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넌 잘할 수 있어. 힘내!"

전입 3일 된 신병

by 정 혜

신병이 두 명 왔다. 두 녀석의 손을 어루만져 주면서 환영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본관을 물어 보았다. 모른다고 대답을 하길래 말을 바꾸어서 "어디 윤 씨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장병들에게 본관을 잘 묻는다. 그리고 중시조(中始祖)가 누구인지도 가끔씩 질문을 해본다. 중시조나 본관(本貫)이란 용어를 아는 장병은 열에 하나 있을까 말 까다. 그러나 '본관'이라고 표현해 본다. 더러 "예, 저는 파평 윤 씨입니다!"라고 각 잡힌 큰 소리는 나의 귀를 막을 정도다. 본관이라는 말을 모르는 경우에는 "저, 서울 사는데요." 나는 차분하게 "어디 윤 씨이지요?" "아, 예~ 파평 윤 씨인데요."


내가 병사를 존중하는 뜻에서 "본관이 어디지요?"라든가 "어디 윤 씨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럼 병사들이나 나의 상대방은 "예. 저는 파평 윤가입니다."라고 해야 맞다. 내가 대답을 할 때는 겸손하게 나를 낮추어서 말한다. 고참들에게 신병이 올 적마다 교육을 시켰건만,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물을 적마다 "예, 파평 윤 씨입니다!" 어떤 신병은 아예 본관을 모른다고 했다. 버젓이 부모가 계시고 괜찮은 가정에서 자랐는대도 말이다. 나는 이곳에서 인내심을 배운다.


신임 두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전 내 노모께서 별세하셨다. 내가 외할머니 기일에는 모두 모이는 날로 정하자고 제안을 했다. 때 맞추어서 대학 강단에 서는 남동생이 형제들의 왕래가 없으면, 상견례 장소에서 핏줄을 만나게 되는 불상사도 발생하더라고 말을 했다. 덩달아 서울에 있는 조카가 '밀양 손 씨'들의 모임에 갔더니 서로 오래 만나지 않아서 육촌을 알아보지 못했다며 외숙의 말씀에 동감했다. 나는 나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 싶어 장병들에게 밥상머리 교육을 대입하기도 한다.


법문을 하기 전 질문부터 해봤다. 지난주 들려주었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는지 확인 차. 오늘은 빨리어(語)에 대해서 한 고참에게 설명을 해보라고 눈길을 주었다. 그러면서 옆에 앉은 신병을 바라보게 되었다. 유독 불안해 보이는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능글맞은 고참은 다른 장병을 지목하며 답변을 미루었다.


빨리어는 2600여 년 전 고대 인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던 당시 대중들이 사용하던 말이다. 제자들이 산스크리트어(語)를 사용하자고 건의했으나, 붓다는 일부 특정인들이 소유하면서 사용하는 말과 글은 소수만을 위한 가르침이라며 거부하셨다. 부처님 사후 지금의 스리랑카로 불교가 전파되면서 섬이라는 특성상 그 가르침들이 오늘날 '빨리어'라는 명칭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공염불인 줄 알면서도 제발 기억해주라고 부탁을 다 했다.


그런데 신병이 어깨를 펴지 못하고 불안한지 고개를 숙인 채 웅크리고 있다. 독경도 중요하지만 자신감 회복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전입 온 지 3일. "많이 불안하고 어디에 마음을 둘지 몰라 두렵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선임도 신병과 같은 시간이 불과 2 개월 전이다. 이 친구들도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초점을 어디에 맞추어야 할지 몰라 법당에서조차 허둥지둥하였다. 고참들이 부르기만 해도 부동의 자세로 "예! 0 00 이병 명 받았습니다!"를 외쳤던 그들의 후임들이 와서 떨고 있다. 믿고 의지해도 좋으니 마음 편히 하라고 다독였다.


신병의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you can do it!" 나와 선임이 한 목소리로 힘을 실어주었다. 신병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I can do it" 쑥스러워하기까지 했다. 나는 신병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때까지 반복시켰다. 그리고 "자네는 이미 군에 와 있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법당에서 당당해져 나가라"고 부추겼다. "싸나이가 군에 왔으면 자신감 없이 땅을 쳐다보고 다니는 것보다, 비록 무섭고 떨릴 망정 두 주먹 불끈 쥐고, 또 눈을 크게 뜨고 독한 척하라"고 독려했다.


모든 동물들이 약해 보이는 녀석을 공격하고 괴롭힌다. 법당 주변에는 들고양이가 많다. 잘 둘러보면 어떤 고양이는 꼬리를 내린 채 눈치를 보며 도망갈 궁리만 하여 초라하기 그지없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무시하고 경멸의 대상이 된다. 두 선임이 "너는 잘할 수 있어. 우리가 도와줄게, 힘내!"라며 따뜻이 보듬어주라고 당부를 했다. 목소리가 정상적인 것 같아 예경문 독송을 끝내고 법회를 마쳤다. 불안한 마음이 걷혔는지 한결 눈빛이 편안했다.


나는 고참들에게 좋은 생각을 먼저 해야 말이 곱게 나오며, 또한 행동도 바르다고 법문 한다. 법문은 실제 생활을 하면서 실천하라는 말이지 뜬 구름처럼 잡히지 않는 것이 아니다. 좋은 생각, 고운 말, 바른 행동도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군에 있을 때 학원에 돈 갖다 주지 않아도 되니 실습해보고 제대하라고 권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하나씩 이해가 되도록 설명을 하면 수긍하는 병사들이 대부분이다. 단지 현실에서 적용을 잘하지 못할 뿐이다.


고참에게 고운 말로 신병들을 격려해주고, 실수를 해도 그럴 수 있다면서 따뜻하게 위로하라고 알려주었다. "야! 이 새끼야. 그것도 못 하고 이때까지 뭐 배우고 왔어!" 고참이 된 병사들도 선임들에게 인격적인 모독을 많이 받았다. 그랬으면 받았는 것은 다 잊고 후임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성숙한 태도를 베풀어야 밝고 맑은 병영문화가 형성된다고 가르친다. 생활관에 가서 실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달라진 장병들을 종종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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