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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un 22. 2020

콩자


   한 달 전이다. 아들이 애완 고양이 키워 줄 분을 찾아봐달라고 했다. TV나 거리에서 애완동물을 데리고 활보하는 이들이 많아 쉽게 나의 제의를 수락할 줄 알았다. 의외로 동물을 싫어해서, 안에서 키우는 것이 못 마땅하여, 장소가 협소하여, 아내가 질겁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맡아줄 보호자를 찾으면서 안온한 의지 처를 찾지 못해 헤매던 길고양이가 생각이 났다.


  지난해 이른 봄 고양이가 지하실을 드나들었다. 그것도 새끼를 세 마리나 겨우내 키우면서 말이다. 그동안 수상쩍게 여기기는 했으나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따뜻한 날, 집안에서 어린 고양이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짚 히는 바가 있어 밖을 내다보니 호기심 많은 새끼가 밖으로 나왔다 지하로 내려가지 못해 어미를 찾고 있었다. 그동안 지하에 숨어들어 몰래 새끼를 양육하는 어미의 고충이 느껴져 당분간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남편은 나와 생각이 달라 한 치 양보가 없었다. 아들이 원룸에서 송아지만 한 고양이를 키우는 줄도 모르면서. 어미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드나들었다. 사실 내가 사용하지 않는 지하공간을 조금 내어주어도 좋으련만 왠지 게름 직하여 그러지 못했다. 날씨가 좋은 어느 하루 네 식구가 밖으로 나온 사이에 내가 지하 입구를 철저히 봉쇄해버렸다.

 

  흥부의 많은 식구가 쫓겨나 비바람 피할 곳을 찾는 애처로운 광경이 연상되었다. 네 마리가 집 안을 헤매고 다녔다.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다행히 여름으로 접어들어 새끼들이 잘 크려니 방심했다. 아들이 지인의 소개로 겨우 젖을 뗀 새끼를 데려다 키웠다. 짐작컨대 공부는 뒷전이었고, 고양이 연구를 했으며, 갖은 정보를 섭렵하는 것 같았다. 아들을 이해하려다 길고양이에 대한 나의 편견이 깨졌다. 인간들과 공존하며 사는 짐승들에게도 천차만별의 삶이 존재했다.  


  사람의 집착적인 사랑을 받으며 제한된 자유로 호사를 누리는 애완용, 사랑 애愛 자도 없이 가난을 등에 지고 영역 안에서만큼은 구속받지 않는 야생이 있었다. 애완동물은 온실 안의 화초처럼 자라 천적이 없다. 하지만 한 순간에 환관이 되거나 후두를 제거당한다. 난소를 잘라내 발정 음을 차단하여 인간에 의해 본연의 기능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아들을 통해서, 인터넷 검색으로 길고양이나 애완 고양이를 인간의 입 맛 대로 양념했다. 이것저것 모를 때는 사람들의 개입이 옳다고 생각했다.


  길고양이를 포획하여 수컷의 고환을 도려냈다. 암컷도 자궁을 드러냈다. 이를 일러 ‘길고양이 중성화’라고 했다. 길고양이 개체수가 인간에 의해 조절되었다. 또 수술을 마치고 왼쪽 귀 끝을 1센티 잘라 표시를 낸다고 한다. 구속을 덜 받는다는 것 외 먹이사슬이 무너진 척박한 도시는 거센 파도가 쳐대는 밤바다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 동네가 조용하였고, 눈에 많이 띠지 않았다.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애완묘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인간이 최대 천적인 셈이다.

 

  아들은 사료를 택배로 보내주었다. 비록 길고양이이지만 박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동안 물으라는 쥐는 물지 않고 엉뚱한 일에 몰입하는 아들이 못 미더웠다. 아들의 인정이 담긴 배려에 부모가 자식보다 미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들이 1월 말에 퇴사했다. 남편이 의외로 아들의 결정을 이해하면서 열심히 준비하라고 격려했다. 아버지가 물러서는 듯하자 넌지시 키우던 ‘콩자‘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재취업 준비를 집에서 하되 콩자는 절대 불가(不家)라고 선언했다. 남편에게 타지에 혼자 있으면서 부모의 명예를 먹칠하지 않았다, 외로워서 콩자를 의지하며 지냈고, 올바른 가치관으로 잘 살아가는 아들을 이해해 주라고 설득했다. 남편은 막무가내로 콩자와 함께 살 수 없다며 버텼다. 갈 곳 없는 콩자의 거취가 막막했다. 길고양이 식구가 안식처를 찾아 헤매던 것이 불과 몇 개월 전. 내심 아들과 콩자를 다른 곳에서 살게 할 궁리까지 했다. 부자가 탄 기차는 부산까지 평행 선로였다.


  콩자의 갈 곳이 결정되었다. 아들이 스스로 키우겠다며 새삼스레 강한 애착심을 드러내었다. 가장 가까운 피붙이라며 화를 냈다. 아들의 절박한 심정을 헤아려 주지 않는다며 입이 십리나 나왔다. ‘아들아, 너도 아버지에게  단호히 자를 수 있다는 면모를 보여야 일 연간의 준비 기간이 부드러워질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거래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아버지께서 양보할 때 너도 콩자와 이별했으면 좋겠다. 보고 싶을 때 그 집에 가서 볼 수 있도록 양해를 구했단다. 한 해만 맡아 달라고 한다면 그 댁에서도 정을 떼기 힘들어진다. 다행히 4 식구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가정이란다. 무얼 더 바라겠니. 어머니가 부탁 하마’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엄마, 콩자와 이별할래” 아픔을 재빨리 속으로 삭이는 것이 보였다. 연인이었다면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어 헤어져야 하는 슬픔을 겪는 일이다. 아들은 현재 애간장이 녹아내리고, 가슴이 찢어지고 있다. 일 분이라도 콩자와 함께 하려 갖은 이유를 대면서 시간을 지연시키려고 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라고 했던가. 내 아들은 만물이 만나면 헤어지는 인생사를 콩자를 통해 배우고 있다. 나도 진지하게 세상사를 공부하는 중이다.


  어미 고양이는 몇 년 전에도 새끼를 낳아 얼마간 키우다 앞세우는 것 같더니 이번에 또 세 마리 먼저 보냈다. 새끼를 가슴에 묻는 과보를 겪으며, 진정한 수컷이 없는 영역을 오래도록 주름잡는 여걸이다. 내 집 주변 일대에서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새끼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 발정 음을 밤마다 멀리 보내는 것을 보면.


  인간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사람도 짐승도 순리를 역행하면서 간단명료하게 개체수와 인구를 조절한다니 어찌 위대하지 않을 손가. 나는 어미 고양이의 난소 제거 수술을 신청했다가 임신되기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철회했다. 나까지 그녀의 본능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00925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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