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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ul 07. 2020

아궁이 앞에서

아름다운 마무리 14

  "절에 들어와 내게 주어진 최초의 소임은 부목(負木)이었다. 땔감을 담당하는 나무꾼인 셈이다. 이 소임은 행자 시절 은사께서 내게 내린 출세간의 선물이기도 하다. 당신도 절에서 맨 처음 본 소임이 부목이라고 하셨다.


 이 글의 첫 문단이다. 나는 대승불교도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 2012년 9월부터 지금까지 테라와다 불교를 공부하면서 실천하고 있다. 시쳇말로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이유가 있다. 석가모니 붓다 재세 시의 불교를 테라와다 불교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부처님은 출가자와 재가자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했다. 대충 얘기하자면 출가자인 스님네들은 오로지 수행(좌선과 경행)과 경전 공부다. 하루 한 번 식사를 하며, 그 식사는 탁발을 해서 해결한다. 탁발하는 것은 욕심을 떨쳐내고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그리고 재가자는 출가자에게 의, 식, 주, 약(衣食住藥), 네 가지를 공양하면서 공덕을 쌓는다. 공양물을 받는 스님은 재가자들에게 수행과 경전 공부한 것을 법문 하면서 불자(佛子)로 교육시킨다.



  대승불교인 우리나라는 '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고 해서 선방에서 좌선하는 수좌(이판승)들을 보살피는 사판승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는 거의 사판승이라고 사려된다. 절의 살림살이를 주지가 좌지우지한다. 절의 경제를 거머쥐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수행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고, 신도 관리하기도 바쁜 실정이다. 그렇지 않은 스님들도 계신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나의 변명이다. 그러나 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청정비구'라고 자타가 공인한 법정스님이다. 빨리어 경전인 니까야를 공부하셨다면 아마 수행에 더 전념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랬더라면 아무리 신출내기 스님이라도 부목 일은 하지 않는다. 테라와다 불교는 오로지 수행과 경전공부다. 나는 승려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경전 공부한 교학을 재가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공부시키는 것이 옳다고 여겨졌다. 하나 덧붙이자면 오계를 공부하더라도 부처님은 그 의미를 분명히 밝히고 내용 또한 적확하며 공감이 간다. 



  과거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인도처럼 승려를 중시하지 않았다. 사회적 분위기가 자작자수(自作自受)를 해야만 하는 형편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승불교의 현실이 참으로 한심할 따름이다.



  필사한 문장은


  "중노릇이란 어떤 것인가? 하루 스물네 시간 그가 하는 일이 곧  중노릇이다. 일에서 이치를 익히고 그 이치로써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간다. 순간순간 그가 하는 일이 곧 그의 삶이고 수행이고 정진이다.

  지난 물난리 때에도 나는 아궁이 앞에서 반세기 넘게 이어 온 나무꾼의 소임을 거르지 않았다. 누가 중노릇을 한가한 신선놀음이라 했는가."


 "사람에게는 저마다 주어진 상황이 있다. 남과 같지 않은 그 상황이 곧 그의 삶의 몫이고 또한 과제다. 다른 말로 그의 업이다. 그가 짊어지고 있는 짐이다. 할 일 없이 지내는 것은 뜻있는 삶이 아니다. 그때 그곳에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를 일으켜 세운다."  


 ⁠⁠  '일에서 이치를 익히고, 그 이치로써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간다.' 붓다는 붓다의 가르침으로 섬을 삼고, 자신을 섬으로 삼아 정진하라고 하셨다. 물론 순간순간 하는 일이 곧 수행이다. 작가께서 늘 말씀하셨던 깨어있는 삶, 녹슬지 않은 삶이다. 그러나 분명히 붓다의 가르침과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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