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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보 May 07. 2024

비뚤 해도 괜찮아, 뜨개

누군가에게 정성 어린 선물을 주고 싶다면

나 같은 뜨개 초짜가 '뜨개'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게 우스운 이지만,

초점은 '뜨개'가 아닌 '선물'에 맞춰 있기 용기를 내어 글을 써본다.


태교로 뜨개질을 했다.

손재주라곤 없는 내가 뜨개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소중한 사람들에게 색다른 선물을 주고 싶어서이다.

평소 생일이 되면 가벼운 선물(누구에게나 받을 수 있는)을 주고받지만 한 번쯤은 정성 어린 선물을 만들어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마침 출산하기까지 시간도 넘쳐났고.  


집에서 가까운 뜨개 공방을 등록하고 두근두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그곳은 40~50대 여성분이 주를 이고, 간혹 남성분도 있었다.

다 같이 둘러앉아 손은 바쁘게 움직이며 다른 이의 뜨개질에 참견도 하고 재밌는 드라마도 공유고 이런저런 세상의 가십도 씹으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나는 주로 이야기를 듣거나 놀림을 받는 편이었다. 배가 조금씩 불러오면서 언니들은 막내인 나를 '아가'라고 부르며 나의 반응을 즐겼다. 아니 이 나에 아가라뇨! 하다가 배시시 웃어 보이기도 하고. 


음엔 코바늘과 실을 잡는 법을 배우고 사슬 뜨기, 짧은 뜨기, 빼뜨기를 배웠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선생님의 손만 보며 시간을 보냈다.

첫 작품은 티 코스터. 쉬워 보이지만 초짜에겐 꽤나 험한 여정이다. 동그란 원형 한 줄, 두줄 뜨 첫 코를 잘못 잡아고, 또 풀고.. 그래 다시 한번 천천히 해보자! 땀 삐질 삐질 흘리며 완성한 티코스터가 삐뚤 하지만 내 눈에는 사랑스러 보인다.

티 코스터


조금 레벨업 했다. 이번 정복할 뜨개는 수세미. ,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뜬다는 그 수세미? 쉽다 생각하고 볐다가 뜨개질을 그만두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수세미 실은 반짝거리고 잔가시처럼 붙어있는 게 많아 코를 보며 뜨기 힘들었고, 이 것 역시 두세 번 풀었다가 다시 떠야 했다.

마지막쯤에 또 코를 잘못 봐서 다시 풀었을 땐 성질이 나서 아오, 눈이 안 보여서 못하겠다고! 던졌다가 그래도 이것만 하면 가방을 뜰 수 있다는 생각에 꾹 참고 주섬주섬 만들었다. 애증의 수세미라 그런지 완성본을 보 뿌듯하다. 다른 뜨개 보다 성취감이 더 한 느낌. 

뜨개질을 잘 알지 못하는 친구들한테 선물하며 이게 되게 어려운 거야. 너스레도 떤다. 뜨개인 앞에서는 꽁꽁 숨기 바쁘지만.

마카롱 수세미


수세미의 역경을 잘 이겨내고 드디어 가방을 뜰 수 있는 레벨에 도달했다.

마침 항상 나를 잘 챙겨줬던 친한 친구의 생일이 돌아오고 기에 꼭 선물해 주고 싶었다.

이 친구라면 내가 아무리 못 만들어도 쁜 맘으로 들고 다닐걸 알기에 부담이 덜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족한 실력에 마감일을 빠듯하게 잡아서 인지 자꾸 실수 했다. 선생님의 스파르타식 교육에 불을 지피듯 다시~ 풀고 다시! 다시! 가 반복되었다.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고 울상이 된 내 모습을 보고는 선생님은 수업시간이 끝났는데도 함께 남아서 나의 뜨개를 봐주는 선심도 베풀어주셨다.

그렇게 완성한 가방!

내 눈에는 부족한 모습만 보였지만 친구는 무척 좋아해 줬다. 

이후로 또 다른 찐친의 생일엔 카드 지갑을 선물해 줬다. 이건 사실 실물이 이쁜데...,



쌍둥이를 임신한 친구에게는 보냇모자 2개와 편지 함께 선물했는데 친구가 갑자기 눈물을 보여 살짝 당황했다. 절대 이런 선물 안 할 것 같은 애가 해줘서 그런가.

내 선물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다니 그래도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구나. 

엄마한테는 겨울에는 목도리 선물해 줬고 직장 동료, 팀장님들한테는 굴비 수세미(수세미 다신 안 한다고 이를 갈았지만 귀여운 수세미를 보면 못 참아 버린다)

큰 시누 동생한테는 가방, 귀여운 걸 좋아하는 작은 시누 동생에게는 붕어빵 주머 선물해 줬다.  

굴비 수세미와 큰 시누 가방


그리고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

시누의 남편, 음 그니까 서방님(아직도 이 호칭으로는 불러본 적이 없지만)가족 모임에서 자이언트 얀 실로 만든 가방을 건네주었다. 본인이 만들었다면서 수줍게 웃으며.

전직 헬스 트레이너 출신인 덩치도 크신 분이 이걸 뜨고 있을 생각 하니 웃음이 나기도 하고 고마웠다.  

시누가 내가 선물한 뜨개 가방을 너무 좋아해서 자신도 만들어 볼  있는 간단한 뜨개질을 찾아 해봤다고 한다. 

막상 내가 뜨개 선물을 받아보니 '아, 이런 기분이구나' 좋은 의미의 역지사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포부도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선물받은 가방

뜨개질은 역시 남을 위할 때 더 값지다. 

상대에게 어울릴 것 같은 물을 생각하고 한한코 실을 엮으며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어느새 완성되어 있다. 중요한 건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한다.

급할수록 더 꼬이고 잘못 꿰는 법. 뜨개를 하며 '느림의 미학'을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거리면서 뜨는 것도 재밌고, 캠핑을 가서 산들바람을 으며 뜨개 하는 맛도 좋다. 물론 이건 출산 전 이야기이다.  


출산 후 손목 보호라는 명분과 귀찮음도 포함해서 개질을 잠시 멀리했지만 우연히 본 귀여운 미니 가방 뜨개사진이 포착되면 실을 주문한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때쯤 완성하여 사진을 올리려 했는데... 역시나 나의 게으름이 마감 시간을 놓쳐버렸다.


이 글을 쓰며 내가 가지고 있는 뜨개용품이 없나 찾아봤더니 만드는 족족 선물서인지 정작 우리 집에는 뜨개 물건은 없다.

다음에는 나를 위한 뜨개질을 해서 선물해 줘야지. 

진도가 나갈지 모르겠지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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