이 시끌벅적 가관이었지. 한 번은 주인 남자가 창문을 열어젖히더니 “저리 안 가!”느냐고 기차 화통 삶아 먹은 소리를 질러서 다들 놀라 도망가기 바빴지. 좀 더 주인에게 보복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어. 그럴 처지가 아니었거든.


약양이가 아침에 눈을 뜨지 않더라. 주인 남자가 아내와 함께 화단에 묻어 주어 얼마나 고맙던지. 약한 녀석이라 그런 데로 참을 수 있었어. 한 삼 사일이 지났나. 중양이가 밤새 어딜 쏘다니며 뭘 먹었는지 그늘에 누워 숨을 몰아쉬는 거 있지. 나는 멀리서 쳐다볼 수밖에 없었어. 주인 남자가 재수 없다며 아내한테 마구 화를 내더라. 뒤를 이어 하나 남은 강양이 마저 비실거리는데… 나를 아주 슬프게 만들었어. 우연히 주인 여자가 나를 봤지만 그녀인들 별 수가 있나. 내가 물에 빠진 심정이라 그녀에게 살려 달라 눈빛 호소를 보냈단다. 새끼도 살고 싶었는지 주방 뒷문으로 비칠 비칠 가서는 픽 자빠져버리는거야. 강양이는 보지 못하고 나의 애절한 눈길에 “정말 미안하다. 안식할 공간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만 여러 번 하더구나. 강냥이가 죽어가는 줄 모르는 것 같았어.


내 심장이 시커멓게 탄 사연은 이뿐만 아니야. 오래되어서 생각도 가물가물한 언제 적이었어. 외둥이가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구석에 주저앉아 ‘앵 앵‘ 울어대는 거야. 얼마나 내 속을 긁어댔는지…그렇지만 나는 끝까지 냉정하게 굴었어. 가지 않겠다는 녀석을 독립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바퀴에 치여 멀리 가버리더라. 무슨 팔자가 이렇게 고약하니… 내 가슴에 대못을 자주 박아대는 이유나 어떤 원인으로 이러는지 누구 말 좀 해줘.


한참 동안 임신이 되지 않았어. 그나마 낳은 자식들은 자라지도 못하고. 친구들이 근자 들어 낮에 인간들에게 하나 둘 붙잡혀 가는 것을 봤어. 사내들은 돌아와서 나를 봐도 아는 체하지 않는 거야. 그들이 끌려갔다 온 후 하는 행동은 모두 먹을 것만 밝히고, 흘낏 흘낏 눈치나 살펴대니 참 한심하더라. 내가 초조하여 나의 영역을 샅샅이 누볐어. 빈 집도 일일이 살펴보며 사내들에게 추파를 던졌건만 전부 본 둥 만 양인 거야. 나는 안주인이 날 잡아가겠다는 전화를 받고도 취소한 덕에 그나마 석녀를 면할 수 있었어. 그래서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멀쩡한 사내를 찾아 두 눈에 쌍심지를 올려 돌아다녔던 거야.


우리들은 종족보존에 충실했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떠했냐. 농사지은 양식 다 먹어 치운다고 쥐들의 씨를 말려 우리들을 사지로 내 몰았어. 생각이 나기나 해? 배가 고파 낮이나 밤이나 쓰레기 봉지 물어뜯어 헤집어서 주린 배 채우기에 급급했었지. 새끼가 빼빼하니 살이 찌지 않더라. 어미가 못 먹으니 젖을 먹이려 해도 나와야 말이지. 어미나 새끼가 비루먹은 강아지 꼴을 하고 골목을 배회했어. 재수 좋게 좀 자란 새끼는 교통사고로 이별하고… 갈 곳 없는 우리들 신세, 사람들 눈치 봐 가며 자동차 바퀴 아래로 피해 다니는 것도 지긋지긋해. 가난에 쪄들은 우리들의 배고프고 집 없는 서러움을 알기나 하느냐고! 너희들이나 잘할 일이지 우리마저 못살게 하는 이유가 뭐야.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러는 건데. 그것도 부족해 나의 자궁을 너희들 멋대로 제거해! 내가 너희한테 무슨 잘못을 했기에 가만히 놔두지 않는 거야.


나도 인간에게 붙잡혀 버렸다. 오래도록 남정네를 못 찾아 울고불고 요란을 떨어서 그랬는지 결국 요주의 인물이 되었나 봐. 불안 해 하며 끌려간 곳은 병원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아. 내가 정신이 들자 살았던 동네로 데려다주는 거 있지. 사람들이 병을 주더니 약도 주고 하더라. 의사가 ‘중성화 수술‘을 한다는 것 같았어. 그러니까 수컷의 고환을 도려냈단 말이며, 나의 난소나 자궁을 적출하여 발정할 때 내는 소리나 냄새의 근원을 없애버린 것이지. 내가 당한 뒤에야 이웃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어. 나는 암컷 중에서도 인기가 많아 수컷들이 여럿 따라다니며 추근거렸거든. 헌 데 요즘 젊은 인간들은 혼인하지 않겠다고 난리라며. 자식 낳지 않겠다는 것은 너희들 욕심이자 이기심으로 그러는 거지만,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우리들의 본능을 무엇 때문에 제거하느냐 말이다. 왜.

왜.


왜!!


나의 굴곡진 삶, 오래도 살았다. 연일 너네 들은 초 고령화 시대라며 뉴스마다 심각하게 떠들어 대는 것을 고양이인 나도 다 알아. 당연히 그렇겠지.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너희들은 자발적으로 했잖아. 우리는 아니었다 이 말씀이야. 그런데 우리들도 생각지 않은 고령화 사회가 되어버렸어. 서로 공존하며 살 수 있는데 꼭 이렇게 극단적이어야만 해? 이런 방법밖엔 없었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아, 알고 보니 참 불쌍하고 무지하더라. 나도 살아보려고 억척을 부렸지만 이젠 지쳤어. 바른말할 의욕도 없고, 용기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야. 날마다 길모퉁이에다 끼니라고 때 묻고 이 빠진 그릇에 담아주는 사료, 일회용 용기에 먼지 묻은 물이나 먹으며 세월 보내다 죽으련다. 만사가 귀찮다. 햇빛이나 가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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