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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un 29. 2020

죽음도 미리 배워 두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 9

   이 장은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이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다루었다.


    "그렇다.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어렵지만 죽는 일 또한 운 일이 아니다. 순조롭게 살다가 명이 다해 고통 없이 가는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본인은 물론 가족들이 함께 시달리게 되면 잘 죽는 일이 잘 사는 일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죽음 복도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나옴직하다.

  살 만큼 살다가 명이 다해 가게 되면 병원에 실려 가지 않고 평소 살던 집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일 것이다. 이미 사그라지는 잿불 같은 목숨인데 약물을 주사하거나 산소호흡기를 들이대어 연명의술에 의존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커다란 고통이 될 것이다."



  내 어머니는 2018년 11월에 파티마 병원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51일 전 머리 빗다가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으며 대퇴부 뼈가 부서져 버렸다. 그날 오후 세 시에 수술을 하고 2주 만에 요양병원으로 옮기라고 병원 측에서 들볶아 별 수 없이 퇴원을 했다. 그리고 상태가 호전되는 듯하더니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들은 소리도 있고 하여 요양병원 관계자에게 자연스러운 임종을 맞고 싶으니 어떠한 조처도 취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보호자의 말을 한 쪽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것 같았다.



  링거 주사액이 바늘 꽂은 자리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퉁퉁 부었다. 말초혈관이 다 숨어버려 주삿바늘 꽂았던 자리마다 검보랏빛 멍이 들었다. 어머니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파티마 병원에 입원을 다시 했다. 입원 즉시 피검사를 한다, 링거를 꽂는다 수선을 피웠다. 나는 제발 이러지 말자고 해도 '생명존중 사상에 위배' 된다면서 막무가내로 하자고 졸랐다. 두 동생이 해보자고 우기니 나로서는 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왼쪽 쇄골 밑을 절개하여 말초혈관을 찾아서 주삿바늘을 꽂고 링거병이 4개가 달렸다.



  중환자실에서 면회 시간에만 노모와 만날 수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날은 아무래도 노모를 더 고생시키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 면회 마감 시간 2분 전에 혼자 뛰어 들어갔다. 어머니의 흩어진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엄마, 헤어져야 할 것 같다, 혼인하지 않은 동생이 걸려서 그러지요?"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리고 삼귀의를 빨리어로 독송하면서 어머니에게 따라 하라고 했다. 말은 하지 못했다. 단지 입은 다문 채 "음! 음! 음!"이라며 있는 힘을 모아서 단음을 냈다. 아주 천천히 따라 할 수 있도록 마감까지 했다. 나는 그때 어머니의 편안한 모습을 보았다. 간호사가 나가라고 재촉했다. 다음날 아침 6시 전에 운명하셨다고 연락이 왔다. 이미 나와 헤어진 후 별세하신 것이나 다름없다.

 


  의사들에게 따지고 싶었다. 의학적으로는 몰라도 경험적으로 오래 못 사실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한 준비의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저 돈 벌 궁리만 했다. 다행히 다치고 오랜 시일 끌지 않고 별세하여 더 문제를 삼지 않았다. 그러나 병원을 나무라기 이전에 보호자들이 강력하게 처신해야 한다. 자식으로서 할 도리라고 말하는데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씀처럼 당사자에게 커다란 고통만 안겨주었다. 그래서 내 자식들에게는 할머니의 경우가 되면 조용히 자연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를 미리 해두었다.



  내가 마음에 들어서 필사한 문장은



  "우리가 한평생 험난한 길을 헤쳐 오면서 지칠 대로 지쳐 이제는 푹 쉬고 싶을 때, 흔들어 깨워 이물질을 주입하면서 쉴 수 없도록 한다면 그것은 결코 효가 아닐 것이다. 현대 의술로도 소생이 불가능한 경우라면 조용히 한 생애의 막을 내리도록 거들고 지켜보는 것 도리일 것이다.

  될 수 있으면 평소 낯익은 생활공간에서 친지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삶을 마감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병원에서는 존엄한 한 인간의 죽음도 한낱 업무로 처리되어 버린다. 마지막 가는 길을 낯선 병실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맞이한다면 마음 편히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나를 성찰한다. 그리고 나는 간소한 삶을 지향하고 있다.  또 하나씩 비워가고 있는 중이다.


 

작두콩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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