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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un 28. 2020

라틴어 수업 6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제목이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라고 해서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졌다. 몇 년 전 딸이 이 책을 선물했을 그때 다 읽었는데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니 이것 보통 예삿일이 아닌 것 같다. 기억이 나려나 싶어 앞부터 읽으니 제목과 관련이 없는 것 같아 뒤로 넘겼다. 십계명이 나오고 하여 의문스러움이 짙어져 끝을 보니 그제야 본론이자 결론이 있었다.


  십계명이 나온 이유는 라틴어 명사로 '사과나무'는 말루스라고 문장이 시작되어서다. 첫 문단을 옮겨보면


  "라틴어 명사 '사과나무'는 '말루스(malus)'이고 사과는 '말룸(malum)' 입니다. '말루스'는 '사과나무' 말고도 '나쁜, 불행한'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로도 쓰이며 '말룸' 역시 '사과'라는 뜻 말고 '악'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라틴어의 '나쁜, 불행한'을 의미하는 형용사에서 '악'이라는 '말룸' 명사가 파생했어요. 라틴어 단어에는 형용사가 추상명사로 고착된 경우가 많습니다."

'사과'가 '악'이 되는 것은 성경에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을 알게 된다는 선악과나무 열매인 사과를 먹음으로써 원죄를 짓게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사과가 악을 상징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영어의 '성, 성행위'를 의미하는 섹스 sex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6'을 의미하는 기본 수사 '섹스'와 스펠링이 같습니다. ~~

그런데  '6'이라는 기본 수사를 보면 영어의 'sex'라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이것을 설명하려면 성경의 십계명부터 이야기해야 합니다. 로마 카톨릭 교외와 루터교의 십계명은 그 내용과 순서가 약간 다르지만 이 가운데 제6계명은 '간음하지 마라'로 모두 같습니다."



그래서 '간음하다'와 관련된



  "중세의 시대적 상황에 맞물려 '간음, 간통'을 의미하는 단어는 더욱 세분하여 발전했는데 간통은 '아둘테리움adulterium'이라고 하고 , 매음 또는 불륜은 '포르니카티오fornicatio'라고 했습니다. 이를 영어가 그대로 차용하여 '어덜터리adultery(간통)' '포르니케이션fornication(사음, 간음)'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종교의 색채가 강했던 중세를 거치면서 십계명의 제6계는 입에 담기 거북한 계명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이 계명과 관련해서는 전체를 말하지 않고 간단히'6 sex'라고 말하고 "그것 말이야"라는 식으로 말하게 됩니다. 성적인 의미를 '이것, 그것'이라는 지시대명사로 사용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해서 라틴어에서 진짜 '성'을 의미하는 단어 '섹 수스'와 맞아떨어져 영어의 '섹스'는 성, 성행위를 의미하는 단어로 굳어졌습니다."



  이 문단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전라도의 사투리 '거시기'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표현하기 곤란할 때 '거시기 있잖아'라고 하듯 말이다.

 매음(賣淫: 돈을 받고 몸을 팖.이라고 다음은 정의하고 있다), 불륜(不倫: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 간통(姦通:결혼하여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적 관계를 맺음), 사음(邪淫:아내나 남편이 아닌 자와 하는 음탕한 짓을 이른다), 간음(姦淫:부정한 성관계를 함. 주로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의 성관계 따위를 이른다).



 "매음 또는 불륜은 '포르니카티오fornicatio'라고" 하여 사전을 찾아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았다. 선진국이 사용하는 언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엄연히 매음과 불륜은 의미가 다르다. 매음은 돈을 받고 행위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불륜이라는 용어는 적합하지 않다. 번역을 잘못했는지 몰라도. 불륜이라는 의미 속에 간음, 간통, 사음이 들어간다. 나의 아내 이외의 여자와 또는 남편 이외의 남자와 잘못된 사랑놀음, 즉 sex를 하면 간통이요 간음인 것이다.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사랑놀음이요, 삿된 관계여서 사음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관계를 불륜이라고 하는 것이다. 작가의 주제는 아니다. 읽다 보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사전을 뒤적이게 되었다.



 "라틴어로 '공부하다'란 동사의 원형은 '스투테데'이고 여기에서 영어의 '스터디study'가 유래했습니다. 본뜻은 '전념하여 노력하다, 갈구하며 몰두하다'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노력하는 것이 '공부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퇴계의 '경敬' 사상을 학습법에 적용하면 "한 곳에 몰입하여 다른 쪽으로 마음을 쓰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를 학습의 으뜸 중의 으뜸으로 꼽았습니다. 퇴계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음에 있는 것과 사물에 있는 것이 두 가지가 아님을 분명하고 투철하게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과 맥이 통하는 말입니다. 아울러 그는 "공부가 몸에 배도록 익히는 작업이 중요한데 익히는 일은 어떤 것이든 하나에 몰입하는, 이른바 정신 집중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전했습니다."



  정신 집중하는 방법으로 명상이 있다. 나는 이 명상을 50분씩 하다가 정신력이 해이해져서 30분으로 줄여 그것도 하다 말다 이러는 지경이다. 어떤 효과를 크게 바라고 있어서 발전이 없는 것이다. 그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전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로서는 참 힘들다. 중단했다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왕도가 없다는 말이 맞다. 무조건 꾸준히 눈 감고 앉는 수밖에 없다. 공부 또한 그렇다. 작가도 왕도가 없다고 한다. 공부하는 태도가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마지막으로 신약성서의 루카복음 13장 33절을 인용한다. 나의 필사한 문장이기도 하다.



  "Verumtamen oporter   me hodie   et   cras   et    sequenti   die   ambulare.

  베룸타멘  오포르테르  메 호디에 에트 크라스 에트 세쿠엔티  디에  암불라레.

      사실은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여러분을 자기 자신의 길을 잃지 않고 잘 가고 있습니까?

  그 길을 걸으며 무엇을 생각합니까?

  그 길 위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나의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길 위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길을 걸으며 무엇을 생각할까?

  나는 나 자신의 길을 잃지 않고 잘 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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